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31편
군사들은 명을 받고 소양 등 세 사람에게 칼을 씌우고 옷을 벗겨 늘어세웠다. 원수부 앞에 구경하러 온 군사들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한 진정한 대장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소가수란 사람으로, 원수부 남쪽 거리의 종이 파는 가게 옆집에 살고 있었다.
그의 고조부 소담은 자(字)가 승달인데,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형남의 자사(刺史)를 지낸 사람이었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둑을 무너뜨리자. 소담은 친히 군사들과 관리들을 이끌고 나와 비를 무릅쓰고 둑을 쌓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수세가 거세지자, 군사들과 관리들이 잠시 피하라고 하자 소담이 말했다.
“한나라 때 동군태수였던 왕존은 몸으로 강물을 막았는데, 내가 어찌 물러나겠는가?”
말이 끝나자, 강물이 뒤로 물러나고 제방이 무사하게 되었고 한다. 그 해에 벼 한 줄기에 이삭[穗]이 여섯 개나 달렸다고 하였다. 소가수(蕭嘉穗)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취한 것이었다.
소가수가 우연히 형남에 가게 되었는데, 형남 사람들이 그 조상의 인덕을 사모하여 소가수를 아주 공경하였다. 소가수는 성격이 호탕하고 뜻이 높았으며 도량도 넓었다. 힘도 남들보다 세고 무예도 뛰어났으며, 담력도 대단하였다. 그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귀천을 막론하고 사귀었다.
왕경이 반란을 일으켜 형남성을 침략하였을 때 소가수는 적을 방어할 계책을 바쳤는데, 장수가 그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아 마침내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역적들은 백성들에게 성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지만 성을 나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가수는 성중에서 밤낮으로 역적들을 도모할 궁리를 했지만, 실 한 가닥으로는 밧줄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역적들이 소양 등 세 사람을 옷을 벗겨 늘어세운 것을 보았고, 또 송군이 소양 등을 구하기 위해 성을 급하게 공격하여 성중의 군사와 백성이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소가수는 생각했다.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성중의 많은 목숨들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소가수는 일단 거처로 돌아갔다. 이때는 오후 4시쯤 되어 있었다.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먹을 갈게 하고, 이웃의 종이 가게에서 두터운 종이 여러 장을 사왔다. 그리고 저녁에 등불 아래에서 큰 글씨로 격문을 지었다.
성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송나라의 양민이어서 결코 역적을 기꺼이 돕지는 않을 것이다. 송선봉은 조정의 훌륭한 장수로서 오랑캐들을 죽이고 전호를 사로잡았으며, 이르는 곳마다 그 예봉을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그 수하에는 108명의 장수들이 있어 그 정이 팔다리와 같다.
지금 원문 앞에 세워져 있는 세 사람은 의기를 지켜 무릎을 꿇지 않고 있으니, 송선봉을 비롯한 영웅들의 충의를 알 수 있다. 오늘 역적들이 만약 이 세 사람을 죽인다면, 성중에는 병사와 장수들이 적어 조만간에 성이 깨뜨려지게 되면 옥석(玉石)이 모두 불타게 될 것이다. 성중의 군사와 백성은 목숨을 보존하고 싶다면, 나를 따라 역적들을 죽이자!
소가수는 격문을 여러 장 쓴 다음 몰래 성중의 동정을 정탐해 보았더니, 집집마다 백성들이 우는 소리만 들렸다. 소가수는 생각했다.
“민심이 이러하니, 내 계획이 성공하겠구나!”
새벽에 거처를 나와, 격문을 원수부 앞의 거리에 뿌렸다. 잠시 후 날이 밝자, 군사들과 백성들이 여기저기서 격문을 주워 읽기 시작했고 잠깐 사이에 많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읽었다. 그때 순찰을 돌던 군졸 하나가 격문을 주워 나는 듯이 달려가 양영에게 알렸다.
양영은 크게 놀라, 급히 선령관(宣令官)을 내보내 명을 전하여 군사들은 원문과 각 영채를 잘 지키는 한편 첩자를 체포하라고 하였다.
소가수는 몸에 칼을 감추고서, 사람들 틈을 뚫고 들어가 격문을 큰소리로 두 번이나 낭독했다. 군사들과 백성들은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선령관이 주장의 명을 전하기 위해 말을 타고 5~6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다가왔다.
