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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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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고려의 기술자 집단인 '所'와 중세 일본의 기술자 집단인 '쿠고닌'에 대해 그 둘의 차이점에 대해서 원인 분석하는 글을 써 볼 생각이라고 한 적이 있었드랬습니다. 워낙에 게을러서 1월 중순에 생각해둔걸 3개월 뒤에 정리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쓰고보니 당연한 소리를 뭐가 좀 있는 듯하게 길게 늘여뜰어서 주절거린거 같네요. 아는게 별로 없어 핵심적 단어 몇개로 설명하진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하는 격입니다. 그리고 사회경제사 공부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다 아는 뻔한 얘기를 제가 이제서야 알고서 몇마디 지껄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전 학부 시절에 사회경제사 수업에 거의 잠만 자놔서 학부 지식조차도 없습니다. 그때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거의 수면제였거든요.) 긴 글에 비해 별로 볼 건 없고 이런 제 생각이 맞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뭐.. 그냥 제가 공부했던 걸 정리한 결과물로 생각해 주세요.
所의 경우는 국가에 예속된 경향과 신분적으로 천한 부류에 속한 반면, 쿠고닌의 경우는 국가 예속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신분에 있어서는 관념적으로 비인(非人) 취급을 받는 등 천하게 여겨지긴 했지만 그들이 가진 부의 권력으로 실제로는 그닥 천하진 않았다는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저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합니다.(문제 해결에 필요한 툴은 김용만 선생님의 생활사 강의에서 대부분 빌리긴 했지만 사실 주 아이디어는 제가 그때 읽었던 팀 하포드의 '경제학 콘서트'를 읽으면서 떠오른 거라서요)
그에 대한 분석을 하기 전에 잠깐 범위를 확대시켜서 보겠습니다. 일본의 쿠고닌은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중세 서양의 길드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의 경우는 중국의 4민, 즉 사농공상 중 工으로 치환된다고 보고 논의를 전개하겠습니다. 쿠고닌=길드, 所-工이란 치환이 자칫 일반화의 오류를 불러일으켜 그들 나름의 특수성을 훼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의 틀에 대해서 알고자 했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은 특수 요소의 개입은 가급적 배제하겠습니다.
행상인 글을 보면
商人の源流は,農民以外の非常民から起こったと推定される。古代の社会では,農民は自給自足の生活を営み,余剰鹿産物を外部に供給する余裕も必要もなかった。農村の生産物は何処も似たようなもので,交易が成立するだけの差異に乏しかった。しかし,定住しない漂泊民との間で,物々交換が行われた形跡はある。また,遠く隔たった漁村と山村などの間では,産品に 違いがあり, 足りない物を助け合う形で交換が行われた。そ れらの中に, 商いの萌芽が見られる。
상인(商人)의 원류는 농민 이외의 비상민(非常民)에서 기원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농민은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잉여생산물을 외부에 공급할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또 농촌의 생산물은 어디에서나 비슷했기 때문에 교역이 성립될만한 차이가 불충분하였다. 그러나 정주(定住)하지 않는 ‘표박민(漂泊民-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유랑'집단)’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행해졌던 흔적이 있다. 또 멀리 떨어져 있던 어촌과 산촌들은 생산품에 차이가 있었고, 모자란 물자들을 서로 보완하는 형태로 교환이 행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상업의 맹아가 나타나게 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 생산품의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특정 산물에 대한 희소성을 의미합니다. 이때의 특정 산물은 1.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천연 자원이 될 수도 있고 2. 특정 기술에 의해서만 생산될 수 있는 공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3. 두개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에 대한 희소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황 여하에 따라서 권력관계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청동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청동기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자, 구리, 주석입니다. 어떤 전제적 권력을 가진 부족집단이 있다고 한다면 기술자나 구리 확보는 그리 어렵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주석의 확보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냐면 주석은 산출되는 광산이 대단히 적거든요. 따라서 청동기를 제조하려면 그 부족집단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통해서 주석광산을 소유한 집단과 '거래'를 해야합니다.
