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짜리 겸재의 금강산도
이동민
2009년의 KBS의 역사 스페셜 방영에서 내건 제목이 ‘50억 짜리----’이다. 유투부를 보다가 내 눈이 끌려간 것은 겸재의 금강산 그림이 아니고 50억이라는 돈의 액수였다. 방송사나 신문사에서는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훤히 알고 내건 제목이었으리라. 얼마 전에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죽으면서 기증한 작품 중에도 겸재의 금강산도가 있었다. 그때도 신문이 뽑은 제목은 ‘500억 ------’라고 했다. 지금은 이 작품도 그 액수가 되리라고 계산을 하니 공연히 즐거워진다.
방송의 내용을 보니 돈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림 이야기 뿐이다. 1925년에 독일의 신부님이 이 화첩을 구입하여 독일의 수도원에 수장하다가 이번에 왜관의 성 베네딕트 수도원 박물관에 기증하였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작품을 소개하려는 것이었는데도 제목은 돈으로 하였다. 수도원 신부님이 우리보다 자본주의가 꽃핀 사회에서 오셨으니까 돈으로 계산하여 이 작품을 샀을까. 나는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오늘날 예술작품을 만드시는 분들이나,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돈 때문에 작품을 제작한다고 말하면 인격에 손상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내면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내 영혼의 표현이다 라는 말까지도 한다. 어렵고 고상한 말을 총동원한다. 나도 곧잘 돈 때문에 책을 출판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해 왔다.
오늘의 조선일보(2021. 9. 10)에 제미 있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제목이 ‘그 많던 문학 밀리언 셀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였다.
1980년에서 2000년의 사이에는 판매부수가 100만 부에 이르는 문학작품이 심심찮게 나왔다. 출판사와 작가에게 엄청난 부를 쌓아주었다. 신문에 실린 글의 제목은 돈이 아니고 ‘100만 부’ 였다. 그게 그것이지만 100만 부 뒤에는 돈보다는 고귀한 그 무엇이 있는 듯이 돈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오늘의 신문에서는 돈이 들어오도록 하는 그 무엇을 노골적으로 흥행이라고 했다. 흥행이라고 하면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한다는 뜻이 강하다. 흥행에 성공하려면 내가 무엇으로 경쟁해서 이겨야 할까. 문학이고 예술이니 예술성으로, 작품성으로, 문학성으로 경쟁하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는 것은 세 살짜리 어린이도 안다. 흥행이라는 말이 상업 용어이니 장사수단으로 이겨야 한다. 오늘의 독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자주, 많이 만나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판매 부수를 결정한다. 좋은 평가란 것도 예술성 따위가 아니고 광고효과로 그냥 그 작가가 좋다는 팬덤현상으로(무조건 좋아 하는 팬 컬럽 같은 모임) 결정한다, 미디어 매체에서 얼굴이나, 이름을 자주 비추어야 광고효과가 크다. 신문의 분석을 보니 나는 태생부터 팔리는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예전에 무명작가가 책을 내는 것을 두고 ‘읽지도(팔리지도) 않는 책을 왜 내느냐, 라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그 말은 내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책을 낼 적마다 마음에 부담을 느낀다. 오늘, 조선일보에 난 기사를 보니 내 성격으로는 독자에게 내 이름을 알리려는 일은 글쓰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신문이 오늘의 출판 정보를 알려주어도 이용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도 왜 번번이 책을 내는지 모르겠다.
’돈이 아니다‘라는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요즘 이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산책을 할 때면 거의 이 생각에 매달려 있다. 속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사람들은 돈 이야기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니까. 내가 돈이 아닌 이유를 끌어오더라도 반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내 말에 승복할까. 승복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할텐데.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쓴다,면 ’노년을 잘 사시네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돈을 들여 책을 낸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산책 중에 갑자기 200년 전에 유디트라는 그림을 그린 여자 화가 젠탈리스키가 생각났다. 200년 동안 무명작가였다. 1970년 대 이후로 여성운동의 불이 타오르면서 젠탈리스키라는 여자 화가는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되었다. 아시아 대륙의 먼 변방에 살고 있는 나까지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지 않는가. 그의 작품은 아마도 돈의 액수를 매길 수 없이 비쌀 것이다. 만약에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림을 왜 그려, 왜 남겨, 라는 회의에 빠져 남기지 않았다면------
그래 죽은 뒤의 어느 날에 행운의 신이 찾아올 지도 모르지. 작품을 남겨놓지 않는다면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잖아.
어쨌거나 나는 팔리지도 않는 책을 출간하는 이유를 겨우 찾았다. 죽고 난 뒤에라도------.
2021, 의사수필가 집에서
첫댓글 글을 쓰고
책을 내는것이
자기 만족이나 축복 이라면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