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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03
1. 씬. 강하의 집 전경 (밤)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2. 씬. 강하의 방 (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강하.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3. 씬. 거실 (밤)
-강하, 2층 계단으로 내려오는. 준하, 자신의 방에서 나오고.
강하 : 이게 무슨 소리냐?
준하 : 글쎄. 고양이 울음소린가.
-화장실에서 왝왝거리고 있는 태규의 소리.
준하 : (인상 찌푸리며 화장실 앞으로 가서 문을 여는) 술을 얼마나 처먹었길래 그러냐?
태규 : (죽어가는 시늉하면서) 삼촌 등 좀 쳐줘.
준하 : 싫어, 자식아, 드럽게. (그러면서도 인상 구기고 들어가서 등을 두드리는데)
강하 : (화장실 앞으로 다가와 서서, 인상 구기고 고개 돌리며) 이거 우리 집에서 들리는 소리 같지 않냐?
4. 씬. 지하방 (밤)
-빨강, 남이를 안고, 안절부절 하는. 동생들 모두 깨서, 남이 앞에서 까꿍 어쩌고 하면서 달래보려고 하는.
태규E : 지하방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데?
빨강 : (긴장하고, 얼른 남이를 주황에게 안겨주며) 누나가 나가서 해결할게. 남이 좀 봐. (얼른 밖으로 나가면)
주황 : (남이를 안고, 우는 남이를 어쩌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는)
초록 : 남이 숨 막혀 죽으면 어떡해?
주황 : (숨 막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남아, 제발, 우리 쫓겨나면 안돼, 남아.
5. 씬. 거실 (밤)
-강하, 서있는. 빨강 지하방에서 나와 다가오는.
빨강 : 잠을 잘 수가 없네요. 이 동네 도둑고양이가 많은가 봐요?
-준하, 태규, 욕실에서 나오면서.
준하 : 우리 동네 도둑고양이는 없었는데.
빨강 : 뉴스에서 봤는데, 요즘 도둑고양이 때문에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태규 : 그 방에서 들리는 소린 거 같은데?
빨강 : 제가, 방에 도둑고양이가 있으면 그걸 모르겠어요? 어머, 안 들리네요. 이젠 다른 집으로 갔나 봐요.
피곤들 하실 텐데, 어서들 들어가 주무세요.
태규 : (욱하며, 입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준하 : 저 자식은 정말.....
6. 씬. 지하방 (밤)
-주황, 남이의 입을 틀어막고 서있는. 동생들 안절부절 하며 갖은 노력을 다하며 남이를 웃겨주려고 하는.
빨강, 방으로 들어오는.
파랑 : 남이 안자, 누나. 어떡해?
노랑 : 남이 잘 땐 엄마 젖 물고 잤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주황 : 어떡해? 누나, 다들 아직 안자지? 내가 몰래, 남이 업고 나갔다 올까?
빨강 : 또라이가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어서 안돼. 남이 이리 줘봐.
주황 : 어떻게 하려구?
빨강 : (우는 남이의 입을 틀어막고, 한쪽으로 가서 등 돌려 앉는. 웃옷을 걷어 올리고 남이에게 젖을 물리는)
파랑 : 남이 속았다. 엄마 젖인 줄 아나봐. 남이 바보다. 누나 젖인데.
빨강 : (안쓰러운 표정으로 남이를 내려다보는)
7. 씬. 강하의 집 전경 (새벽)
-희뿌연 새벽.
8. 씬. 지하방 (새벽)
-빨강의 핸드폰 알람이 울리고 있는.
남이 껴안고 잠들어 있는 빨강. 알람은 계속 울리지만, 빨강, 곤하게 잠들어 있는.
9.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밝은 아침.
10. 씬. 지하방 (아침)
-주황, 뒤척이다가 놀라서 눈을 뜨는. 빨강, 아이들 모두 잠들어 있고.
주황 : (빨강을 흔들며) 누나? 누나?
빨강 : (잠결에) 엄마, 제발 좀.
주황 : 누나? 누나?
빨강 : (눈 뜨고 멍하니 주황을 보는)
주황 : 밥해야 하잖아?
빨강 : (그제야 기겁을 해서 일어나고) 알람 분명히 맞춰놨는데.
주황 : 누나, 알람 소리에 일어난 적 한번도 없잖아?
빨강 : (자기 머리 쥐어박으며) 진빨강, 정신 좀 차리고 살자.
주황 : (벽에 걸려있는 시계 보면서) 벌써 일곱 시 넘었어.
11. 씬. 거실 (아침)
-빨강, 급하게 지하방에서 나오는. 준하, 방에서 나오고 있는.
빨강 : 안녕히 주무셨어요?
