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습관적으로 그냥 쓰는 말이 참 많다
예를 들면 "서울역전 앞"이라던가 " 서울 역전앞에서 흰백차가 빠꾸로 되돌아갔다"느니, 전철역 이름 가운데 "서울대 역"이라고 했는데 내려보면 버스타고 그것도 모자라 한참 걸어서 가야만되는경우가 있는데도 그대로 아무 이의 없이 잘 쓰고있다 백마고지역이라고 해서 백마고지와 가깝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였으니 또한 번 말장난에 속은 하루다
어제는 집에 있어도 티브이신세나 질것 같아서 무조건 배낭을 지고 나오니 어디 갈 만한 곳이 없다 무조건 공짜인 4호선전철을 타고 한참을 가다가 작년11월 20일( 정확한 개통날자는 종착역 역사 울타리에 걸어놓은 프랙카드를 보고알었지만)에 연장 개통 되었다는 경원선 백마고지역을 가 보기로 했다
창동에서 소요산 가는 전철을 갈아타고보니 평일이지만 온통 산행복장을 한 사람들 뿐이다 도봉산역에 이르니 울긋불긋한 등산복장을 한 그래도 우리보다 젊은 오빠 언니팀이 먼저 괘많이 내렸는데도 승객은 줄지 않는다 좌우를 보니 청와대 경호실팀 복장 같이 검은색 일색 인데 모두 늙은이들이 대부분으로 배낭 멘 사람이 별로 없고 신발은 운동화나 신사화로 산행할 복장이 아니다
눈치를 보니 나와 행선지가 같은모양 물어 볼수도 없고 그냥 앉아있자니 의정부, 덕정, 동두천을 지나 종착역인 소요산 역에 도착해서 모두 내리는데 산행팀이 아니고 백마고지역 까지가는 관광객들 이다
역에서 내려 역원에게 열차시간을 물어보니 매시에 출발하는데종착역이 신탄리역과 과 백마고지역 두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전철과같이 공짜인 줄 알았더니 어른은 1,000원 아이들은 500원인데 경로는 할인해서 500원이란다 우리나라 참 살기좋은 나라인걸 다시 느꼈다 그런데도 빨갱이 같은 종북 좌파놈들이 기승을 부리니 은근히 화가 치민다
500원을 내고 표를 끊고 보니 12시가 되어 우선 민생고부터 해결하고 기다리자니 동두천 방향에서 3칸짜리 전동열차가 오는데 동두천이 시발이라 타고 보니 벌서 좌석이 만원이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보니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인데 아까 전철을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초성리를 지나 전곡, 연천, 신망리, 대광리, 신탄리역을 지나 드디어 새로 개통된 백마고지역 을 향해 열차가 출발한다 내가 소위때 근무하던 부대가 바로 신틴리역 개울 건너 편 있었기에 그 때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가다 보니 터널도 새로 뚷고 일부지역은 산골인데도 비싼고가로 선로를 놓았다 창밖을 보니 4차선 도로가 훤하게 북쪽으로 나있는데 백마고지역앞을 지나 대마리 (예전제대군인 정착촌) 민통선 마을을지나 동송(내가 근무시는 화지리라고부르기도 하고 구 철원이라고 도 불렀다)까지 간다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었던 60년대 생각이 난다 역에서 내려보니 아직 확장공사 중인데 역 마당에 처논 천막 에선 각종 음식점과 술을 팔고 있는데 앞에있는 천막 앞에 노란 차량에 PX라고 쓰여있기에 군대 PX인줄알고 들어가보니 철원군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겸 농산물 판매점이다
백마고지 역이라 해서 내리면 바로 백마고지와 연관된 곳인 줄알았더니그게아니고 전적지공원까지 왕복 두시간 가량걸리는 곳이 백마고지 역이다
벌판길이라 빤히 보이는데 물론 백마고지까지는 갈수 없고 백마고지 전적비가있는 공원까지만 갔다오는 걸 말한다
역에서 내리니 철원군에서 운용하는 관광버스가 있는데 백마고지 전적비.평화전망대, 남침땅굴 ,노동당사, 구월정리역을 한 바퀴도는 코스인데 2시간이 소요되고 요금은 8,000원인데 여기서도 경로와 유공자,장애인은 4,000이라고 한다
