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뜸과 버금
“으뜸과 버금”
「윤리」에서 따온 “으뜸과 버금”(Letztes und Vorletztes,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으로 번역하는 신학자도 있다. -옮긴이)이야말로 가장 널리 알려진 문구다. 「윤리」의 현재 모습을 본회퍼가 설계한 것은 아니다. 그 책에 담긴 미완성 원고 네 편은, 본회퍼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매번 새로 손댄 것을 그의 사후에 편집한 것이다. 그 책에 실린 부록은 윤리 분야에 속하는 특별한 놈문과 특별 저작들이다. 부록에는 유감스럽게도 미완의 작품이지만 특별한 매력을 풍기는 소품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Ethik. Mühen 1963. a. a. O., S. 385-395)도 들어 있다. 그 소품은 본회퍼가 테겔 형무소에서 심문을 받는 동안 검사를 속이기 위해 구상한 것이다. 「윤리」의 초판부터 5판까지는 「윤리」의 단편들을 본회퍼의 계획에 따라 편집자가 배치한 것이고, 현재의 판본은 그 단편들이 쓰여진 시간 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오늘 날 우리는(정보국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행하던 때와, 에탈 수도원과 포메른에서 한적하게 체류하던 몇 주 동안 본회퍼가 얼마나 깊게 사색했는지 알 수 있다. 「윤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어투로 시작하여 테겔 서신을 떠올리는 어투로 끝난다.
「윤리」의 단편들이 돋보이는 까닭은, 그것들이 그리스도와 세계의 관계를 충분히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다. 「윤리」를 읽는 독자는 그때그때 새롭게 드러나는 단서들을 통해 쇼윈도가 아닌 작업장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그리스도를 보존하기 위해 세계에 기독교적인 율법만 제시하려 한다면, 모든 것을 망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세상 한 가운데서만 그리스도일 수 있다.(Ethik. S. 219.)
“그리스도는 세상 한 가운데서만 그리스도일 수 있다”는 표현이야말로 본회퍼가 거듭해서 입증한 강력한 명제다, 그는 이렇게 입증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심으로 세계와 인간을 받아들이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계와 인간을 심판하고 용서하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삶을 새롭게 하셨다.
1932년의 본회퍼는 현실 세계를, 무엇인가를 선포하여 교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겼다. 1935년의 본회퍼는 세계를 결코 체류해서는 안될 으슥한 골짜기로 여겼다. 그는「윤리」에 이르러 비로소 세계를 동반자로 여긴다. 눈에 띌정도로 현실 세계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리스도 없이는 현실 세계가 있을 수 없고, 현실 세계 없이는 그리스도도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외부에서 세계에 제시된 절대 규범이 아니다. 현실 세계는 기독교 윤리학자들의 단순한 재료 -자신의 작업을 부각하기 위한 자료- 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현실 세계를 파기하지 않으며 심판과 화해와 갱신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다. 그분은 현실 세계를 “기독교화”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안에 있으면서 이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선(善)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받아들여 생명에 이바지 하게 하는 영속적인 과정이다. 본회퍼는 윤리는 “상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피조물을 해방시켜 피조물 고유의 법칙을 실현하게 한다.” 화해의 십자가는 “진정한 현실 세계 안에 살 수 있도록 해방하는 것이다.” 화해의 십자가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만 아는 존재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게” 한다. (Ethik. S. 285, 315 f, 314)
그리스도와 세계는 단지 서로 파기하거나 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추론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와 세계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가장 잘 표현한 문구가 바로 “으뜸과 버금”이라는 한 쌍의 개념이다. 본회퍼가 “의롭다 함”이라고 부르기도 한 으뜸 말씀은 버금의 처음과 나중을 품되, 우리가 버금의 처음과 나중을 시간적으로 생각하건 공간적으로 생각하건 질적으로 생각하건 개의치 않고 품는다. 으뜸은 버금의 경계를 정하고, 그와 동시에 버금을 유효가헥 하고 힘차게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 현실을 독립시키지도 파괴하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제 멋대로 중요해지려 할 뿐 버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인간 현실을 버금으로 존재하게 하신다. …… 기독교적인 삶은 버금을 파괴하거나 인가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그릿드ㅗ와 세계의 만남에 참여하는 것이다.(Ethik. S. 140 f)
미완성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윤리」를 본회퍼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장 심오한 작품으로 꼽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실체와 구체적인 세계구조를 결부시켜 그것을 역동적으로 개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는 유닐의 고전적 갈등, 곧 규범윤리와 상황윤리 사이에 갈등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 두 윤리의 단점을 피하고 장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규범윤리는 윤리적 결단의 지속성을 위해 힘쓴다. 하지만 그것은 은둔으로 끝나고 만다. 그것은 잘못된 결의론(決疑論, Kasuistik, 사회적 관례, 법률, 교회의 율법에 따위에 비추어 양심의 ns제나 도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학문- 옮긴이)에 빠져 현실 즉응(卽應,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곧바로 응하는 것- 옮긴이)을 소홀히 한다. 규범윤리는 나치 시대에 분명한 실행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서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다. 다른 한편 상황윤리는 현실 즉응에 힘쓰는 윤리다. 하지만 그것은 그때그때의 현실에 결단으로 응하다가 전체를 놓치고 만다. 상황윤리가 역사적으로 당면한 문제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인가함으로써 위험을 가중시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비판 능력을 소홀히 한다.
오늘 날 현실에 즉응하는 윤리는 급속도로 시대에 뒤쳐져지고 있다. 본회퍼의 윤리 가운데 몇몇부분도 예외가 아니다. 본회퍼의 윤리 연구는 심리학, 사회학, 인문과학, 인공두뇌학, 실험공학 등을 통해 우리 시야에 들어와서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는 삶의 영역들을 전혀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충분하지 않은 편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몇 편의 그을 현대의 권력 재분배 문제와 대질시켜 보라. 그 글들은 한 물간 보수주의의 문서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본회퍼는 루터가 제기한 두 왕국설의 장벽, 너무 높아서 결코 해체된 적이 없는 장벽을 뚫고 나간다, 그는 소위 위임설을 제안하여 신분 정지 사상과 두 기둥 사상(국가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이라는 사상)을 해결한다. 그는 무익한 두 영역 사상, 즉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구정하는 윤리적 사유의 근본개념을, 신적이고 성스럽고 차자연적이고 기독교적인 영역과 세속적이고 속되고 자연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영역이 상충한다는 생각을” 공격했다.(Ethik. S. 280 f) 그와 동시에 오늘을 위한 윤리적 과젤르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 출처 : Eberhart Bethge 저, 「Dietrich Bonhoeffer 디트리히트 본회퍼」김순현 역, (서울: 복있는 사람, 2006) 236-241 발췌.
첫댓글 안방에서 전국의 꾼들과 섯다의 짜릿함!
http://imb85.net
승부사들의 진정한 한판 승부! “ 화투 “
회원가입만 하셔도 5000원의 무료머니를 드립니다
귀찮은 다운로드 이제그만,웹에서 바로 즐기는 화투!
http://imb85.net
국내 최다 회원보유 고객만족도1위!!!
화투의 짜릿한 손맛을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