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한 지 40년을 훌쩍 넘긴 스님은 ‘햇중’일 때가 가장 신심 있고 공부도 잘 될 때라며 치열한 정진을 당부했다. |
중2 때 스님되겠다며 분황사서 행자생활
울력하며 공부…환희심에 힘든 줄 몰라
‘중노릇’ 기초 닦는 시간 평생 자산 돼 줄 것
지난 12일 문경 한산사에서 용성선원장 월암스님을 만났다. “도를 실천하는 대장부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열다섯에 입산한 스님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10대를 살았다. <화엄경> ‘약찬게’에서 말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은 40여년 전 스님의 이야기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스님의 삶은 분황사 법회를 참석하기 전과 후로 나눠진다. 이전까지 이렇다 할 불교인연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 읽은 위인전 속 스님들이 전부다. 경주불교학생회에 들어간 것도 특별한 끌림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회원 1000명인 불교학생회는 경주에 사는 중고생이라면 한 번쯤 나갔을 모임이었다. 태어나 처음 절에 가서 스님을 보고 법문을 들은 1970년 중학교 2학년 2학기 어느 날, 인생이 달라졌다. 지금의 은사 스님이자 당시 분황사 주지였던 도문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이 들려준 게송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도를 생각하리라. 나는 무엇을 말할까. 도를 말하리라. 나는 무엇을 행할까. 도를 행하리라. 하여 도를 생각하는 마음 잠깐인들 있으리까.” 게송을 듣고 환희심이 넘쳤던 소년은 스님이 돼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는 절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하고 그 길로 분황사로 들어왔다. “요즘 중2를 보면 애들인데, 그 때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다. 대장부라면 이 길을 가야 한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뭘 알아서 출가했을까 싶다. 전생사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분황사, 중생사에서 지낸 만 4년은 신심과 열정 두 단어로 요약된다. 반은 행자, 반은 학생이었지만, 학교 가는 날보다 절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학교에서도 교과서 대신 경전을 읽었다. “경전을 공부하다 보니 수업이 왠지 시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2 때는 경주불교학생회장과 영남불교학생회장까지 맡아 학교와 절, 불교학생회를 오가며 세 명 몫을 해냈다.
절에 있을 땐 나무 하러 다니고 밭에 나가 일하고 군불 때고, 법당 청소하고 어른 스님 시봉까지 하면서 힘든 줄 몰랐다. <천수경> <반야심경>을 외고 스님들 어깨 너머로 재 지내고 불공하는 법도 익혔다. 얼마나 신심이 났는지 ‘신묘장구대다라니’도 마음먹고 40번을 읽으니 통째로 기억됐다. 새벽 도량석도 맡았다. “그 땐 초성이 좋아서 염불을 하면 노 보살들이 ‘이 행자 염불 참 잘한다’고 칭찬했다. 그 말에 신심이 나서 더 열심히 했다.”
고3을 앞두고는 아예 남산 칠불암으로 들어갔다. 생식을 하며 1년을 지냈는데, 낮에는 염불하고 밤에는 참선하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염불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새소리도 ‘관세음보살’ 같고, 물 흐르는 소리도 ‘관세음보살’로 들릴 정도였다. 온 천지가 관세음보살을 외치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염불을 하다보면 5~6시간이 훌쩍 지났다.”
칠불암 달빛 아래서 한 좌선도 특별했다. “화두가 뭔지도 모르면서 동헌 노스님이 ‘이뭣고’를 하라고 해 참선을 시작했다. 몇 시간 씩 좌선을 하다보면 공중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경계가 나타난 것 같은데 그때는 그것도 몰랐다. 그저 환희롭고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10개월을 보내면서 “이제 도인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중생사로 내려갔는데 어른 스님들은 어림도 없다며 중단한 고등학교 공부를 마치라고 권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했지만 “그때 제대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은사 스님으로부터 정식으로 ‘시심마(是甚麽)’ 화두도 받고 참선을 했다. 마곡사, 백양사, 화엄사에서 공부하다가 영장을 받았다. “군입대 전 100일 기도를 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제 원통 같은 전방도 좋으니 군복무 3년 동안에는 절과 인연 없이 살게 해달라’고 발원했다.”
스님이 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30사단에 도착하니 군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인 보광스님이었다.” 기도와 달리 고양시 30사단 사령부 군법당 불광사에서 군종병 소임을 맡았다. 얼마 후 보광스님이 제대하면서 월암스님은 후임으로 온 황 모 법사와 함께 군생활을 했다.
“황 법사가 법회나 의식을 내게 미룬 덕분에 3년간 군복 대신 승복을 더 많이 입었다. 연대, 대대 법당까지 가서 법문을 했다. 정신교육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25번은 법문을 했다.” 출가해 지금까지 3000회 정도 법문과 강연을 했는데 그 중 3분의 1은 3년간 군대에서 한 법문이다. 얼마나 법회를 많이 했는지 대중강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포상휴가까지 받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개신교인 사단장이 스님 법문을 듣고 극찬했는데, 군종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며 1주일 휴가를 줄 정도였다. 군법당이 아닌 사찰에도 법문을 다녔다. 당시 법사비가 5만원 정도였는데, 법사비를 받아 부대에 돌아오면 내무반 사병들을 PX로 불러 배불리 먹였다. 법당에 찾아오는 병사들도 잘 챙겨줬다. 부대 내 ‘이 병장’의 인기는 제대할 때까지 식을 줄 몰랐다.