다음 열차는 2시간 가량 기다려야 한다기에 할수없이 울며겨자멱기로 관광코스나 돌려고 하니 오늘은 매진이란다 (대형한대,20인승한대 봉고2대)할수없이 백마고지 전적비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가는데 무척 멀다
임시방편으로 논길 가로 질러가는데 날씨가 푹하니 눈이 녹아 지름길로가는 논바닥 길이눈이 녹아 걸어가는게 작난이 아니다
네가 이곳에서 포병연대장할 때인 83년도인가 대마리를 한번 와 보았는데 그당시는 도로도 비포장이였고 좁았다 하긴 국도도 비포장시대 이였으니까 그리고 집들도 군대 막사같이 줄지여 집장사가 지은 집들이였고 일반인의 출입도 통제한 걸로 아는데 지금은 커다란 숯불오리구이집이며 공장건물도 보이고 2층이상되는 건물도 보인다 세월속 에 모든게 많이 변했다 그런데 동네에는돌아 다니는 사람이 별로없다 길을 몰라 한참을 가니 무슨 탑이 나오길레 가서 보니 한자로 휘갈겨쓴 "?척탑"이라고 되어있어 첫번째 한자가 무슨 자인줄 몰라 궁금해서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둘러 보아도 탑이름을 알수 가 없어 물어 보려든 참에 학교앞에 주차된 차안에 있던 주민을 만나 물으니 그건 "개척탑"으로 초창기 이곳에 들어와 정착했던 사람들을 기념해서 이장이중심이되어건립했는데 매년이곳에 들어와 고생하다 고인이 된 사람의 위령제를 지낸다고 한다고 하길레 사람이 읽어 볼수 있는 글자를 써놓아야지 어렵게 써놓으면 되느냐고 묻자 그런 말을 많이들한다고 한다 문화답사를 다니다 보면 옛날 양반 멋부린다고 써놓았는데 나는 읽을 수 없는 한자가 많아서 불편했는데 전방 골짜기 까지와서도 불편을 겪어야하다니..
어렵게 물어물어 눈이 녹아 진창인 길을 걸어 전적비공원에 도착하니 이곳에 오는 직선 차도가 있었는데 좀 질러 온다고하다가 개고생만했다
공원에는 넓은 주차장이며 산골에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화장실 특히 출입문이 자동으로되어 있는데 공중화장실이 자동문 으로 된건 처음 본다 휴게소도 있고 사단에서 운영하는 안내소도 있는데 병사2명이 근무 하고 있었다 올라가다 보니 길 양편에 조그만한 기념관 있었다
여러가지 조형물이 많이 설치 되어 있었다 위령탑 뒤로 한 50미터를 가니 상승각 이라는 정자가 보이고 정자에는 보신각 종 같이 생긴 종이 있는데 특별한 날에 만 타종하는것 같다 내가 근무시 사단 전망대에도 이런 종이 있어서 연대장시절 그곳에 올라가 타종한 기억이 나는데 그걸 옮겨 온것은 아닌지? 사단장이름을 보니 학훈출신 김봉찬장군 이다
상승각 있는 고지에서 조금 앞으로 나가니 멀리 뿌연안개속에 백마 고지가 흐미하게 보인다 한국 전쟁당시 24번이나밀고 당기면서 이 땅의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가고서도 오늘도 아무 말없이 그자리에 태연히 서 있다 얼마나 팔자가 기구하면 이름 없던 산봉우리가 아직도 서로 총뿌리를 겨눈채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고 있는 젊은 이들을 머리에 이고 있을까 ? 열차시간이 되어 뿌연 안개 속에 백마고지를 뒤로하고 내려 오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 나서는 안 될텐데 하는 마음인데 북한은 하지 말라는 핵실험을 하려고 고집힌다는소리가 들리니 마음이 무겁다
야전군 생활을 철원평야 에서 시작 철원평야에서 마친 나는 남다른 감회가 서린다
옛 추억의 흔적 을 찾으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차창을 통해 내다보니 내가 월남 차출 전 1965년 8월까지 근무 했던 포대지역은 흔적도 없고 모두 누군가의밭으로 변해있었다
열차에서 간간히 밖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눈 부시게 발전 했다고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칭찬 이 헛 소리가 아니였음을 새삼 느꼈다
60년대 경원선 차창 밖의 초라한 시골 집들과 군인들만 북적대던 덕정,동두천 ,초성리, 전곡 ,연 천 .대광리, 신탄리등의 한적한 시골 동네들이 지금은 지방의 어느 도시 못지않게 모두 눈부시게 발전 한것 같다 우리가 그걸 잘 모르고 사는게 문제라고 어느 유명한 논객이 지적 했듯이....