소가수는 고함을 지르면서 앞으로 나아가 감추고 있던 칼을 꺼내 말 다리를 베었다. 선령관이 말에서 떨어지자, 한칼에 그 목을 잘라 버렸다. 소가수는 왼손에는 수급을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서 큰소리로 외쳤다.
“살고 싶으면, 이 소가수를 따라 역적을 죽이러 갑시다!”
원수부 앞에 있던 군사들은 평소에 소가수가 무쇠 같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삽시간에 5~6백 명이 모여들었다. 소가수는 군사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백성 중에서도 담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도우러 오시오!”
소가수의 음성이 백 보 밖에까지 울려 퍼지자, 사방에서 호응이 일어났다. 백성들이 몽둥이나 탁자다리 등을 들고 5~6백 명이 모여들어 함성을 질렀다. 소가수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이끌고 원수부로 쳐들어갔다.
양영은 평소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포학하고 툭하면 부하들을 매질했기 때문에, 호위장수들까지도 원한이 골수에 맺힌 터였다. 변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듣자마자, 모두 소가수의 무리에 합류하였다. 그들은 원수부로 돌입하여 양영을 비롯하여 그 가족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소가수가 사람들을 이끌고 원수부를 나섰을 때에는, 따르는 사람이 이미 2만을 넘었다. 소가수는 소양·배선·김대견의 칼을 벗기고 힘센 장정 세 사람에게 그들을 업게 하였다. 소가수는 양영의 수급을 들고 북문으로 달려가, 문을 지키던 마강을 죽이고 군사들을 쫓아 버린 후 성문을 열고 조교를 내렸다.
그때 오용은 북문 앞에서 성을 공격하는 장병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갑자기 성중에서 함성이 울리면서 성문이 열리자, 역적들이 쳐들어 나오는 줄 알고 급히 군마를 후퇴시켜 진을 벌렸다. 그때 소가수가 사람 머리를 들고 나오는데, 그 뒤에는 세 군사가 등에 소양 등을 업고 황급히 조교를 건너오고 있었다.
오용이 깜짝 놀라 바라보고 있으려니, 소양 등이 큰소리로 외쳤다.
“오군사! 이 장사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역적을 죽이고 우리를 구해 주었습니다.”
오용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놀라면서 한편으로 기뻐하였다. 소가수가 다가와 오용에게 말했다.
“창졸간에 일이 벌어져 인사드릴 여가가 없습니다. 군사께서는 빨리 병력을 이끌고 입성하십시오!”
조교 곁에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소리쳤다.
“송선봉은 입성하십시오!”
오용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마침내 장병들에게 입성하되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자는 그 대오까지 모두 참하겠다는 명을 내렸다. 성의 북쪽을 지키던 군사들은 사세가 급하게 된 것을 보고 모두 무기를 내던지고 성을 내려와 투항했다.
동서남 세 방면의 군사들도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적장들을 포박하고 성문을 활짝 열고서 향화와 등촉을 밝히고 송군을 영접하여 입성시켰다. 오직 미생이란 놈만 용맹하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틈에 서문을 빠져나가 포위를 뚫고 달아났다.
오용이 사람을 보내 송강에게 보고하자, 국가를 걱정하고 형제들을 위해 눈물 흘리던 송강의 병세가 보고를 받자 거의 나아 버렸다. 송강은 기뻐하면서 영채를 뽑고 장수들과 대군을 거느리고 형남성으로 들어갔다. 송강은 원수부에 좌정하여 군사들과 백성들을 안무하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송강은 소가수를 원수부로 불러 성명을 물은 다음, 상좌에 앉히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장사의 쾌거로 역적들을 죽이고 많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으며,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성을 수복하였습니다. 게다가 저의 세 형제까지 구해 주셨으니, 송강이 마땅히 절을 올리겠습니다.”
소가수는 답례하고서 말했다.
“이번 일은 제 능력이 아니라, 모두 여러 군사들과 백성들의 힘이었습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서 소가수를 더욱 공경하였다. 송강 이하 장수들의 인사가 끝나자, 성중의 군사들이 적장들을 끌고 왔다. 송강은 투항하는 자들을 모두 용서하였다. 그러자 성중에는 환호소리가 진동하였고, 투항한 자가 수만 명이 되었다. 그때 마침 수군두령 이준 등이 배를 거느리고 한강에 당도하여, 송강을 찾아와 뵈었다.
송강은 술을 내어 소가수를 대접하면서, 친히 술잔을 권하고서 말했다.
“족하의 재능과 덕이 크니, 제가 조정으로 돌아가면 천자께 아뢰어 높이 등용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