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를 떠나며
김기태
기차를 타고 돌아온 사람은 이미
기차를 타고 떠날 결심을 했을 것이다.
난생 처음 당도한 이국의 도시에서 익숙하게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광장에 섰을 때 문득 13세기의 단테가 지옥을 거쳐 연옥을 지나 천국에 이르는 동안 사랑했던 베아트리체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궁금했다. 이윽고 두오모가 바라다보이는 종탑에 올라 그대와 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디쯤 있을까 생각하는 동안 은밀한 다짐처럼 울려 퍼지는 종소리. 내 가슴에 따끔하게 박히는 그 소리 사이로 나의 열정을 무너뜨리는 냉정한 그대가 보였다. 피렌체와 플로렌스가 다른 곳이라고 여겼을 만큼 잘 알지 못하는 도시를 서성이다 떠나기로 한 날 해가 넘어가는 곳으로 한참을 걸어갔을 때 강을 건너 이어지는 언덕이 보였다. 냉정한 그대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열정에 빠진 나를 위로했을지도 모르지만,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멀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것이 열정임을 알기에 묵묵히 무더위를 걷어내며 걸었다. 그렇게 정상에 이르러 열정의 숨을 삭이며 17세기의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를 빚을 때 사람들은 르네상스를 짐작이나 했을까 의심하면서 언덕에 모여 하루의 열매 같은 일몰을 기다리는 인파 속에 숨었다. 냉정을 향한 열정이 부끄러워 숨었다. 붉디붉은 햇살의 핏줄에 가려 보이지 않는 두오모를 기억하며 잘 숨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벌거벗은 다비드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냉정한 그대처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다비드의 시선 끝에 초라한 내가 있었을 것이다. 초라할수록 남길 것이 없어 홀가분하지만 이 넓은 도시에서 단테와 미켈란젤로가 남긴 흔적조차 느끼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왜 왔는지도 모른 채 떠나야 하는 나에게 열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되묻는 도시를 나는 달래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도시의 심장을 찾으리라 생각하며 이제 익숙해지기 시작한 도시를 버리기 위해 역으로 간다.
기차를 타고 떠난 사람은 이미
기차를 타고 돌아올 결심을 했을 것이다.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제목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