준하 : 네. (화장실로 들어가는)
12. 씬. 식당 (아침)
-빨강, 급하게 뛰어 들어와 쌀통을 찾는. 어떡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비닐봉지에 쌀을 담는.
13. 씬. 거실 (아침)
-강하, 2층 계단으로 내려오고, 준하, 세수하고 화장실에서 나오고. 태규, 머리 긁으면서 방에서 나오는.
준하 : 웬일이냐? 벌써 일어나구?
태규 : 속이 쓰려서 못자겠어, 뭐 좀 먹고 자려구.
14. 씬. 식당 (아침)
-강하, 준하, 태규 들어오는. 빨강, 후라이를 하고 있는.
태규 : 밥 빨리 줘.
빨강 :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서며) 어떡하죠? 새벽부터 일어나서 밥을 하려고 했는데, 쌀이 없는 거 있죠?
-강하, 준하, 동시에 태규를 보는.
준하 : 친구놈들하고 밥을 얼마나 해먹은 거냐?
태규 : 무슨 밥?
준하 : 그럼 쌀 사라고 준 돈으로 술 처먹은 거냐?
태규 : 쌀 분명히 사다 놨단 말이야. (얼른 쌀통 앞으로 가서 열어보는. 비어있는 쌀통)
준하 : (태규, 옆에서 쌀통을 들여다보는) 그럼 그 쌀이 다 어디 갔을까요?
태규 : 내가 분명히 저번 주에 사다놨는데.
강하 : (태규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내는)
태규 : 삼촌, 삼촌, 진짜 사다놨어, 진짜야.
-강하에게 끌려 나가는 태규.
15. 씬. 욕실 (아침)
-샤워기로 태규에게 물을 뿌리는 강하.
태규 : (펄쩍 펄쩍 뛰면서) 진짜 사다 놨어, 삼촌 믿어줘, 제발 좀.
강하 : 쌀 살 돈으로 술 사 처먹고 다니는 조카 놈 너 같으면 믿고 싶겠냐?
16. 씬. 식당 (아침)
-빨강, 겨우 노른자 터지지 않은 계란 하나(그것 역시 모양은 엉망이다)를 접시에 담아 강하 앞에 놓는.
노른자 터트린 납작한 계란 후라이 세 개씩을 접시에 담아, 준하와 태규 앞에 놓아주는.
콘푸레이크 통 세 개를 나란히 놓고.
빨강 : 종류별로 있네요? 변호사님은 어떤 맛으로 드릴까요?
강하 : 난 그냥 이것만 먹죠. (스푼으로 후라이를 드는데, 죽 흘러내리는 계란 후라이)
빨강 : 노른자를 안 터트리려고 하다보니. 제가 쌀이 없어서 당황했나 봐요. 평소엔 이러지 않는데.
태규 : (연신 재채기 하면서) 그러니까 큰 삼촌 저 여잔 가정부로 맞지..... (크게 기침하다가 강하의 얼굴에 침 튀고)
강하 : (암담한 표정으로)
태규 : (놀라서 일어나 행주 들고 강하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미안, 큰 삼촌, 내가 아직 술이 덜 깨서.
준하 : 야, 야, 행주로....
강하 : (참아내는 느낌으로 일어서서 나가는)
빨강 : 내일 아침부턴 제대로 된 아침을 꼭 해드리겠습니다. 믿어주세요. 변호사님.
태규 : 댁 같으면 후라이 하나도 못해내는 가정부 믿고 싶겠.....(기침하다가 준하의 얼굴에 침 폭포로 날려주고)
준하 : 진짜 드러워서 밥을 못 먹겠네. (일어나서 나가는)
태규 : 밥이 없으니까 못 먹는 거지, 삼촌.
빨강 : (태규 옆으로 다가서며) 우리 태규씨는 무슨 맛으로 드실까나요?
태규 : (빨강의 얼굴에 대고 기침을 하려고 하는데)
빨강 : (행주를 태규의 입에 들이미는)
17. 씬. 지하방 (아침)
-빨강, 동생들 죽 앞에 세워놓고. 남이는 잠들어 있는.
빨강 : 또라이 나가면, 주황이 네가 밥 해먹여. 세탁기 옆에 쌀 봉지 있어. 찬장에 통조림 많으니까 그거랑 같이 먹어.
후라이 해놓은 거 많으니까 그것도 먹고, 우유랑 콘푸레이크도 많으니까 그것도 먹어.
주황 : 남이 정말 데리고 출근 할 거야?
빨강 : 너희들한테 남이까지 맡기고 갈 수는 없잖아?
주황 : 그냥 남이 두고 가.
빨강 : 또라이한테 들킬 수 있어서 그건 안돼.
18. 씬. 거실 (아침)
-빨강, 청소기 돌리는. 강하, 준하, 출근하려고 하는.