법문만 한 것도 아니다. 부대원들과 함께 경전반과 참선반을 만들어 공부했다. 당시 사단사령부에는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거나 재학 중인 소위 배경 좋은 집안 아들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 중 몇몇이 찾아와 법회만 보면 싱겁다며 함께 경전을 공부하자고 스님에게 제안했다.
바쁘다고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던 스님은 1주일에 한 번 경전을 배우는 모임을 만들었다. “<금강경> <원각경> 등을 함께 읽었는데 그 때 한문원전을 많이 봤다. 배우는 학인이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에 있어서 더 열심히 했다. 모르면 어른 스님에게 묻고 와서 가르쳐줬던 게 결국 내 공부가 됐다.”
입대 전 군 복무기간만큼은 불교와 관계없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100일 기도의 영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 셈이다. 스님 말처럼 군대 3년간 ‘중 노릇’ 실컷 하고 1981년 제대한 스님은 하동 칠불사에서 기도하다가 오랜만에 속가를 찾아갔다.
“집에 가니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줬다. 스님 되길 포기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유독 잘해주셔서 죄송스런 마음에 절에 간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1주일간 머무르다 결국 바랑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힘없는 목소리로 ‘마 가나’ 하고 인사를 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중생사로 돌아온 게 35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정진했을 스님이다.
순수함과 신심으로 자기 공부를 해냈던 그 때를 어제처럼 떠올리는 스님. 어른 스님이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열심히 했던 그 모든 게 자산이 돼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고 스님은 말했다. 선정, 염불삼매의 경험이 그렇다.
스님은 “칠불암 달빛 아래 참선을 하며 경계를 맛봤기 때문에 수좌로 살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걸망지고 선방에 다닐 수 있는 것”이라며 “투철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노력한 보람은 있다”고 피력했다. 또 “행자, 사미 시절, 갓 비구 되고 ‘햇중’일 때가 가장 신심 있고 공부도 잘 될 때”라고 강조하는 스님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지만 중노릇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자 출가자로 사는 평생의 바탕을 다지는 때”라며 초발심 시절의 치열한 정진을 강조했다.
■ 연예인도 정치인도 힘겨울땐 늘 初心…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연루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던 박상욱 신임 대법관은 지난 8일 취임식에서 “법조인의 항해를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프랑스 방송인 파비앙도 최근 방송하차 이유를 “초심을 잃은 것 같아서”라고 했다.
여성편력으로 이미지가 손상된 두 남성을 두고 한 연예매체는 ‘위기의 남자들 김현중 이병헌, 초심만이 살 길’이라는 기사제목을 뽑았다. 얼마 전 데뷔 10년만에 새 앨범을 낸 인기그룹 빅뱅의 태양은 “초심을 잃지 않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겠다”고 말했고, 이 발언은 중국과 일본 등 전 세계에 일제히 생중계됐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운동선수들이 입버릇처럼 거론하는 ‘초심’은 언제부턴가 유행어가 되다시피했다. 불교용어 초심(初心)은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킨 것’을 뜻하는 ‘초발심(初發心)’의 준말이다. 출가수행자인 스님에겐 처음으로 불문(佛門)에 입문한 마음을 의미한다.
공인들이 특히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사과와 반성 참회를 할 때마다 ‘초심’이란 단어를 끄집어내는 것은, 이들이 힘겨운 시절 힘을 얻기 위해 만난 스님들로부터 들었던 덕담을 옮긴 것 아닌가 추론할 수 있다. 무슨일이든 처음에 일으켰던 순수한 열정, 오염되지 않은 올바른 지향점, 이른바 ‘초심’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도박이나 마약, 음주운전 등으로 소란을 피운 연예인들이 자숙의 시간을 거친 뒤 활동을 시작할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 시청률을 독점해온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강봉규 PD는 같은 시간대 MBC와 SBS에서 ‘복면가왕’이나 ‘아빠를 부탁해’ 등이 앞다퉈 밀고 들어오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초심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강 PD는 “초심을 잃으면 프로그램이 변질되기 마련”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초심’이란 용어를 아예 간판에 내건 사례도 있다. 이달 말 종합격투기(MMA)대회 TOP FC를 앞두고 ‘초심’이란 주제로 팬이벤트를 열었는가 하면,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은 100회 특집을 ‘초심쇼’로 설정해서 출연진끼리 서로 거리낌없이 비평하는 마당을 펼쳤다.
지난 2012년에는 전국의 지방경찰청 차원에서 ‘초심찾기 大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신뢰위기에 처한 경찰조직의 분위기 쇄신과 잘못된 관행 혁파를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소주 ‘처음처럼’ 역시 복합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초심’이란 용어에 착안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