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묻힌 인류
인류 탄생 이후 수 십만 년을 훑어보면,
최근 100년을 뺀 나머지는 땅에 국한된 문명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훗날 인류로 분류될 원시인들은 그런 태고의 자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적응해 왔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급속하게 이루어진 과학의 발달로 문명은 입체적 양상을 띠며 급격하게 바뀌어 갔다.
허리 숙여 땅을 일구며 하늘을 우러르던 인류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발명으로 졸지에 2차원 지면을 박차고 3차원 공간으로 뛰어 올랐다.
그도 잠시,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지구라는 행성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우주에는 단 하나의 은하계 밖에 없다는 것이 과학의 지론이었고 너무도 당연한 진리였다. 그러나 지속된 과학의 발달은 인류로 하여금 우주에 수 없이 많은 은하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우주가 매우 빠른 속도로 팽창해 왔다는 사실을 속속 깨닫게 했다.
그 와중에 지상에서는 굵직한 전쟁이 인류 자신을 무참히 휩쓸었고, 냉전(cold war)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싸움에 지루한 세월이 다시 흘렀다. 이념이라는 시대 상황이 야기시킨 경쟁은 오히려 과학의 발달을 부추기는 묘한 현상을 낳기도 했다. 그 결과, 인류는 지구라는 땅덩어리를 벗어나 달이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는다.
올려다 보기만 했던 달을 처음으로 내려다 보게 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1962년 금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여러 번에 걸쳐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계의 제일 안쪽 행성인 수성뿐 아니라 까마득한 목성 주위를 탐사선들이 돌고 있으며, 오래 전에 보낸 보이저 1, 2호는 이미 태양계의 바깥 경계에 도착해 있다.
어느 행성에 어떤 탐사선을 보내건 이들의 공통된 주 임무는 물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지구에서와 같은 생명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1990년 중반에는 화성에서 살았던 미생물의 화석이 세상에 발표되기도 했다.
화성과의 엄청난 충돌을 일으킨 운석의 파편이 우주 공간으로 튀어 올랐고, 그 과정에 마치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화성 원시 생물의 화석이 묻었던 것. 파편은 지구와 화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 수 백 만년의 시간 동안 떠돌다가 우연한 기회에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남극에 추락했다.
남극만 골라서 추락한 것은 아니고, 남극에 추락한 파편들만 풍화를 피해 현시대에 전해진다.
한편 인류가 아무리 지구 밖으로 나가 다른 세계를 방문하고 심지어 달에 옥토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 했더라도, 여전히 불변인 것이 하나 있었다. 지구상에 잠시라도 발을 디뎠던 사람이라면 모두 이 땅에서 태어났고 이 땅의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불변의 사실이 얼마 전에 깨어졌다.
슈메이커(Shoemaker)라는 미국의 천문학자는 어릴 때부터 달을 동경했다고 한다.
천문학자가 된 이후 그의 삶은 평생 밤하늘을 일구는 일상으로 메워졌다.
꼬리별(또는 살별), 일명 혜성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슈메이커 부부가 함께 발견한 꼬리별은 한둘이 아니라서 아예 번호를 붙여야 할 정도. 현대에는 첨단 관측 장비가 밤하늘을 샅샅이 훑고 있어서 웬만한 꼬리별은 이미 다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그칠 줄 몰랐던 그의 집념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1994년 목성과 꼬리별의 충돌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천문학계에서도 세기적인 우주 쇼의 현장을 보기 위해 전세계의 거대 천체망원경들이 목성을 향했다. 마침내 목성과의 충돌을 일으키며 꼬리만큼이나 길었던 수명을 다한 녀석의 이름이 다름 아닌 슈메이커-레비 9(Shoemaker-Levy 9). 레비와 동시에 발견한 것이고, 슈메이커 독자적으로 발견한 꼬리별만 해도 10여 개가 넘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별바라기에 쏟아 부었던 슈메이커도 1997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평생 소원이 현대 과학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얼마 전이었다.
1998년 1월 물의 흔적을 찾기 위해 미국 나사(NASA)가 연구용으로 쏘아 올린 무인 우주선에는 그의 유해 일부가 실려 있었다. 지구를 무사히 떠난 탐사선이 달과 충돌을 하는 순간 그의 유해는 달 표면에 뿌려졌다. 이로써 지구인 최초로 달에 묻힌 사람이 생긴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서양에서는 우주장(宇宙葬)이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비싼 우주선을 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캡슐에 유해를 담아 대포로 대기권 바깥까지 쏘아 올리는 방법을 캐나다의 어느 기업이 고안하고 있다고 한다. 원초적 고향인 우주에 대한 지구인의 염원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수목장(樹木葬)이 도입되었다. 좁은 땅덩어리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글이 미래의 과학화된 장례 문화를 알리기 위한 글은 아니다. 냉전 시절에는 핵무기가 그 나라의 과학 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 척도였다면, 이제는 우주 개발이 한 국가의 과학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세계의 과학 흐름에 응할 수 있는 능력 배양과 더불어 우리만의 독창적인 과학 개발이 아쉽다.
더불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종교는 종교이고 정치는 정치여야 하듯, 종교는 종교이고 과학은 과학이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눈과 귀를 틀어막고 과학을 타박하는 아집을 보이거나, 진화를 거듭하고는 있다지만 현 과학이 풀지 못한 것도 분명 있건만 인정하길 거부하는 듯한, 양쪽의 같잖은 말싸움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
구쏘련의 우주인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가 남긴 말을 새기고자 한다.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그러나 영원히 요람 속에서 살 수는 없다.”
사진 설명
1. 화성 미생물의 화석 추정 (NASA): 발표되자마자 시작된 반론과 그에 대한 반박이 현재까지 만만찮게 진행 중이다.
2. 슈메이커-레비9과 목성의 충돌 (N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