준하 : 출근 시간 늦지 않겠어요?
빨강 : 제가 워낙 손이 빨라서 금방 하고 출근하면 늦지 않을 거예요.
준하 : 그럼 수고하세요.
-강하, 준하 나가는.
빨강 : (식당 쪽을 보는)
19. 씬. 식당 (아침)
-빨강, 들어오는. 태규, 콘푸레이크 우유에 타서 먹고, 후라이도 거의 다 먹어치웠다.
빨강 : (어이가 없고) 아니, 그걸 다.... (콘푸레이크 통 털어보면, 세 개 다 비어있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아있나.
태규 : 술 먹은 사람한테 시원한 국 하나도 안 끓여주는 가정부하고 사는데 그럼 뭘 먹어?
빨강 : 넌 어디 안나가니?
태규 : 나가든 말든 댁이 뭔 상...상처, 상가, 상....상근....
빨강 : (한심하게 보면서) 상관은 없는데.
태규 : 그래, 상관. 그거.
빨강 : 상관은 없는데, 젊은 애가 집에만 있으면 그렇지 않겠니?
태규 : (일어나서 기지개 켜며) 아, 배가 좀 차니까 졸리네.
20. 씬. 지하방 (아침)
-빨강, 남이 안고, 동생들에게.
빨강 : 배 터지게 먹었으니까 쭉 잘거야. 알아서들 잘하는 거야? 알았지?
주황 :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 어서 가봐.
파랑 : (잠든 남이 머리 쓰다듬으면서) 우리 남이도 하루 종일 주무세요. 누나 괴롭히지 마시구요.
초록 : 애기가 하루 종일 자면 아픈 거야. 그것도 모르니?
빨강 : 남이는 누나가 잘 볼 테니까, 제발들 조심해.
21. 씬. 회사 전경 (아침)
22. 씬. 화장실 (아침)
-빨강, 은말, 진주 서있는.
빨강 : (은말에게 잠든 남이 안겨주면서) 어젯밤에 많이 보채서 금방은 안 깰 거예요.
은말 : 어린 게 맘 놓고 울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단할까나.
빨강 : (기저귀 가방 건네주면서) 우유도 있으니까 미지근한 물에 타서 깨면 먹이면 되구.
은말 : 정말 안 들키고 살 수 있겠냐?
빨강 : 우리 애들이 워낙 빠릿빠릿하니까 잘 하겠지.
진주 : 난 애들이 걱정이 아니구, 네가 걱정이다.
빨강 : 내가 뭐?
진주 : 너 가정부로 들어간 거잖아? 솔직히 그게 말이 되냐? 있느나마나 미스진이 입주 가정부 노릇을 한다는 게?
은말 : 말은 안 되지.
빨강 : 왜들 이래? 오늘 아침도 잘 해서 먹였구만.
진주 : 진짜? 네가 밥을 해서 먹였다구?
빨강 : 쌀, 쌀이 없어서 그냥 저냥 해서 먹였어.
진주 : 직원 엠티 갔을 때, 너 카레 젓지도 않고 맹하니 있다가 타 태워먹어서 우리 조 쫄쫄 굶게 만든 인간이잖아?
은말 : 저번에 나 관절염 때문에 고생 할 때, 도와준다고 설치다가 화장실 물바다로 만들어서 나 잘리게 만들 뻔 한 적도 있지 왜.
빨강 : 아침부터 왜들 이러셔? 가뜩이나 애 다섯 끌고 어떻게 사나 겁나 죽겠는 사람, 용기는 주지 못할망정.
사람들이 인간미가 없어, 인간미가. 나 들어가니까 남이 잘 봐요, 은말씨. (뛰어나가다가 문에 머리 부딪히고) 우이씨.
은말 : 그게 자동문이냐? 쟤는 왜 맨날 저기 부딪히는지 몰라.
빨강 : (머리 비비며 뛰어나가는)
진주 : 진짜 불안하지? 은말씨?
은말 : 진빨강을 아는 인간이면 어떻게 안 불안하겠냐?
23. 씬. 사무실 (아침)
-직원들 바쁘게 움직이고. 빨강, 눈치 보면서, 팀장 앞으로 와서 서는.
빨강 : 조금 늦었어요. 팀장님.
팀장 : 오후반이세요?
빨강 : (어색하게 웃으며) 아직 10시도 안됐는데, 오후반은요.
팀장 : 머리는 왜 그 꼴이야?
빨강 : (머리 만지면서) 긴머리 거추장스러워서요.
팀장 : 진빨강?
빨강 : 네, 팀장님.
팀장 : 정신 차리고 살아. 너 예전처럼 살면 안 되는 거 알지?