물론 힘으로 뺏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할 경우 주석광산을 소유한 집단이 반대편에 붙어버릴 경우가 있지요? 또한 먼 지역에 있게 된다면 관리감독이 힘듭니다. 따라서 주석광산을 소유한 집단은 그 세력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주석을 자원무기화해서 일반적인 소규모 씨족 집단에 비해서 생존율이 높고 주변의 강적들로부터 이른바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희소성의 권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런 희소성의 권력은 1. 특정 지역에서 산출되는 특정 자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 특정 기술(고급기술)을 보유한 집단에도 통용됩니다. 즉, 기술만으로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집단은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희소성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농사짓는 사람은 한곳에 정착하면 최소한 1년 동안은 농작물 때문에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반면, 기술자 집단의 경우는 자신의 생존 밑천이 몸으로 체득한 기술이므로 어디든 이동한다고 해서 밑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번의 경우는 1번과 2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한 지역의 산물이 필요한 특정한 기술 보유자들은 기본적으로 전제권력자에 의해 한곳에 예속되기 어렵습니다. 수 틀리면 특정한 천연자원이 있는 또다른 곳으로 기술자들이 이동하면 그만이거든요. 실제로 그러한 고대 기술자 집단의 예가 많습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잡아버리면 되지않느냐 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억압적인 정책을 고수할 경우 외부로부터 더 유능한 기술자집단들이 등을 돌리게 됩니다. '경쟁'사회에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지요.) 특정한 고급기술을 갖추고 상대적으로 이동성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전제적 권력자의 지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 전제 권력자들에게 상공인들은 어찌보면 '꼴도보기 싫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배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이들을 천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에는 생활방식의 차이도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山人も,早くから職能民として自立 していった。山間部では自給自足が難しいので,旅職人 として渡り歩く道を選ぶ者が多かった。彼らは木材の加工に長 じ,腕の良い者は,大工として, 普請のある所に雇われた。それ以外の者は, 山の産物を持って行商に出かけた。山人の中でも, 商人として特に活躍の目立ったのが,木地屋である。彼らは,里から離れた山あいの部落で, 糎櫨を用いて椀などの木製品を製造し,これを売り歩いた。
산진[山人-さんじん]도 일찍부터 직능민(職能民)으로써 자립하고 있었다. 산간부락에서는 자급자족이 어려웠기 때문에 여직인(旅職人)으로써 일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목재 가공에 능했고, 솜씨가 좋은 사람은 목수로서 요청이 있는 곳에 고용되었으며 그 외의 사람들은 산에서 나는 물품을 가지고 행상에 나섰다. 산진 중에서도 상인으로서 특별하게 활약이 주목되는 것이 키지야[木地屋]이다. 그들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간 부락에서 녹로(토기 만들때 밑에서 회전하는 도구)를 이용하여 그릇이나 목제품을 만들어 그것들을 팔러 돌아다녔다.
鋳物師も,諸国を遍歴して仕事をした。彼らは,自己の製品の販売と修理の 請負仕事に留まら ず,時として他人の製品を仕入れて販売した。荘園の発達が, 彼らの特殊な技能の需要を促した。 農機具や武具,梵鐘などを製造するために, 荘園領主や寺社は鋳物師を重用し,多額の礼銭を支払っ たのである。
주물사(鑄物師)들도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판매하고 다른 물건들을 수리해 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의 제품을 수입하여 판매했다(공인의 상인 전환?). 장원(莊園) 발달은 그들의 특수한 기능의 수요를 촉진시켰다. 농기구와 무구(武具), 범종(梵鐘) 등을 제조하기 위해 장원영주(莊園領主)와 지샤[寺社-じしゃ;절과 신사]는 주물사를 중용하고, 거액의 예전(禮錢)을 지불했던 것이다.
구매 수요가 높다 - 너 아니라도 팔 곳 많다! 구매자가 끌려가는 관계
반대로 지방 유력자들이 중앙에 진출하면서 병권을 장악당하고 체제의 틀 안에서만 권력 투쟁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상공인들이 자신의 기술, 상권을 발휘할 수 있는 상대는 오로지 중앙의 왕실과 소수의 유력 귀족에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기술자에 대한 활용을 지배자는 골라먹어가며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경쟁 상황도 아닌만큼 기술자의 이용가치는 더욱 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역시 이를테면
공급량이 많다 - 팔 사람은 왕 뿐. 판매자가 끌려가는 관계
도리어 기술자들이 자신을 팔아먹기 좋게 덤핑판매 식의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왜냐면 먹고는 살아야하니까요.)
