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2. 목.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다. 건물이 노후하여 제대로 창문이 닫히지 않았는데, 틈 사이로 바깥의 온갖 냄새와 바람이 들어와 밤새 매캐한 매연에 시달렸다. 숭숭 벌어진 틈 사이로 쌀쌀한 찬 공기도 들어와서 자다가 수면 양말과 오리털 점버를 입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한국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3시. 중간고사 시험 기간인 아라와 통화를 하였더니 감기 기운이 있어 고생한다고 하였다.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의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 처방받아 잘 챙겨 먹어라고 당부하였다.
아라가 유치원 시절부터 전 세계를 떠돌아 다녔으니 이제 아라도 그냥 엄마가 떠나면 떠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중간시험 기간을 피해서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비쳤다. 엄마가 없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나 어쩐다나....하였다. 이제 너도 스스로 앞가림하여야 한다고 큰소리치고 나왔지만, 아라에게 늘 미안한 미음이었고 아직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너무 방치하는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내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아라를 방목한다고 하였다.
사실은 어제가 남편의 기일이기도 하여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떠나기 전 이 문제로 갈등하였더니, 근처에 사는 오빠와 여동생과 제부가 모여서 연도를 드릴테니, 평생 오기 어려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하였지만, 고인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금할 수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미리 연미사를 봉헌하였고 여동생에게 기일 제사상을 차려 달라고 부탁하고 왔다. 염려스러운 마음에 전화하였더니 이모와 외삼촌이 와서 상을 차려놓고 연도를 하였다고 하니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미안스러웠다.
라파스 아르마스 광장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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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스 광장의 사람들.
스포츠 선수인 듯.
내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포즈를 취해 주었다.
첫댓글 아무리 집안의 이런저런일을 부탁하고 떠났어도 걱정거리는 붙어 다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장거리여행이 힘든겁니다. 또 집안일에 얽매여 못 떠나는 거구요.. 사는게 그렇습니다.
네. 그때는 과감하게 떠났는데...이제는 못 떠날 것 같아요.ㅎ
이번 글을 읽으면서 푸른비 님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안 일에 얽매여서 나의 동선은
늘 집안을 맴돌았지요.
젊어서는 시댁의 맏며느리 역할 하느라
꼼짝 못했고, 아이 셋 키울 때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면서
살았기에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살았지요.
이젠 여행 맘대로 하고 살아도 되는데
마음이 움직여 주지를 않네요.ㅠ
푸른비 님의 용기를 배우면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베리아님의 댓글에 공감합니다.
우리 세대는 부모와 자식세대 사이에 낀 세대여서
하고 싶은 것 많이 억제하면서 살았지요.
숙소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데
고생 하셨습니다.
따님 생각도 나고
남편분 기일도 되는데
몸은 외국에 계셔서
여러가지로 신경쓰이셨을듯요.
그렇지만 좋은 여행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으니
추억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우시겠어요.
참 잘 하셨어요 푸른비님.^^
밖에 나가면 모든 것 다 잊어야 하는데 쉽지 않더군요.
안녕하세요? 수필방에서 푸른비님께 처음 댓글을 씁니다. ^^
계속 여행기를 올리시는 것 같은데 오늘 처음 정독을 했습니다.
남미를 홀로 여행 중이신가봐요.
정말 용기있으심에 감탄의 마음이 큽니다.
남미는 워낙 멀고 마음으로도 거리감을 느껴서
언제 저길 가보랴 싶어서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 중남미가 소개되면 그거라도 열심히 봅니다. ^^
떠날 수 있는 용기와 그를 뒷받침하는 체력을 갖추셨음이 부럽습니다.
즐겁고 뜻깊은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
달항아리님. 댓글 감사합니다. 2015년에 14명이 함께 배낭 여행을 하였습니다.
이번에 여행기를 책으로 출판하고 싶어서 다시 꺼내어 보았습니다.
여행을 하시면서도
집안의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쓰이셨군요
아라에게도 미안하셨겠지요
그럼에도
훌훌 떠나시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루루님. 내 친구들이 딸에게 너희 엄마 계모 아니냐고 할 정도였어요.ㅎㅎ
참말로 여행에 대해선 못말리는 푸른비님~^^
솔직하게 여행기에 올리신 점은
가상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만 하여도, 그런 용기가 있는 여성은
내가 살면서 처음 만나는 여성입니다.
자신이 하고자 함을 이루어 내고야 마는
성취감도 있겠지만...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소극적인 성격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서는 어느 정도 작극적입니다.
먼 여행은 빈 마음으로 다녀와야 하는데, 세상 인연에 얽혀있다보니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말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여행에 대한 열정을 이루어내셨으니 참 대단하시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이기적입니다.
@푸른비3 이기주의? 틀에 가두고 자책하지 마세요. 따님 아라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닥이 깔고 홀로서기에 분투하셨음이, 그 분투에 여행이 큰 몫을 차지했음이 다 보여지는데요. 이기주의 아니십니다.
푸른비님의 심정이 제게도 고스란히 잘 전해져 옵니다 .
그래도 여행을 떠나신것은 잘 하셨습니다 .
늘 기회가 오는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