나는 노팬티다. 정확히 말해 팬티를 안 입고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는 말로 외로움을 애써 감추려 한다. 하지만 숨길수록 진실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뭘까. 텅 빈 모니터 위로 활자들이 스쳐 지나간다. 때론 너무 빨리 지나가서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나만의 장소는 더 이상 나만의 장소가 아니다. 추억이란 이름은 너무 쉽게 팔리고, 예상외의 수익을 낳기도 한다. 밤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불빛들을 쳐다보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지, 아니면 인간의 욕망과 외로움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헷갈린다. 수달역에 내려 수달카페로 향한다. 수달이 만든 커피를 마시며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내가 왜 노팬티인지 궁금하다면 원시시대에 원주민들이 왜 벌거벗고 돌아다녔는지 유추해보라. 그렇다고 원주민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명확하게 규정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가상공간을 떠도는 수많은 가십들이 뉴스를 대신한다. 온정 대신 공허한 눈빛과 말들이 타인 속에 머문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있기 때문에 숨을 내쉬는 걸까, 아니면 살기 위해 숨 쉬는 걸까. 심장이 뛰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걸까, 살아있는지 알고 싶어서 맥박을 짚어보는 걸까. 말장난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 안에 심오한 진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길게 할 것 같다. 때론 하품이 나오고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아주길 바란다. 욕하고 싶더라도 일단 다 읽고 욕을 하던, 춤을 추던지 하길…….
고속도로 위의 수달은 야생출몰지역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야생동물이 운전을 하고 있다면 주의해야 할 것은 야생동물일까, 아니면 야생동물을 태운 차일까. 낯선 눈으로 쳐다보는 그의 눈을 가만히 응시한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까르르 웃던 아이는 자라면서 성난 사자가 되어버렸다. 사자는 자신을 지켜보는 다른 사자들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시궁창 속에 집어던지고, 대신 일탈과 욕망이란 단어를 호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넣는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급하고 때론 경박하다.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너에게 돌아오는 건 수고했어, 라는 짧은 한 마디다. 그걸로 만족하는가. 아니면 그 이상을 원하는가. Why here? I’m here because of you. 야식을 먹는 동물이 인간에 국한되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N군에게 물어보니 대답 대신 ‘나무 수액 먹는 동물들’이라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어릴 적엔 유충을 먹다가 어른이 되면 수액을 빨아먹는 사슴벌레. 수액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니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날카로운 뿔을 이용하는 수컷은 밤새도록 싸움을 한다. 그 중 한 마리가 추락하고 남은 한 마리가 자연히 승자가 된다. 안심하는 순간 어디선가 장수풍뎅이가 나타나 사슴벌레한테 싸움을 건다.
-한 판 붙을래? 그래봤자 어차피 넌 나한테 못 이겨.
-그건 붙어봐야 알지. 이대로 포기 못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수풍뎅이한테 맥도 못 추고 추락하는 사슴벌레. 멀리서 암컷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인지부조화=믿는 것과 보는 것의 불일치? 마음과 몸의 불일치? 우연히 TV에서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어른의 몸으로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최악의 이별 통보를 그동안 반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면 변명일까? 이별 앞에서 유난히 우유부단하고 쓸데없이 착한 척(?)하는 남자들이여! 훗날 좀 더 괜찮은 남자로 기억되고 싶다면 당장 욕을 먹더라도 한 번쯤 용기를 내보자. 난 더 이상 너한테 반하지 않았다고, 너의 사소한 말투와 습관을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목숨 걸어본 적이 있는가? 어차피 떠날 사람인 줄 알면서도 구차하게 붙잡아본 적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거룩함을 찬양하는 사람일수록 수상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 하루 주어진 자유의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귀찮게 할 이유가 없는 온전한 자유가 덤으로 주어졌으니까.