물론 그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주변국과 경쟁상황이라면 상공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는 마련됩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영토가 일정 수준이상이라면 수틀린다고 해서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수백, 수천리를 이동하면서 지배자의 군대에게 잡히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거기에다 기본적으로 상공인 집단은 대체로 국가 지배를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중앙집권 국가의 통제 체계를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이런 관계로 중앙집권적 전제권력 하에서는 상공인 집단을 억압하게 되지요. (이것과는 반대로 선비, 즉 지식인 집단의 경우는 중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유가 선비들은요. 선비의 존재 의의는 수성(守成)의 묘에 가장 적당한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지배집단의 통치 당위를 입증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죠. 국가의 권력을 계속해서 벗어나려는 상공인과는 반대의 속성을 가집니다. 국가로서는 상공인의 권력참여를 억누르고 士의 권력장악을 장려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사회구조 자체도 사에 유리한 구조로 바뀌는 것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통치당위를 뒤흔드는 공상을 억누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주로 생산물에 대한 댓가 지급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所의 공인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세금을 돈으로 내는게 아닌 물건을 생산해서 바치는 품팔이 식의 공역을 통해 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공역에 대한 댓가는 없지요. 어차피 세금의 일환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남는 품을 동원해 또 다른 물품을 만들어 팔면 되겠지만 사갈 사람(또다른 지배자)도 없을 뿐더러 사회불순분자(이를태면 반란을 꿈꾸는..)사람들에 의해 이용될까 두려워해서 필요이상의 물품 생산을 허용치 않습니다. 결국 농사지어서 먹고 살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기술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어쩌다 공납품 양이 많으면 농사는 농사대로 지어야 돼, 공납물은 공납물 대로 만들어야 돼.. 삶이 고단하죠. 거의 필연적으로 천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고려는 그래도 조선에 비하면 지방분권적 사회 아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적어도 고려 후기에 이르면 지방 호족들이라고 해도 중앙에 많이 예속된 상태입니다. 호족 간에 물리적 경쟁관계도 거의 형성되지 않는 편이기도 하구요. 초기에는 호족간에 물리적인 경쟁관계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역시 상공인들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지 않은 편입니다만 후기에 이르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쿠고닌의 형성 시기에 중세 일본의 경우는 중앙권력의 권위 및 지배와 물리력 행사가 땅에 떨어진 시점이고 무인 권력이 득세하면서 각지의 전쟁에 필요한 무구 수요가 높아지는 시점입니다. 고대 일본에서 중앙권력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방 호족간의 경쟁 구도가 완전히 와해된 것이 아닌 만큼 상공인의 권력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고, 중세 일본의 혼란기 때 분립상황에서 쿠고닌은 다시금 번성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정리를 하자면 희소성의 권력관계 발생 -> 구매자와 판매자 중 누가 희소한가에 따라 권력 관계 발생
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군요.
다음은 제가 행상인 글 보면서 2시간 정도 생각하고 대충 정리한 원본입니다.
기술자, 상인 끌어들이기 경쟁 ; 생산수단이 농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땅에 얽매이지 않는 유동성 보유. 통제가 그만큼 어려움.
또한 이동 거리의 문제 ; 통치체제의 경쟁자가 근거리에 존재하지 않으면 기술자 영입 상에서 경쟁 구조는 발생하기 어려움. 때문에 고려의 所는 국가에 예속된 노예집단이 될 수 밖에 없음?
지배의 거부가 가능한 현실적 구조는? 이들은 정주세력에게 박쥐 같은 존재였을까?
장인의 종류는 2종류,
우선 정주집단 내에서 물건 제작에 특화된 기술습득을 해서 자체 내 기술자 집단을 갖는 경우. (토기 제작이나 석기 제작?)
둘째, 물건 제작에 필요한 특정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해 자원 산지를 장악한 집단 전체가 먹고살기 위한 방편을 농사에서 물건 제작으로 바꾸는 경우.(광산업자=대장장이?)
선비의 존재 의의는 수성(守成)의 묘에 가장 적당한 집단이기 때문. 지배집단의 통치 당위를 입증하는 존재들.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사회구조 자체도 사에 유리한 구조로 바뀌는 것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통치당위를 뒤흔드는 공상을 억누른다.
(기술자, 상인 끌어들이기의 경쟁)->생산수단이 땅에 얽매인 농민과 달리 생산수단은 기술(상술, 자본 포함)의 보유. 통제가 그만큼 어려움. (이 경우도 희소성의 관계. 농사지을 사람은 많은 대신, 기술자는 적다. 유력자와의 권력관계 차이 발생) -> 때문에 지배집단이 기술자, 상인 집단에 대해 별로 안좋은 감정과 지배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됨(?)
또한 이동 거리의 문제 ; 지배집단의 경쟁자 집단이 근거리에 존재하지 않으면 기술자 영입 상에서 경쟁 구조는 발생하기 어려움. 기술자의 수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려의 所는 길드에 비해 국가에 예속된 노예집단이 될 수밖에 없음.
다시 말해 희소성의 권력관계 발생. 구매자와 판매자 중 누가 희소한가에 따라 권력 관계 발생.
