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 시 27:4, 8) 1-14절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과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진리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안이한 [너무 쉽게 여기는 태도나 경향]시절을 약속받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그런데 왜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합니까?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을 위해 이처럼 엄청난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더욱기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삶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서 있는 위치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이끌고 ,시작해야 합니까?
1. 우리가 항상 하늘 곧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 이 땅으로 내려와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이미 확인한 것에 비추어 인생의 문제에 직면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원리입니다.
왜? 하나님의 으로 시작 해야 합니까?
우리을 도우시는분이 하나님이요,
이 난제을 해결하게 하시는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에서 시작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절대로! 땅에서 시작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사람들에게서 시작하지 마십시오.
항상 하늘에서 시작하십시오.
항상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십시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 4:12-13의 영광스러운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실지로 “내가 어디 있든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나 됨을 발견하고, 그분 안에서 승리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바가[눈물의]의 골짜기 일지라도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5:2)고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3)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참 비결 입니다.
우리를 대적 하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행복해집니다.
[시편 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삶에 질서를 가져올 뿐 아니라,
또한 이 질서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 기뻐할 수 있도록 합니다.
눈물 골짜기는 “바가의 골짜기(the valley of Baca)”의 번역이다. “눈물 골짜기(the vale of tears)로 지날지라도,
그곳으로 샘의 곳이 되게 하며.”
바가의 골짜기는 눈물 골짜기,
한숨의 골짜기 또는
슬픔의 골짜기로 번역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가”(Baca)는 눈물의 나무라고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나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골짜기는 항상 깊은 곳에 빠져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닫혀 있고 막혀 있는 장소에 우리가 있을 때,
시험과 환난이 있을 때,
모든 것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며 낙담시키며 희망을 빼앗아 갈 때,
바로 그때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말하기를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축복은 항상 위대하며 영광스러우며, 놀라운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 독일의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 또는 다른 곳에 있던 이들을 살펴 보십시오.
119편 기자와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71절). 그렇습니다.
이들은 “복음의 진가를 용광로 안에서 발견했노라! 그곳에서 찾았노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그저 그것을 인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것을 겪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롬8:37).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절).
그들은 바가의 골짜기를 지날 때, 그곳을 우물로 만듭니다.
눈물을 샘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바가의 골짜기를 샘으로 그리고 기쁨의 장소로 변화시킵니다.
2.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시 27:13).
시편 기자는 자기 자신에게 확신의 근거를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원천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시 27:1)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여호와가 비결입니다.
인간 자신이 아닙니다. 신자도 아닙니다. 여호와를 믿는 확신이 비결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6).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래서 하나님 집 , 성전에서 하나님께 건짐 받은 이야기는 허다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집은 하나님의 더 알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만나도록 한곳에 하나님의 교회 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면 감사 하면서 우리는 상황을 비추는 빛을 가지게 됩니다.
다른 길, 다른 종류의 삶, 다른 출구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나오기 게을리 하는 이들 일수록 ,
가장 적게 순종하는 사람 일수록 이 세상의 난제와 당혹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가장 큰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가 실망할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은혜을 베풀기로 정한곳 이고 그렇게 정하신분이 하나님 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자주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행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나를 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 한다면
성경의 지식과 영으로 고난에서 벗어나 평화와 안식과 안전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갑니다.
전환[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꿈]과 -=선교사역 유럽에서 아시야로
해방[ 구속이나 억압 같은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과-죄외 무거움짐
이동[움직여 옮김]이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
3.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시 27:1)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7~9).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30).
당신은 하나님의 전지 하신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은 실수나 혼동하지 않습니다. 전지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의 이해와 배려 밖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전지하심 밖에 있는 것은 결코 없다.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의 모든 원인을 모든생각, 모든비밀, 모든 불가사의 , 모든느낌, 모든갈망. 모든 권세 , 모든인간, 모든 보이는 것 , 보이지 않는 것 ... 전부을 아신다
하나님은 단순히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기도를 자극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1. 여호와를 믿으라!
이것이 인생의 출발점이다.
2.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라!
하나님이 여러분인생의 최고의 촛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이 여러분의 욕구와 야망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달려가노라"(빌 3:10~14).
항상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고 교제하며 그분과 접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응시하는 것, 이것이 예배다.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응시하는 것.이것이 인생의 참된 비결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최고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간청으로 기도를 시작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인격과 행사의 영광을 응시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분을 찬송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렇게 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 자신의 간청을 털어놓습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아뢰라"(빌 4:6).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영광스러운 속성 곧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 그리고 그분의 온갖 경이로운 활동을 응시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낱낱이 찾아내 찬송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간청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14절).
왜?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길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시켜야 한다는 중요한 이유?
야고보는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약4;13] 고 말해서 안된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4;15]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구한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렇게 오랜 기도의 열매가 맺어진 것은
그일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거기만이 안전한 처소가 있고.
거기만이 평강의 자리요.
범사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