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7장 1절 – 7절
이 세상의 종교는 음란합니다. 인간의 생각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사람들은 바알이 비를 내려주고 바알과 아세라의 음란을 통해서 곡식이 산출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세라의 전을 섬기는 여자 사제들은 마을로 와서 뭇남성들과 음란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살아가는 가나안의 문화였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문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신앙은 종교화 되고 문화는 철저하게 가나안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점을 치러 다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아닌 무당을 찾아기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무섭게 번져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앞에서 무수한 종교의식을 하닌까 하나님이 복위에 복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어두운 회중들은 이를 옳게 여기고 그 말이 자기들 삶에 확실하게 이루어 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왕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문제를 만나면 바알과 아세라에게 나가 답을 구합니다. 아무리 입술로 주여, 주여라고 하여도 삶에서 하나님이 주되심을 나타내지 않으면 그것은 말장난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셔서 그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천사와 같은 자라면 모든 삶에 복에 복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도 악하고 악한 문화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 즉 악을 행하였는데 아무런 일도 없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생자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징계를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셔서 비를 내리시지 않으십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조차도 비는 하나님이 내리신다고 말하면서도 가뭄이 오면 즉시 바알에게 나아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비는 바알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임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알게 하시기 위해서 가뭄을 주십니다. 가뭄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알에게 나가 지극정성을 다해 빕니다. 그리고 성소에 와서는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을 구하므로 소경되고 귀머거리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먼저 선지자들에게 보이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행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에게 보이십니다. 그래서 예언적중보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교회들이 엉망진창이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기도하는 무리들을 세우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도 철저하게 하나님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안에서 하나님아버지의 보이시는 그 일을 믿음으로 보고 헌신하심으로 참예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일을 하려면 주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주님의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을 보지 못합니다. 보는 것이 관건인데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