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에 중독되지 마라
문희봉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남들의 위로를 자주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남들의 위로를 받으며 주저앉아 있는 대신 정면 돌파라는 방법으로 장애물을 극복해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내 단점을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기 위해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성공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성공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성공은 결과보다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치를 찾아야 하는데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줄에 선다는 것은 과정 없는 결과만 원하는 것이다. 속이 텅 빈 강정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집밖으로 나오면 무엇이든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가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고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다.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면 원하는 문을 열 때까지 절대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기회의 문은 문과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곳으로 완전하게 연결된 뒤에 그만두어도 늦지 않은데 성급한 사람들은 그걸 기다리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
매 경기마다 매 상황마다 모두가 조건은 똑같지 않다. 그러하기에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인생의 승률은 달라진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맨 마지막에 포기하자. 섣불리 포기하지 말자.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고 답도 그 관계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공식이 쉬우려면 관계의 동선이 짧아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에 열정을 쏟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에는 100% 열정을 쏟아낼 수 있다. 열정을 쏟아내는 것도 습관이 된다. 최선을 다할 때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앞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징징거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슬럼프가 왔다고 평생 위로만 듣고 있을 셈인가?” 인생의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투덜거림, 변명, 위로가 내 무능력과 게으름을 대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도전이란, 사춘기와 청춘 시절에 겪었던 아픔과 열등감을 치유하는 치료제다. 아니 그 이후 시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시기든 남들의 위로를 받으며 주저앉아 있는 대신 정면 돌파라는 방법으로 장애물을 극복해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위로도 계속 받다 보면 습관이 된다.
내가 감히 주장한다. ‘위로에 중독되지 마라!’고. 위로는 나를 제자리에 머물게 할 뿐이다. 아니 후퇴시킬 뿐이다. ‘당장 더 많은 훈련으로 한계를 극복해 다시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열등감을 극복하는 해결책이다. 불평과 불만은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과 차별에 불평하며 주저앉는 대신 매번 내 사고를 전환해 그것을 극복해 나가자.
‘난관에 부딪쳤을 때 다 끝난 것처럼 주저앉으면 그것이 내 인생 마지막이 되는 것이고, 다시 일어나 뛰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새롭다. 새로워지려면 낡은 틀 속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곳이건 편한 안주는 곰팡이와 녹을 불러온다. 방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도 자신의 인격을 키우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내가 가지는 자신감의 보약은 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칭찬이다. 도전의 과정에 최선을 다한 나에게 결과가 다른 부산물이 나왔다고 회초리를 칠 필요는 없다. 내 인생은 하루살이도 아니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내 인생의 창고에 가득 쌓여 있다. 지금까지 내가 겪으며 일궈낸 성공과 실패에 술잔을 기울이고 눈물을 흘렸다면 나는 아직도 아마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