빨강 : (서늘한 표정으로) 네, 알아요.
팀장 : (서류 넘기면서) 오늘 미팅 몇 개야?
빨강 : 여섯 개요.
팀장 : 나가서 여섯 개 중에 한 개라도 건져와.
빨강 : 네, 다녀오겠습니다. (문 쪽으로 걸어가는)
-중년의 직원(여) 팀장 옆으로 다가오는.
직원 : 쟤가 웬일이래? 미팅 여섯 개면 여섯 개 다 따오겠다고 큰 소리 빵빵치는게 특기인 애가.
팀장 : (복잡한 눈길로 문을 나가는 빨강의 뒷모습 보는)
직원 : 그래도 아버지가 의사였다는데, 유산 좀 받았겠지?
팀장 : 유산 좀 받았으면 댁 나눠줄까 봐?
직원 : 왜 그래? 아침부터 까칠하게?
24. 씬. 회사 앞 (아침)
-빨강, 남이를 업고 걸어 나오는. 우는 남이 다독이며.
빨강 : 우리 남이는 열심히 울고, 누나는 열심히 계약 따고. 오늘 하루 열심히 해보자, 남아.
(하는데, 걸어오는 카드사 직원) 아, 정말.
직원 : 진빨강씨?
빨강 : 남아, 우선은 열심히 뛰는 것부터 하자. (뛰기 시작하는)
직원 : 미친다 정말. 이젠 아주 자동이네, 보면 뛰어요. (뛰면서) 진빨강씨? 저 심장마비로 쓰러지면 사고 정말 커집니다.
빨강 : 이미 사고 커진지 오래다. (열심히 뛰는데, 남이를 덮고 있던 담요가 벗겨져 떨어지고,
주우려고 하지만 직원이 가깝게 다가와서 포기하고 다시 뛰는) 나중에 카드값 갚으면 담요값은 꼭 받아낸다, 내가.
직원 : 아니, 애까지 업고 저렇게 잘 뛰냐?
빨강 : (다가오는 버스에 얼른 올라타면서 버스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 오라이.
(버스 출발하고 헉헉거리며 뛰어오는 직원을 보는) 제발 좀 포기해주라.
직원 : (멀어지는 버스 보면서) 내가 다른 돈은 다 못 받아도 네 돈은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받아낸다.
25. 씬. 거실 (낮)
-태규, TV에 연결한 게임을 하고 있는. 자동차 운전 게임 정도. 몸까지 이리 저리 비틀면서 신이 나있다.
태규 : 달려, 달려. 아, 역시 우태규 선수의 레이싱은 환상적이군요.
그렇죠. 우태규 선수가 달리 세계 최고의 선수란 말을 듣는 게 아니죠.
26. 씬. 지하방 (낮)
-주황, 문 앞에서 문 조금 열고 밖을 보면서, 안절부절 하는. 배를 틀어잡고.
초록, 노랑, 파랑 걱정스럽게 계단 밑에 서서.
초록 : 나갈 거 같지 않지?
주황 : (한손으로 엉덩이를 틀어잡고 괴로워하는)
파랑 : 쌀 거 같아?
주황 : 기절할 거 같다.
파랑 : 그냥 여기다 (드럼통) 싸버려 형. 누나가 똥도 싸버리라고 했잖아.
주황 : 그럼 우리 냄새에 기절해 자식아.
노랑 : 그럼 어떡해? 오빠 그러다 죽으면?
주황 : (밖을 내다보다가) 가, 가만 있어봐.
27. 씬. 거실 (낮)
-태규, 인터폰 모니터 보면서.
신문(아줌마) : 신문값 받으러 왔는데요.
태규 : 들어오세요.
신문 : 자전거 때문에 그러는데 나와서 주시면 안 될까요?
태규 : 에이. 귀찮게. 알았어요. (밖으로 나가는데)
-주황, 지하방에서 급하게 뛰어나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28. 씬. 화장실 (낮)
-주황, 뛰어 들어와서 바지 내리고 변기에 급하게 앉는.
주황 : 아, 죽다 살았네.
29. 씬. 거실 (낮)
-태규, 들어오는.
태규 :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없어요. 그깟 자전거 누가 가져간다구.
(하면서 화장실로 가는. 문고리를 잡고 열려는데, 잠겨있다) 어, 이거 왜 이래?
30. 씬. 지하방 (낮)
-초록, 노랑, 파랑, 문 앞에 쪼르르 서서 문틈으로(키 순서대로 서고, 쪼그린 모습으로) 밖을 내다보며.
파랑 : 어떡해? 어떡해? 형 잡히면?
31. 씬. 거실 (낮)
-문 앞에서 실갱이하고 있는 태규.
태규 : 오줌 마려 죽겠는데, 이게 왜 말썽이야.
