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편지」
-지리산의 생일선물
아이들이 빗길을 헤치고 내려와 8일간의 몽골여행으로 미뤘던 지공거사 임명식(65세 생일)을 주말에 치렀다. 쏟아지는 빗길이 걱정되어 서둘러 아이들 떠나보내고 뒷설거지하고 나니 집이 초파일 지난 산중 암자같이 적막해졌다.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좀 빤해지는 것 같아 숲길 산책을 나섰다. 실은 어제부터 천은사 숲길 노랑망태가 피었는지 가보고 싶었던 참이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한참을 가는데 그만 가슴이 쿵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안경을 끼지 않아서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게 무엇인가?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분명 대흥란이었다.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리산자락에서는 딱 3촉 본 적이 있는 귀하디 귀한 야생난초였다.
그것도 1촉이 아닌 5촉이나!! 그야말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조심스럽게 풀숲을 헤치고 사진을 담았다. 오후 5시가 넘어 사진을 담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고 흐린 날씨였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해마다 이 녀석을 만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여의 산행을 해야 겨우 만날 수 있었는데 이리 지척에 피어있다니, 암만 해도 꿈만 같은 일인데 돌아오는 길에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분명 지리산이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었다.
그 어떤 선물보다 뜻깊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두고두고 만날 수 있도록 지리산국립공원 측에 보호를 요청해야겠다.
*대흥란은 무엽란이다. 보통 식물들은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만들어 내지만 무엽란은 잎이 없기 때문에 영양분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무엽란 종은 곰팡이와 같은 다른 균류들이 이미 분해해 놓은 영양분을 흙 속에서 얻어서 살아가는데, 이런 식물들은 부생식물이다. 그래서 이런 야생난들은 옮겨 심으면 부생성 균류가 없어 살 수가 없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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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우 해피버스데이 투유 ㅎㅎ
언젠가 제가 늘 이 카페에서 많은 느낌을 받았는대요. 매우 오랜만 반갑습니다.
귀한란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