오늘도 난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정에 굶주리고 늘 누군가 곁에 있길 바라는 C가 있었지. 온순하게 보여도 화나면 제법 사나운 S가 C의 곁을 맴돌았어. 하지만 성격도, 자라난 환경도 다른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웠어. 서로를 심하게 할퀴어서 상처 입은 적도 많았지.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의 곁을 떠나지 못했어. 그 이유를 자신들조차 알지 못했거든. 그러다 어느 순간 점점 멀어졌고, 그대로 타인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어. 그래서 맹세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힘들 땐 진정으로 위로해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배신과 질투라는 자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어. 온실의 화초 대신 야생의 풀을 택했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기며 성공이라는 밧줄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 가까이 갈수록 밧줄은 점점 더 멀어져갔기에 점점 지치기 시작했어. 그래도 S는 포기할 수 없었지.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들이 아깝기도 했고, 야생의 본성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거든. 그런데도 여전히 S한텐 삶이 숙제처럼 여겨질 때가 많아. 간단한 숙제라면 금방 풀고 잊어버리면 되지만, 복잡한 문제라면 차근차근 풀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거든. 끝까지 혼자 해결할 지, 아니면 솔직하게 도움을 청할지 판단이 안 설 때도 많지. 어쩌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네. 이제 곧 잘 시간이야. 아직 풀지 못한 문제는 내일 다시 생각할래. 굿나잇.
2015년 10월 20일. 워크숍을 위해 의정부로 향하다
7시 50분 기상
8시 40분 외출, 음식물 버리기
9시 40분 공항도착
9시 50분 푸드 코트에서 아침식사
10시 50분 탑승, 바흐 ‘브란덴부르크’ 흔들리는 요람 속에서 숙면
18시 12분 워크숍 마치고 의정부에서 출발
19시 45분 용산 도착
누군가 ‘아가씨’라고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정차역이 남아서 안심해 깜박 잠이 든 것이다. 중간에 내려 목적지로 향하는 열차로 갈아탔다.
‘분명히 행선지를 확인했는데…….’
하지만 어딜 가나 그들만의 법칙은 존재하므로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다. 워크숍까지 30분 남짓 남았다. 집에서 나온 지 5시간이 다 되어간다. 여기까지 날 오게 만든 건 무엇일까.
2015년 10월 21일. 시장조사를 위해 아침에 친척집을 나서다
12시 10분. 그릭요거트 도착. 플레인 요거트 주문. 담백하고 고소. 크림치즈 질감.
15시 30분. 대학로 도착. 근처를 배회하다 ‘더블릭’ 발견. 대학가에 어울리는 젊고 활기찬 분위기.
16시 40분. 버스 타고 한강대교 북단에 하차
17시 40분. 외숙모가 만들어 준 쌀국수
19시 30분. 영화 <뷰티인사이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매일 바뀐다면?
2015년 10월 23일. 부산으로 돌아오다
15시 40분 김포공항 도착
16시 30분 김해공항 도착, 택시에 몸을 싣다
21시 50분 부산대역 도착, 친구를 기다리며 일상을 기록하다. 옷가게에서 최신가요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 피로가 남아 있지만 생기 넘치는 거리에서 기운을 받다. Life is nothing, but pusuing something special.
어느 주말 오후,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관계 속에서 때론 길을 잃고 의도치 않게 힘을 얻기도 한다.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때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나을까.
무념(無念)
소파에 드러누워
멍하니 천정을 바라본다.
뭐하니?
아무 것도.
누워 있잖아
그래서?
무슨 생각해?
nothing
내 물음에 대답하고 있잖아
그건,
생각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동반사일 뿐.