32. 씬. 화장실 (낮)
-덜컹거리는 문 앞에 서서 하얗게 질려 있는 주황.
주황 : (허공을 올려다보면서) 엄마, 아빠, 나 걸리면 안돼. 우리 여기서 쫓겨나면 끝장이야. 제발 좀 도와줘.
33. 씬. 거실 (낮)
-태규, 문 앞에 서서 핸드폰을 누르는.
34. 씬. 준하의 사무실 (낮)
-준하, 책상 앞에 서서 직원에게.
준하 : 오류 발생률은요?
직원 : 5퍼센트 이하로까지 내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울리는 핸드폰.
준하 : (핸드폰 보면서, 귀찮은 느낌의 표정) 0퍼센트까지 내려보세요.
직원 : 그건 가능하지 않다는 거 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준하 : 목표를 높게 잡으시라는 겁니다.
직원 : 알겠습니다. (나가고)
준하 : (핸드폰 받고) 근무 시간에 전화 하지 말랬지?
-화면 분할되면서.
태규 : (인상 구겨져 있는 상태로) 나 오줌마려 죽을 거 같은데, 화장실 문이 고장이야.
준하 : (한심하고) 너 아주 죽어볼래? 그런 걸로 전화질이야? 지금?
태규 : 작은 삼촌, 2층 큰 삼촌 화장실 좀 쓰면 안 될까? 이번엔 감쪽같이 할 수 있어. 나 정말 쌀 거 같아.
준하 : 네가 안 들킨 적 있어? 문을 뜯어내서라도 아래서 싸. (탁 끊어버리는)
35. 씬. 거실 (낮)
-태규, 화장실 문고리 잡고.
태규 : 피도 눈물도 없어. 드라이버가.....(하면서 세탁실 쪽으로 움직이는)
36. 씬. 지하방 (낮)
-문틈으로 보고 있던 초록, 노랑, 파랑. 초록, 급하게 뛰어나가는.
파랑 : 누나? 누나?
37. 씬. 거실 (낮)
-태규, 세탁실에서 드라이버 찾아서 나오는데. 현관 문 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초록.
초록 : 아저씨?
태규 : (깜짝 놀라고) 너, 너 뭐야?
초록 : 아저씨. 비행기가 아저씨 마당 나무에 걸렸어요. 내려주세요.
태규 : 잠깐만. 아저씨가 급해서. (드라이버로 화장실 문을 따려고 하는데)
초록 : (태규 앞으로 와서 태규 팔 잡아끌며) 아저씨, 빨리요, 빨리요.
태규 : (끌려가면서) 어, 어. 나 싸는데....
38. 씬. 마당 (낮)
-태규, 몸을 비틀며 나무를 흔들어대는.
태규 : 근데 너 어떻게 들어왔니?
초록 : 문이 열려 있어서요.
태규 : 신문 값 주고 문 안 잠갔나.....으.
초록 : 어디 아프세요?
태규 : 응. 금방....금방....
초록 : 아저씨 아프신 거 같으니까 그냥 갈게요. (문으로 나가는)
태규 : (온몸을 비틀면서) 그냥 갈 걸 왜..... (하다가, 초록 나가는 거 보고 바지 내리는. 살 거 같다는 표정으로)
39. 씬. 지하방 (낮)
-주황, 노랑, 파랑 서있는.
노랑 : 안 들킨 건 다행인데, 초록이는 어떻게 들어오지?
40. 씬. 거실 (낮)
-들어오는 태규. 게임기 앞에 앉으려다가, 드라이버 들고.
태규 : 이왕 맘먹은 거 고쳐놓지 뭐. (하면서 드라이버로 화장실 문 따려고 하는데, 열리는 문) 뭐야?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는)
아깐 분명히 안 열렸는데. (하다가 코 틀어막으며) 윽. (변기 안 들여다보는) 아까 물 내렸는데......
(물 내리면서 갸우뚱하는) 나 똥 안 싼 거 같은데, 술 진짜 끊어야 하나.
41. 씬. 강하의 집 대문 앞 (낮)
-초록, 오들오들 떨며 서있는.
42. 씬. 음식점 (낮)
-손님들이 꽤 있는 식당. 빨강, 구석 테이블에서 눈치 보면서 남이 똥기저귀 갈고 있는.
사장, 다가오는.
빨강 : (어색하게 웃으며) 제가 이것만 하고 바로 설명 드릴게요, 사장님.
사장 : (버럭) 지금 뭐하는 거야? 남의 장사 망치려고 작정 했어?
43. 씬. 음식점 앞 (낮)
-사장, 빨강을 밀어내는.
빨강 : (남이를 안고) 사장님, 사장님, 제가 설명 드릴 테니까 들어나 보시고.
