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동안 이웃집에 신세를 진 이민철 씨는
근래 자신의 집에 있을 때보다 더 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TV를 봤다.
“이제 집에 가야겠는데.”
편한 자세와는 반대로 피로로 부르튼 입술은 여전하다.
이웃이 내어준 자리와 대접받은 이불이 따뜻하긴 해도 마냥 안락하지만은 않다.
그건 아마 이웃의 눈치 같은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내 집이 아니라는 이민철 씨 스스로의 자각 덕일 것이다.
그 덕에 며칠이 지나니 자연스레 신세를 지던 이웃의 집은 불편한 내 집보다 불편한 곳이 되었다.
이민철 씨가 집으로 돌아가려 짐을 챙긴다.
그간 이민철 씨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이민철 씨의 집이니 당연히 직원이 자리를 비켰고 볼 일이 있을 때면 양해를 구했다.
이민철 씨의 집이 이민철 씨 집일 수 있도록 손님이 머무는 시간은 이민철 씨가 집의 주인으로
제대로 대접하기를 바랐다.
이민철 씨가 이웃집에 머무는 동안 집에 남은 박상재 아저씨는 손님에게 집을 나가 달라 말했다.
머물 곳이 없다면 머물 곳을 마련하도록 얼마간 기한을 주기도 했다.
기한이 지나도 나가지 않자, 박상재 아저씨가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박상재 아저씨와 직원들은 손님을 만나 더 이상 머무는 것은 집주인에게 피해가 되니
집을 나가 달라 말씀드렸다. 몇 차례 이 과정을 반복하니 손님이 집을 나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고요하다. 혼자 집에 머물던 박상재 아저씨는 최근 허리가 아파 병원에 입원하셨다.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반겨 줄 룸메이트가 없다. 조금 외롭기는 해도 텅 빈 내 집에 편안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민철 씨 생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언제 또 불청객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집에 의지하던 박상재 아저씨까지 안 계시니
자꾸 집 대문 밖을 살피게 된다. 혹여 초인종이 울릴까, 누군가 대문을 두드릴까.
이민철 씨 집에 있어도 전혀 편해 보이지 않는다.
이민철 씨를 댁에 모셔다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불청객이 다시 찾아왔다고.
집 비밀번호를 공유한 사이라 이민철 씨의 허락 없이 들어오셨다고 했다.
직원이 다시 방문해 이민철 씨의 집임을, 당분간은 손님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민철 씨의 뜻을 함께 전했다.
집을 나갔던 손님은 몇 시간 뒤 또 한 번 찾아왔고 아까의 과정을 다시 반복했다.
불청객이 떠나고 이민철 씨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꾼다.
마당 대문 도어락부터 사용하지 않던 집 현관문 도어락까지 다시 비밀번호를 설정한다.
“이걸로 해요. 아무도 모르게. 처음 해 보는데.”
예전에 살던 월평빌라 302호에는 도어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집은 먼저 살던 박상재 아저씨가 사용하던 번호를 사용했다.
이런 상황에 난생처음 자기가 정한 비밀번호로 대문을 닫는 이민철 씨 모습이 새삼스럽다.
“또 오면 어떻게 하지? 나 가라고 못 하겠는데. 문 열어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다시 월평빌라 올라갈까?”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 이민철 씨에게 부담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다.
언제 또 들이닥칠지 모를 불청객의 방문을 거절할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럼에도 이민철 씨께 집에 계셔 달라 부탁드린다.
불편해도 말할 건 말해 달라 말씀드린다.
그렇게 해야 이민철 씨의 집이 다시 이민철 씨의 집이 될 것 같았다.
어느 곳에서 살든 이민철 씨가 이민철 씨의 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지고 골목이 어둑해질 때쯤 이민철 씨 집을 나왔다.
돌아와서도 잠들 때까지 휴대폰을 항상 곁에 두었다.
화면이 꺼진 휴대폰이 언제 울릴까 싶어 자주 시선을 뺏겼다.
아마 이민철 씨도 울리지 않는 거실 인터폰을 이렇게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밤이 지나고 해가 밝았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찾아와서 이야기하고 내가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아무도 안 왔습니다. 잘 잤습니다.”
다시 만난 이민철 씨 표정이 한결 편해 보인다.
직원이 집을 나설 때까지 어제와 같은 불안한 말은 하지 않는다.
마치 그간 있었던 일도, 불안함에 떨던 어젯밤도 벌써 이민철 씨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날이 되어가는 듯 보인다.
피로로 부르트던 이민철 씨의 입술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 보인다.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박효진
‘돌아와서도 잠들 때까지 휴대폰을 항상 곁에 두었다. 화면이 꺼진 휴대폰이 언제 울릴까 싶어 자주 시선을 뺏겼다. …’ 이 대목을 읽고 몇 가지 기록을 떠올렸어요. 애쓰셨습니다. ①『당신이 월평입니다』, 최희자 ‧이제는 혼자 살아야 되니 밥을 해야 한다. … 집주인 할머니가 교회에 다녀오다가 “아직 안 갔네.” 한다. 직원이 “이제 가려고 합니다. 한 번씩 들러서 봐주세요.” 하니, 할머니는 “그것은 걱정 말라.”한다. 혼자서 자라고 하면서 돌아왔다.(2016년 4월 1일 금요일) ‧아침 6시 30분에 강자경 씨 집에 갔다. 밤사이 어떻게 지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걱정이 되어서다.(2016년 4월 2일 토요일) ‧아침 일찍 강자경 씨의 집으로 간다. 밤사이에 잘 잤는지, 먹을 밥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해서다. 어제 해 놓은 밥이 있다.(2016년 4월 11일 월요일) ‧이사한 지 17일째다. 직원이 매일 집에 갔다.(2016년 4월 17일 일요일) ②「자취 8개월」=월평빌라 이야기 2016 ⑫강자경, 최희자 ‧아침, 저녁, 쉬는 날, 일하는 날 가리지 않고 수시로 걸려 오는 전화에 혹시 뭐가 잘못되었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오갔던 발걸음, 그 노력이 제게 얼마나 큰 감동이 되고 감사가 되었는지 모릅니다.(임우석 축하 글) + 일과 사람은 다르지만 사회사업가 몇 사람 글에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읽습니다. ③「자취 8개월」=월평빌라 이야기 2016 ⑫강자경, 최희자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하게 대해야 하는가, 이성 따위는 버리고 차라리 텅 빈 마음으로 대해야 하지 않을까! 아주머니 결혼한다는 말을 텅 빈 마음으로 듣습니다. 2016년 12월 15일, refree (박시현 축하 글) 정진호
에고, 민철 씨도 마음 고생을 했네요. 신아름
이민철 씨가 자기 집에서 자기 삶을 살게, 당당하게 주인 행세 하게 마음 쓰며 응원하며 거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안 왔습니다. 잘 잤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키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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