부디 내가 타고 가는 이 경원선 철도가 백마고지역애서 머물지랄고 원산까지 한숨에 달리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라면서 백마고지역경원선 이야기를 마친다
소요선역
백마고지역 驛舍은 현재 신축확장중
차에서 내려 驛으로 나가는 사람들
우이철로를 따라 철마는 언제쯤이면 원산 까지 달릴수 있을까?신틴리에서 북으로 한 정거정 오는데 60년이 걸렸으니 아득한 천리?
동두천부터 우리를 싣고 온 열차 (증기기관차가 끌다가 ,디젤기관차로끌다가 ,디젤로 움직이는 기동차 그리고 전기열차로바뀌어도 통일은 오지않으니..기관사가 안잔 점검중
민통선 안에 제법 큰 초등학교인 묘장초등학교
첫번째 한문자가 무슨 자인지 몰라서 들어가서 초석의 글을 읽어보아도 비석명은 모르겠네요 주민에게 물으니"개척비라고 하는데 유식한 사람이나 읽지 우리같이 대학원 석사는 못 읽겠더라고요
전적비
어렵게 부탁해서 증명사진한장
위령탑 오라가는길
위령탑
상승부대 5사단에서 세운 상승대 사단전망대에에도 팔각정이있었고똑 같은 종이있었는데 그 종을 옮겨온 것 아닌지 ?
시계가 흐려 안내판의 지도사진을 찰칵 너무 유명한 고지인데 자세히 보려고 쌍안경까지 가지고 갔는데 무용지물 포병연대장 때 딱 한 번 GP에 간적이 있는데 절차가 너무 번거롭드라구요
내가 위령탑이 있는 고지에서 카메라로 잡은 뿌연 안개속에 백마고지 말이 없다
위령탑 올라가는 길옆에 세워진 기념관 속의사단마크의상징물
전시된 고 김종호장군의 사진및 기록물들
장군의유물들
전적지 주차장의 편의시설들
처음엔 멀리서 강아지인 줄 알았더니 백마부대 마크속의상징인 백마인데 공원입구에 있는 백마교 머릿 돌위에 서있는 조각상 그런데 너무 작은것 같다
나가는 열차는 역에서 표를 팔지않고 열차에서 여객전무가 직접 표를 판다 거의가 500원짜리 손님들이니 매표원 봉급도 안 나올것 같으니까 그래서내가 차비가 너무 싸다고 하니 여객전무가 웃는다
달리는 차창을 통해 내가 월남에 가기 전까지 몸 담았던 20사단 70대대 챠리포대를 지나면서 보니 그 때 있던 부대는 흔적도 없고 모두 누구네 밭으로 변해버렸다
첫댓글 위에 글은 오래전 본인이 경원선 철길이 백마고지역까지 연장개통된 직 후 백마고지전적지를 다녀온후 적은글인데 30일 오늘 백마고지를 간다기에 따라가려다가 취소되었기에 이 글을 찾아 올려 봅니다 하긴 본인은 연대장시절 차를 타고 방문차 백마고지정상을 올라본 일도있지요
심심풀이로 보아주시기를....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