사장 : 아, 됐어. (문 닫는)
빨강 : (기운이 빠지고, 남이 다독이면, 웃는 남이) 우리 남이 시원해? 그럼 됐지 뭐. 아직 갈 데 많아.
44. 씬. 부동산 사무실 (낮)
-노인 둘 장기를 두고 있고, 그 옆에 훈수 두는 노인도 앉아있고.
빨강 : (남이를 안고 앉아서 팜플렛 펼쳐 보이며) 노인분들한테는 이보다 더 좋은 보험이 없다니까요.
노인 : (장기 두면서) 그러니까 떠들어보라잖아.
빨강 : 이게요, 그러니까...아프시면 하루에 입원비가....입원비가.... (팜플렛 들여다보면서) 2만원....
노인 : 그거 3만원이야.
빨강 : 아, 그렇네요, 3만원. 입원비가 3만원이구요. 암에 걸리시면 초기 진단비가...
노인 : 5백만원.
빨강 : 아,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네요. 할아버지 진짜 잘 아시네요.
노인 : 매일들 들락거리니까 이젠 다 외워. 그런 거 말고 뭐 다른 거 없어? 다른 회사랑 쌈빡하게 다른 거 없냐구?
빨강 : 아, 있죠, 그게요, 뭐냐 하면.... (팜플렛 열심히 뒤적이며) 이게 그러니까....
노인 : (고개 돌리며)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버벅거려? (하다가, 깜짝 놀라서) 이 놈의 자식, 이거 뭐하는 거야?
-남이, 열심히 핸드폰 빨아대고 있는.
노인 : (핸드폰을 뺐으며) 이거 어쩔 거야?
빨강 : (얼른 핸드폰 자기 옷으로 닦으면서) 멀쩡해요, 할아버지. 진짜 멀쩡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노인 : 무슨 일을 애까지 달고 다니면서 해?
빨강 : 할아버지, 제가 다시....
노인 : 필요 없으니까 어서 가. 별 재수가 없으려니까.
45. 씬. 공중전화 부스 앞 (낮)
-초록, 추워서 공중전화 부스에라도 들어가려고 기다리는데, 남자, 부스에서 나오는.
얼른 들어가는 초록. 공중전화에 남아있는 동전 표시.
46. 씬. 길 (낮)
-기운 없이 남이 안고 걸어오는 빨강.
빨강 : 남아? 엄마가 그랬지, 욕 많이 먹고 살면 명 길다고. 그래서 노랑이 누나가 큰누나더러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 거라고
덕담하는 거 들었지? 우린 진짜 천년만년 살지도 모르겠다. 그지?
-울리는 핸드폰.
빨강 : (전화 번호 보고 약간 갸우뚱하면서 받는) 여보세요?
초록E : 언니?
빨강 : (놀라서) 초록이니?
47. 씬. 공중 전화 부스 (낮)
-추위에 떨면서 전화 하고 있는 초록.
빨강E : 이게 어디 번호야? 너 어디야? 초록아?
초록 : 공중전화야.
빨강E : 너 집 밖이야?
초록 : 또라이 자는 틈 타서 잠깐 나왔어.
48. 씬. 길 (낮)
-빨강, 안심하고.
빨강 : 뭐하러 나와? 나왔다 들어가려면 힘들 텐데. 답답하더라도 그냥 집에 있어.
49. 씬. 공중 전화 부스 (낮)
초록 : (추위서 입까지 파랗게 질리고) 응. 언니, 이젠 안 나올게.
빨강E : 초록아? 목소리가 왜 그래? 집에 무슨 일 있는 거야?
50. 씬. 길 (낮)
초록 :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진짜야. 언니? 남이는 안 울어?
빨강E : 응. 남이 잘 놀고 있어. 초록아?
초록 : 응.
51. 씬. 길 (낮)
빨강 : 언니가.....언니가....이제부턴 잘 할 거야. 월급도 많이 받고 그래서 얼른 돈 모아가지고 집도 얻고 그럴 거야.
그땐 맘대로 밖에 나가서 놀게 해줄 테니까 답답하더라도....답답하더라도...
52. 씬. 공중전화 부스 (낮)
초록 :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 하지만, 눈물이 흐르고, 입술 깨물면서 힘겹게 말하는) 응. 알았어, 언니.
그때까지 절대 밖에 나오고 그러지 않을게. (뚜 뚜하고, 전화 끊기고. 수화기 꼭 붙들고 울면서) 언니, 추워. 추워 죽겠어.
그러니까 언니 빨리 월급 많이 받아서 우리 집 좀 얻어줘. 아무 때나 나갔다 들어갔다 할 수 있는 우리 집 좀....
