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트바로티

[西疇 / 지성해]

 트바로티

 아내가 평소 노래 듣기를 좋아하여 토요일 저녁 KBS2에서 방영하는 '불후의 명곡'은 빠지지 않고 보는 편이라 나도 가끔 그 자리에 함께한다. 그런데 아내가 얼마 전부터는 김호중이 부른 '고맙소'라는 곡을 듣고부터는 전혀 관심이 없던 트로트를 좋아하게 되었고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자주 듣곤 한다.

 그런데 2020.4.14 저녁 10시에  MBC에서 방영한 김호중 특집을 보고 나도 그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고 각자 재혼함으로 인해 그에게는 엄마나 마찬가지였던 할머니의 손자 사랑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2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후부터 할머니가 하신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고 한다.  '어른에게 인사 잘 하고 남에게 박수 받는 사람이 되라'는 아주 평범한 말씀이었지만 방송 내용을 보니 인간관계-이웃과 선후배 관계-가 원만해 보였는데 할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김천예고 졸업 후 한양대 음대를 다니다가 독일 유학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우리나라 성악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한정된 상황이었다. 결국 행사장, 결혼식장을 전전하며 축가를 부르며 갖은 고생을 하다가 트로트 가수가 되었는데 그를 '트로트'와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조합하여 '트바로티'로 부른다는 것이 참 재밌다. 그의 특이한 이력으로 인하여 완전히 다른 분야 같았던 성악과 대중가요가 음악이라는 넓은 의미로 만난 것이다. 앞으로 그가 가진, 단단하게 다져진 성악적인 기초 위에서 우리나라의 트로트가 발전하여 또다른 한류로 자리매김할 날을 기대한다.

 내 생각에는 김호중이 대중가요 가수가 됐지만 앞날을 내다보고 이왕에 배운 성악도 틈틈이 갈고 닦아 '트바로티'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대중가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언젠가 오페라 무대에 깜짝 출연해서 트로트와 성악을 음악이라는 큰 이름으로 묶어 내는 실력을 발휘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오페라 공연 중에 트로트를 몇 곡 불러도 좋고 트로트와 성악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모습을 실감있게 연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가 가수로서 누리고 있는 대중적 인기가 성악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면 한국인이 즐기는 음악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으리라고 본다.

 모교를 방문했을 때 선생님이 보관하고 있던 성악 레슨 동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얼마나 이태리 가곡을 잘 부르는지 고등학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또 즉석에서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태리 가곡을 불렀는데 좀 힘들어 했지만  '아직 '녹슬지 않았네'라는 칭찬을 받은 걸로 보아 음악적이 재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트로트와 가곡,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트로트만 주로 듣고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곡만 듣게 되지만 경계선을 긋고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많이 듣다 보니 귀에 익어서 다른 쪽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김호중은 원래 꿈이 성악가였고 성악을 전공했지만 트로트를 부르게 되지 않았는가. 어떻게 보면 폭이 아주 넓은 사람이다.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분야로 진로를 넓힐 수 있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가끔은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다른 쪽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각자 취향이 있다. 그러나 그 취향이 좀 다르다고 해서 자기가 무관심한 분야는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든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전음악이든지 대중음악이든지 지구상 어디든 그곳에서 생성된 음악은 오랜 세월 생명을 이어 오며 주변을 장식한 야생화와 같은 것이 아닐까. 누구든 넓은 의미의 음악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편식이 몸에 좋지 않듯이 음악도 어느 한 분야의 음악만 가까이한다면 넓은 세상을 너무 좁게 사는 것과 같으리라. 다른 사람이 듣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그를 깊이 이해하게 되어 교류의 폭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전공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면 김호중은 음악적인 면에서 아주 폭넓은 삶을 영위함으로써 앞으로 우리 음악계에 크게 기여할 인물이라고 본다. 실제로 그의 노래를 들어 보면 트로트이지만 어딘가 이태리 가곡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트로트에 새로운 맛을 냄으로써 대중가요의 영역을 넓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트로트 가수이지만 성악적 재능이라는, 귀한 보물을 간직한 인물, 그야말로  '트바로티'이다.

 '고맙소'를 부른 후 무대가 회전하면서 오페라 '춘향전' 공연이 시작되고 이 도령으로 분장한 김호중이 춘향이와 함께 등장할 날은 언제일까. 이제 30이니 젊고 패기가 넘치는 그가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