(분립시기 ; 구매 수요가 높다 - 너 아니라도 팔 곳 많다! 구매자가 끌려가는 관계)
(전제왕권 ; 공급량이 많다 - 팔 사람은 왕 뿐. 판매자가 끌려가는 관계. 왕에 예속되는 구조.)
소(所)의 주민들은 농사를 겸업하는 이유가, 국가로부터 공역의 댓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는 국가에 바칠 최소 물품 생산을 하고 나머지 기간만으로 농사를 짓게 된다. 따라서 먹을 것은 없고 발품만 많이 팔게 됨. 때문에 사회적으로 천민화.(지배집단의 멸시-조선조 때 지배받지 않음- 와 피지배집단의 멸시를 동시에 받음)->마치 북위 때 진수병들이 천민화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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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접근이네요. 수요-공급의 관점에서 더 수가 적고 희소한 자가 상대방보다 거래에서 우위에 선다(협상력 Bargaining power의 우위)는 것이 글의 핵심인데, 저도 옳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이상의 분석은 '무기류' 등 전쟁장비를 생산하는 공인의 지위를 설명하기는 용이해도, 일반백성용 상품을 생산하여 수요자가 '희소' 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품생산 공인이나 역으로 생산자가 희소한 입장에 서기 쉬웠던 고가의 고급품 제작자의 사회적 지위가 왜 낮았는지를 설명하지는 어렵다고 봅니다.
..우와.. 생각치도 않았던 이 모델의 약점을 제대로 찔러주셨군요. 흡사 뒤통수를 삽자루로 후려맞은 듯한 기분...(먼산) 음..30분 동안 생각을 해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제의 요지는 상공인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없는가로 압축되고, 그 문제에는 좀 더 비싼 값을 받아낼 수 있는 상공인의 선택 폭이 다양한가, 그렇지 못한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분권 사회에서는 더 좋은 대우와 값을 치르는 지배자에게로 판로를 바꾸기 쉬운 환경인 반면, 광역지배의 중앙집권 사회에서는 판로를 바꾸기 어려워 기존 지배자에 대한 판로의 현상 유지만이 가능한 것이죠. 결국 희소성 문제로 결부되다고 생각합니다.
좀 어려운 것은 일반백성용 상품에 관한 것인데 이 부분은 두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제가 언급한 것은 전업 상공인 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화된 기술, 자원을 보유한 집단입니다. 즉, 농민이라도 간단히 제조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상품들은 제외했습니다. 이런 물건들을 제조하는 개인들은 계급으로써의 상공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상품을 생산하지만 판매대상이 일반 백성인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판매자가 지배자가 아닌 경우라고 하더라도 역시 상공인의 판매 선택권이 제한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상공인과 지배자 간의 '권력' 쟁탈 양상이 희소성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면 권력싸움에서 패한 상공인은 일반 백성에게 더 비싼 값을 부를 수 있거나 비싼 값을 낼 수 있는 곳으로 판매처를 옮길 선택의 폭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니 부의 축적 기회를 박탈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 적고 보니 말이 안되는 거 같네요.) 일단 제가 생각한 모델에서는 희소성의 권력만 개입된 것이 아니라 상공인들이 지배자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환경의 여부도 같이 적용되는 것이라서요. 백성에게 비싼 값에 팔지 못하게 국가에서 제재를 가하거나 중세를 물리면 상공인은 도망가려 하겠지만 광역 지배를 하는 국가에서는 그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댓글 보시는 다른 분들을 위해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100여 리 정도의 거리를 야반도주(?)가 가능한 거리라고 치면, 지배 영역이 100리가 안되는 부족 집단에나 소국가에서는 상공인이 튀어버리기 쉽지만 반대로 약 1천리를 광역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상공인들이 도망가다가 잡히기 쉽상이란 거죠. 그런데.. 답글을 ..제가 적고도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ㅠㅠ 횡설수설병이 또 도진건가..(도주중)
수요-공급에서 더 희소한 자가 더 많은 권력을 쥔다는 논의는, '시장' 에 의해 자원배분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유시장이라는 전제가 깔리 지 않는다면, 수요-공급에서 더 희소한 자가 더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국가의 통제를 받던 '관노비' 에 의해 이루어진 생산물의 경우, 그 생산자가 희소하든 말든 그 생산자(관노비)가 소비자(국가 등)에 대해 희소성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거래는 시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명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유로운 시장이 보장되지 않고 국가에 의한 명령에 의한 강제적 거래이기 때문에 희소성의 권력을 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요약하면, 수요-공급의 희소성에서 나오는 권력이란, 시장(국가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는 시장)이 존재할 때 성립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