53. 씬. 길 (낮)
빨강 : (끊긴, 전화 들여다보면서) 그래, 얼마나 답답하겠니. 매일 밖에서 뛰어놀던 것들이 지하방에 갇혀 살려니.
그래도, 참자, 조금만 참자. 언니가 잘해볼게.
-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빨강 : 네? 팀장님?
팀장E : 너, 어디야?
빨강 : (억지로 밝은) 어디긴요, 열심히 고객 상담 중이죠.
팀장E : 당장 들어와.
54. 씬. 사무실 (낮)
-팀장, 재영 마주서있는.
재영 : 역시 대단하세요. 전국에서 실적 1위 팀을 이끄시는 노하우 다른 지점 점장님들께도 좀 전수해주셔야죠.
다음주에 점장님들 교육 일정 잡을 테니까 준비 좀 해주세요.
팀장 : 알겠습니다.
-빨강, 다가오는.
팀장 : 인사해. 총괄 실장으로 발령 받으신 정재영실장님.
빨강 : 안녕하세요? 진빨강입니다.
재영 : (묘하게 미소 지으며) 아, 네. 이 분 때문에 팀장님이 더 대단하시다는 생각 했어요. 실적을 보니 전국 최하위시던데,
그런 분을 팀으로 데리고 있으시면서도 전국 1위를 하시는 비결이 분명히 있으시겠죠?
팀장 : 다른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범인물로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빨강 : (눈만 꿈뻑이는)
재영 : 퇴직을 권해볼까 했는데, 그럼 안 되겠네요. 이따 회식에서 봬요. (걸어가는)
빨강 : 사장님 따님이신 분이죠? 다들 저분이 후계자가 되실 거라고 하던데.
팀장 : 좋니?
빨강 : 네?
팀장 : 그런 분한테 확실하게 눈도장 찍어서?
빨강 : 에이. 팀장님도 저도 생각이 있는 인간인데.
팀장 : 생각이 있는 인간이, 고객 센터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게 만들어?
55. 씬. 화장실 (낮)
-은말, 남이 우유 먹이고 있는. 진주 들어오는.
진주 : 아니, 남이가 왜 또 여기 있어?
은말 : 왜겠니? 지 누나가 불려 들어왔으니 여기 있는 거겠지.
진주 : 또?
-빨강, 들어오는.
진주 : 쿠사리 먹으러 불려 들어왔다며?
빨강 : 당신은 왜 그렇게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려? 시집도 못간 처녀가 벌써 방광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은말 : 참 오지랖도 넓지, 지금 네가 얘 방광 걱정 할 때냐?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또 불려 들어온 거야?
빨강 : 어디 돈 많은 홀아비 하나 없을까?
은말 : 있으면?
빨강 : 언니, 저번에 선 본 남자, 아파트가 두 채라고 했지? 내가 좀 만나보면 안될까?
은말 : 아서라, 말아라. 요즘 사내놈들이 얼마나 계산에 밝은데 동생 다섯 끌고 시집오겠다는 여자 얼씨구나 하겠냐?
진주 : 그러지 말고, 원변호사를 좀 어떻게 해봐. 이젠 한집에 살잖아?
미친 척하고 밤에 홀딱 벗고 원변호사 방에 뛰어드는 건 어떨까? 그리고 책임지라고 뻗어버리는 거야.
은말 : 제 정신으론 네가 홀딱 벗고 뛰어들어도 거들떠도 안볼 위인이니까 작전을 짜봐.
밥에다 약 같은 걸 타서 먹이고 나서 옆에 옷 벗고 누워서 질질 짜는건 어떨까 싶은데.
빨강 : 강간이라고 나 콩밥 먹일 인간이야.
56.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보고 있고, 재영 그 앞에 서있는.
재영 : 사람이 들어왔으면 고개라도 좀 들어주지.
강하 : 용건 있으면 말해.
재영 : 우리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거든. 그런데도 근친상간 어쩌고 하는 건 오버 아닐까?
강하 :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서류만 보면서) 그러니까 뭐 하러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남남 사이에 근친상간이니 어쩌니 하면서
오버하는 인간한테 시간을 낭비해?
재영 : 그럼 어쩌겠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자로 보이는 딱 한 사람인데.
강하 : 그런데 어쩌냐?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 하난 여자로 안 보이는데.
-노크 소리.
강하 : 네.
-준하, 서류 들고 들어오는.
준하 : 여기 계셨습니까? 총괄 실장으로 영전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재영 : (무시하고, 강하의 책상 두 손으로 잡으며 얼굴 조금 들이대면서) 새로운 제안이 있는데 들어볼래?
강하 : (무시하고, 준하 보면서) 뭐냐?
준하 : 법률 자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재영 : 이혼 보장해주면 나랑 결혼 할래?