혼자 살아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독립성이 강해진다는 거다. 단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하려는 자발성이 강해진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는 대부분의 일들을 혼자 처리했고, 그러다 실수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홀로서기가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들은 부모와 같이 살아도 혼자 밥을 해먹거나 돌아다니는 걸 잘해낸다. 하지만 부모 그늘 아래 오래 산 남자들은 연애할 때도, 결혼하고 나서도 많은 부분을 여자한테 기대려 한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혼자라서 외롭지 않느냐고.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라 외로운 건 당연하지만, 둘인데도 외로운 건 견디기 힘들다고. 올 가을에도 숱한 장밋빛 약속들을 뒤로한 채 이별을 결심했다. 그 원인이 꼭 누군가한테 있기보단 헤어지는 것이,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서로를 위해(어쩌면 나를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주말 오후 6시 49분. 원래 6시쯤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볼 생각이었으나, 일찍 마치니 같이 밥 먹자는 친구의 메시지에 곧바로 영화를 취소한다. 거기다 오늘 생파의 주인공이 온다고 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인연이라는 녀석은 참 우습다.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끈끈이처럼 계속 이어지다가도 어느 순간 툭 끊어져버린다. 그래서 우린 서로에게 늘 일정한 거리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나 보다. 지난달에 이어 세 번째 생일파티.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일을 곧잘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친구나 지인의 생일을 챙기다 보니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대학 동기이자 절친의 생일도 올해 처음으로 챙겨주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시린 계절이 돌아왔지만, 우리 곁에 누군가 있어서, 그 누군가가 그래도 힘들 때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존재라서 다행이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똑같은 사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익숙한 삼겹살에 다림질만 했을 뿐인데, 계란찜에 향신료 하나만 추가했을 뿐인데 뭔가 색다른 느낌이 나는 건 단지 분위기 때문일까. 인간은 항상 새로움을 외치면서도 조금만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항상 바깥세상을 동경하면서도 막상 우물 안에서 한 발짝만 내딛으면 낭떠러지로 미끄러질까 봐 안절부절 못한다. 그런 인간이 나약하고 어리석다고 비웃기 전에 연민을 느껴볼 것. 동정과 연민이 다른 건 국어시간에 배웠겠지? 어쨌든 동정보다는 연민을 택하기로 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퐁당 쇼콜라. 이름은 같지만 맛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초콜릿이 그릇 안에 퐁당 빠져버렸으니 어떡해? 그럼 맛있게 먹어주지, 뭐. 커피와 초콜릿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홍차와 쿠키도 찰떡궁합일까. 커피 맛이 제각각인 것처럼 홍차도 원산지에 따라 너무나 다양해서 가끔은 혼란스럽다. 많이 안다고 해서 남들보다 잘 산다는 보장이 없듯이, 무식하다고 해서 굶어죽으란 법은 없다. 오히려 가끔은 무식하게 앞만 보고 돌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걸 이루기도 한다. 아이처럼 떼쓴다고 남을 비웃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엔 아이보다 더 유치하게 변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데칼코마니처럼 양쪽이 대칭을 이루다가도 어느 순간 한 쪽으로 기울어버린다. 그것을 누군가는 열정 혹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랑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정확히 말해 시간과 돈, 마음까지 낭비하는 사랑(또는 연애)을 원하지 않는다. 한 가지 목표를 세웠으면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배웠다. 그러나 나처럼 산만하고 잡생각 많은 사람에겐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감정보다는 의지를 좀 더 토닥여줘야겠다. ‘난 네가 필요해. 널 붙잡고 싶어. 제발 내 곁에 머물러줘, 의지.’
어제부터 기분이 가라앉는다. 덩달아 몸도 처지고 자꾸만 게을러진다. 아침에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연체도서가 있어서 책 몇 권을 뒤적거리다 나왔다. 익숙한 공기와 갑작스런 기침.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공원으로 향한다.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낙엽들이 손짓하지만 그것마저 귀찮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왜 난 어제 친구랑 다툰 걸까. 인간은 왜 그토록 어리석은 걸까, 그리고 불가능성을 꿈꾸는 걸까. 질문만 있을 뿐 대답은 없다. 편백나무 숲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래된 건물은 열심히 보수 중이다. 레스토랑과 카페가 곧 들어설 것이다. ‘자본만 넉넉하다면 저런 곳에 카페를 운영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 ‘소자본으로 초보창업자가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이다. 어차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가능하면 많이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이뤄내고 싶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아니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치는 건 단지 열정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현실의 벽이 생각보다 높아서일까. 어느 쪽이든 타인에겐 나약함과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Andante con moto. 느리게 그러나 활기차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