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구룡포
구룡포 사람들은 "구룡포의 최전성기는 1930~40년대"라고 말한다. 호(好) 시절은 갔지만, 그때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을 보러 이제 여행객들이 찾는다.
◆일본인가옥거리
횟집이 늘어선 구룡포 큰길에서 골목 하나만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전성기 시절 구룡포 모습이 곱게 늙은 채 박제된 듯한 분위기다. 이곳은 '구룡포 장안동골목'이라고도, '일본인가옥거리'라고도 불린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400여m 골목길을 따라 낡은 일본식 집들이 여럿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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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하시모토가옥’.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골목길 구경은 '하시모토(橋本)가옥'에서 시작하면 좋다. '구룡포6리' 표지판과 버스정거장 맞은편, '은이식당'과 '경포회식당 전용주차장' 표지판이 붙은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 큰 2층 건물이다. 이 골목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복원하고자 포항시에서 전시홍보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5시 연다. 주말에는 포항시 문화해설사가 설명도 해준다. 문의 포항시 문화관광과 (054)270-2243
하시모토가옥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이원희씨는 "하시모토는 1930년대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한 분"이라고 했다. "1902년 야마구치(山口)현 어부들이 구룡포에 처음 온 일본인 어부들이랍니다. 1916년 일본인 가옥이 78호나 됐대요."
골목을 더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나온다. 신사(神社) 등이 있던 일본인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계단 양옆으로 긴 직사각형 기둥이 117개가 늘어서 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일본인 이름이 새겨졌었는데, 해방 후 일본이름에 시멘트를 바르고 180도 돌려서 반대편에 공적이 많은 구룡포 분들의 이름을 새겼죠."
좋건 싫건 안고 가야 하는 한·일 과거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이다.
◆제일국수공장
이순화(71) 할머니는 자기가 만들다 부러진 국수 자투리를 또각또각 씹어 먹었다. 삶지 않아 딱딱한 생면 그대로. 할머니를 따라 국수를 먹어봤다. 바삭바삭하면서 찝찔한 게 과자 같다. "면은 햇볕에 말려야 쫄깃하고 좋니더. 다른 데는 방에서 열풍기 불어 말리지요. 햇빛에 말리면 일이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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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구룡포시장‘제일국수공장’이순화씨. 국수 무게를 달아 5인분씩 묶는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이순화 할머니는 30년 훨씬 넘게 구룡포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아왔다. 올해 서른여덟인 막내가 '얼라'일 때부터 국수를 만들었다. 만드는 방식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다. 재료는 밀가루와 물, 소금 딱 세 가지.
물에 소금을 적당히 녹여서 밀가루와 섞고 기계에 넣어 가늘게 뽑는다. 이 면을 가게 뒤 마당에 널어 놓는다. 구룡포의 따뜻한 햇살과 간간한 해풍(海風)이 면발을 훑으며 말려준다.
국수를 삶아 봤다. 삶은 물이 뿌옇게 변하지 않는다. 씻지 않아도 표면이 매끄럽다. 표면에 묻은 전분이 바람과 햇볕에 충분히 제거된 탓인 듯하다. 아주 쫄깃하다. 찝찔한 것이 이탈리아 파스타(pasta) 같다. 국수 자체에 간이 배 있어 국물과 더 밀착된 듯한 맛이다.
국수는 '묶음'으로 판다. 1묶음이 750g으로, 5인분쯤 된다. 가격 2000원. '소면'과 이보다 약간 굵은 '중면''우동'이 있다. 진짜 가락국수 굵기는 아니고, 납작한 것이 칼국수와 거의 같다. 20묶음(4만원) 이상 주문하면 전국 어디건 보내준다. 택배비 4000원이 추가된다. 주말에는 할머니가 자식들과 국수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국수를 당장 맛보고 싶다면 '할매국시'로 간다. 제일국수공장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 허름한 파란기와지붕집이다. 메뉴는 '국수(2500원)' 딱 하나. 큼직한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제대로 삶은 국수를 시원한 멸치 국물에 말아 낸다. 고명은 간장 양념장과 채 썬 오이밖에 없는데도 아주 맛나다.
●제일국수공장_ 포항시 남구 구룡포리 963-24
●할매국시_ 구룡포시장 안
◆철규분식
찐빵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쫄깃하다. 속에 든 단팥은 너무 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다. 겉과 속이 '찐빵궁합'이다. 구룡포시장 뒤, 구룡포초등학교 맞은편 '철규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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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구룡포‘철규분식’찐빵(앞)과 단팥죽.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기다란 나무 걸상이 놓인 가게 내부는 어렸을 때 분식집 딱 그 모양새다. 가게 안쪽에서 찐빵처럼 통통한 여주인이 쉴 새 없이 찐빵을 빚는다. 주인은 "55년쯤 됐다"고 한다.
1인분(1000원)을 시키면 접시에 찐빵 3개와 설탕이 조금 따라나온다. "예전에는 설탕을 듬뿍 뿌려줄수록 손님들이 좋아했어요. 요즘은 싫어해요. 살찐다꼬…." 국수(2000원)는 제일국수공장에서 만든 소면을 사용한다.
◆전복죽
호미곶에서 구룡포로 들어서는 초입에 '전복 전문'이라고 큼직하게 써 붙인 가게가 네댓 있다.
이곳 터줏대감 중 하나인 '할매전복집' 김정희씨는 "어머니가 하실 때는 자연산 전복이 앞바다에서 많이 났는데, 요즘은 여기 것만으로는 물량이 모자라 동해 전역에서 나는 전복을 쓴다"고 했다. 종패(새끼전복)를 동해안을 따라 뿌려뒀다가, 자라면 채취하는 식이다. 완전 자연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식산도 아니다. 전복죽을 주문하면 초고추장에 무친 생선회와 도토리묵을 내준다. 죽을 쑤려면 못해도 15분은 걸리니, 먹으며 기다리라는 배려다.
전복 내장을 으깨 넣은 죽은 짙은 초록색이다. 죽 끓이는 솜씨가 궁극(窮極)의 경지는 아니지만, 싱싱한 전복의 강렬한 신선함이 압도적이다. 잘게 썰지 않고 큼직하게 썬 전복살이 다른 지역 전복죽과 다르다. 전복 속에 조개 맛이 들어 있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라고 해야 할 성장환경 덕분인 듯하다. 죽도 훌륭하지만 역시 회가 전복의 맛을 완전하게 만끽하는 방법일 듯하다.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다.
전복죽 1만2000원, 전복회 7만·13만원, 전복회국수 2만5000원.
첫댓글 잘 봤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근데 만원하는 전복죽이 2천원 더 비싸군요, 제주도 성산포 해녀들도 8천원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