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은 남자만 해야 합니까? 대충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는 많이 변했습니다. 어쩌면 20세기까지만 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회 풍습 속에는 예외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인정해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사람 사는 사회라는 것이 일률적으로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험 상 그것을 서로 양해해주는 겁니다. 소위 융통성이라는 것입니다. 남자가 하는 청혼, 그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지만 예외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답니다. 당사자들의 청혼이 우리나라 문화 속에는 사실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 현대에 와서나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윤년, 특별한 해입니다. 실제로 알 수 있는 것은 달력에서 2월 29일을 볼 수 있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날만은 여성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청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청혼을 남성은 거절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기야 그만한 상대이기 때문에 청혼을 하겠지요. 엉뚱한 사람에게 청혼을 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되지도 않을 상대에게 일생일대의 결정을 맡길 일도 없을 테고요. 아무튼 지켜오던 풍습을 넘어서 예외를 인정해주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혹 미적대는 남자가 있다면 오히려 여자 쪽에서 과감하게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또한 모두가 인정해주고 어쩌면 그 용기에 칭찬까지 곁들여 응원해줄지도 모릅니다.
짧지 않은 시간 교제해 왔습니다. 나이도 웬만큼 들었고 사회적 자리도 비교적 든든합니다. 부부가 되어 충분히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의 교제로 확신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저녁의 만남을 통하여 분명 청혼해오리라 기대합니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그 멋진 분위기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청혼을 받으리라는 기대로 들떠있습니다. 과연 ‘제레미’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보석 상자를 꺼냅니다. 분명 결혼반지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며 예쁜 상자를 엽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반지가 아니라 한 쌍의 귀걸이입니다. 맘에 들어? 뭐라 해야지요? 물론 예쁩니다. 그러나 바라던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아무튼 그는 저녁도 먹지 않고 해외출장을 떠납니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그곳에는 윤년의 청혼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세월만 보낼 수는 없다. 내가 젊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저들의 풍습을 의지해서라도 밀어 붙어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여태 잘 지내왔는데 왜 결혼을 미루는 거지? 어차피 결혼할 거면 지금 나 외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소극적이며 결단력이 부족한 이 젊은 의사를 초장부터 길들일 필요도 있으리라. 그래서 즉각 실행에 옮깁니다. 가자, 더블린으로. 가서 내가 붙잡아오자. 보스턴을 출발하여 유럽 북쪽 아일랜드 더블린을 향합니다. 기상악화로 인하여 목적지가 갑자기 변경됩니다. 소규모 다른 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비상착륙한 셈이지요.
아직 이틀의 여유는 있으니까,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일이 틀어지려니 되는 게 없습니다. 이제부터 기막힌 여행이 전개됩니다. 예상치도 바라지도 않는 여행이고 단순 관광이라면 진작 포기했을 여행일 것입니다. 안 되어도 어떻게 이렇게 안 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합니다. ‘애나’는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나갑니다. 글쎄, 어쩌면 어쩔 수 없이 맡긴 택시 기사(?) 덕인지도 모릅니다. 일단 거래를 텄으니 목적지까지는 가야 합니다. 맘에 들지 않아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기사로 채용된 ‘데클린’도 자신의 빚을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면 애나가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서로 맞지는 않아도 서로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애나와 데클린의 뜻밖의 조합으로 애나의 목적한 바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그 험난한 여행을 마치며 애나가 제레미를 만나 돌아옵니다. 그 고난의 길을 동행하며 사실 애나와 테클린 두 사람의 감정이 미묘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4년의 연애를 이겨내기에는 다소 부족했나봅니다. 그리고 애나와 데클린은 결혼으로 돌입하려 합니다. 아일랜드에 대한 어렴풋한 추억을 뒤로 하고 이제 현실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보고 깨달았습니다. 어느 쪽이 진심인지 하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결혼이란 어느 한 쪽이 좋아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지 바람직한 일도 아니지요. 서로 사랑하고 그만큼 서로 신뢰해야 합니다.
흔한 말이 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요. 웬만큼 끈끈한 사랑이 아니면 떨어져서 기다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지고 다져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이 접하는 사람과 감정적인 유대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너무 오래 헤어져 지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우리는 정신이나 영혼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 몸을 부딪치며 한 상에서 밥도 먹으며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갑니다. 상대방도 조금씩 더 알아가고 관계가 보다 깊어져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돌발사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발전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공감도 됩니다. 영화 ‘프로포즈 데이’(Leap Year)를 보았습니다. 2010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