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의 클래식 여행-사랑을 위해 아리아를 작곡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3
모차르트는 철부지 개구쟁이‘아마데우스’에 묘사
피가로의 집은 모차르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모차르트에게는 결혼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일자리를 찾아 만하임(Mannheim)에 간 모차르트는 프리돌린 베버(Fridolin Weber)의 둘째 딸인 알로이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위해 아리아 <나는 모른다. 이 따뜻한 애정이 어디서 오는지, KV294>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만하임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모차르트는 다시 파리로 갔지만 여기서는 어머니 안나 마리아(Anna Maria Mozart 1720∼1778)가 사망하는 황망한 속에 어린 시절에는 신동이라며 환호하던 그들이 이제 성인이 된 모차르트에게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상심한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는 도중에 알로이자를 찾아가지만 베버(Weber)일가는 이미 악단을 따라 뮌헨으로 떠난 뒤였고, 다시 뮌헨으로 찾아가 보지만 그녀는 모차르트의 사랑을 거절하고 궁정소속 배우와 결혼하고 빈(Wien)에서 가수로 활동하게 되자 모차르트는 슬픈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알로이자를 잊지 못해서인지 그녀의 동생인 셋째 딸 콘스탄체(Constanze Weber, 1762∼1842)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을 두고 후세사람들은 알로이자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 콘스탄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내 콘스탄체는 다소 경박하고 경제 감각도 부족하고,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 시체를 버리다시피 하여 악처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 아버지는 모차르트와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매우 반대했다. 세상살이에 밝은 아버지 레오폴드의 강경한 반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후세사람들은 그녀를 나쁘게 평가하는지도 모른다. 콘스탄체는 천재 모차르트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모차르트는 알로이자에게 거절당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콘스탄체는 천사이었을 것이기에 그녀를 사랑했던 것임에 틀림없다고 추정된다.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콘스탄체와의 교제를 숨겨오다가 언제나 아버지의 의견에 따랐던 그가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를 무릅쓰고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강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가 결혼하려는 상대가 관연 누구인가하면····, 놀라지 마세요. 설마 베버(Weber)가의 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베버가의 딸입니다”.라고 했단다. 콘스탄체는 무도에의 권유(Aufforderung zum Tanze)를 작곡한 독일의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의 4촌 누나이다.
그녀는 6자녀를 낳았지만 두 아들만이 생존했는데, 칼 토마스1784∼1858는 밀라노에서 음악공부를 한 뒤 시 공무원이 되었고, 프란츠 크사버 볼프강1791∼11844은 빈에서 음악공부를 한 뒤 프리렌스 아티스트에서 살았다.
결혼 전 잘츠부르크의 빵집 딸 블로니아와 키스를 하고 대가로 곡을 써 주기도 했고, 첫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촌 여동생 마리아 안나 테클라(모차르트는 베즐레라 불렀다)에게는 민망할 정도의 외설적인 내용의 편지를 많이 보낸 것만 보아도 모차르트는 철부지 개구쟁이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의 허락을 기대하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결혼서약서에 서명한다.
서약서는 콘스탄체와 3년 이내에 결혼해야하며, 만약 결혼하지 않을 때는 300굴덴을 지불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모차르트의 연봉이 450굴덴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벌금의 크기를 알 수 있다.
빈의 시내 한 복판에 모차르트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을 작곡했던 이곳에는 무대의 모형, 어린 시절 초상화, 친필 편지와 악보 등이 전시되어있는 "피가로의 집"은 모차르트가 결혼도하고 안정된 생활로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곳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국제재단 모차르테움(Internationale Stiftung Mozarteum)은 부인 콘스탄체와 두 아들이 생존해 있던 1841년에 잘츠부르크에 설립되어 모차르트와 그의 가족들의 귀중한 자료들인 서신, 원본 악보, 집들을 상속 받았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양형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