준하 : (어이없는 표정으로 재영을 보는)
강하 : (일어서며) 두고 가. 나중에 검토해볼 테니까. (나가려고 하면)
재영 : 대답 안 해?
강하 : 회의가 있다. (나가는)
준하 : 이혼까지 보장해주면서 결혼하겠다는 네 심리가 뭐냐?
재영 : 이혼 안 당할 자신 있거든.
57. 씬. 회의실 (낮)
-강하, 박이사, 김이사 앉아있는.
박이사 : 회장님께서 오늘이라도 당장 어떻게 되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우선은 합의를 봐야 할 거 같아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강하 : 합의라뇨?
김이사 :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회장님 주식은 당연히 사장님께 상속이 되긴 하겠지만,
상속세를 내면 주식에 변동 사항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현재는 원변호사님께서 2대 주주시지만,
그땐 최대 주주가 되실 수 있고, 그럼 원변호사님의 의지에 따라 경영권을 찾으실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강하 : 찾다뇨? 제가 언제 뺐긴 적 있습니까?
박이사 :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셨다고만 하면 지금 경영권 쉽게 회장님께 넘어가지 않았을 거란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들이긴 하지만 현재 사장님을 크게 신임하지 못하시는 회장님 아니십니까?
강하 : 그래서요?
김이사 : 아직도 돌아가신 원변호사님 아버님을 보필했던 중역들이 건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원변호사님만 원하시면 저흰 언제든지....
강하 : (자르며) 그 생각들, 빨리들 버리세요. 절 아버지의 대역으로 생각하신다면 오산들이십니다.
김이사 : 원변호사님.
강하 : 전 JK의 법률팀 변호사일 뿐입니다.
박이사 : 그렇지만 막강한 로펌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시면서 까지 JK에 입사하셨을 때에는
뭔가 큰 뜻이 있으셨을 거 아닙니까?
강하 : 큰 뜻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2대 주주니 대충 일해도 쫓겨날 걱정은 없겠다 싶어서 들어온 겁니다.
김이사 : 왜 이러십니까?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저희가 잘 아는데.
강하 : 승률이요? 그거 별거 아닙니다. 싸움꾼 기질 때문이죠. 싸우면 이겨야 한다는 기질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았거든요.
박이사 : 그런 기질로 큰 뜻만 품으시면....
강하 : (일어서는) 경영권 같은 거 저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쪽에 줄을 서시려고들 하지 마세요.
저 그런 거 아주 귀찮은 놈이니까요. (나가는)
58. 씬. 사장실 (낮)
-인구, 민경 앉아있는.
인구 : 박이사를 이번에 부사장으로 승진 시키는 게 어떨까 하는데. 그동안 실적도 좋고.
민경 : 당신 왜 그래?
인구 : 어? 뭐?
민경 : 박이사가 어느 쪽 사람인지 벌써 잊은 거야?
인구 : 아, 그거. 에이 당신 너무 그러지 마. 성현이 죽은지가 벌써 몇 년인데.
민경 : 강하가 있잖아?
인구 : 강하는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강하 지 아버지하곤 아주 달라. 룸싸롱에서 여자도 부르지 말라고 하는 애다.
민경 : (기가 막혀 보면)
인구 : (움찔해서) 아니, 내가 부르자고 한 건 아니고.
민경 : 난 걔 싫어.
인구 : 재영이가 좋다잖아. 우리 딸이 죽어도 결혼하겠다는 앤데 이쁘게 좀 봐라.
-노크 소리.
인구 : 들어와.
-들어오는 재영.
재영 : 부르셨어요?
인구 : 어, 내가 아니고, 엄마가 너 좀 부르라고 해서.
민경 : 당신 이회장님하고 저녁 약속 있다면서요? 길 많이 막히니까 지금 출발하셔야 해요.
인구 : 어. 그래야겠네.
민경 : (일어나서 옷걸이에서 오버 꺼내 인구에게 입혀주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구요.
인구 : 알았어. 알았어. 집에서 봐. (재영에게) 엄마하고 맛있는 거 먹어. 할아버지 간호하느라 엄마 고생 많다. (나가는)
민경 : 앉자.
-재영, 민경 앉는.
재영 : 엄마 회사에 자주 나오는 거 별로 좋지 않아. 아빠가 회사 일 일일이 엄마한테 지시 받는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어.
민경 : 토요일에 최인섭 의원 장남하고 자리 만들었으니까 준비해.
재영 : 그런 자리 뭐 하러 만들어?
민경 : 너 결혼 시켜야 하니까.
재영 : 나 결혼할 사람 있는 거 알잖아?
민경 : 너 강하하고 결혼 못해.
재영 : 왜?
민경 : 무슨 생각을 하는 앤지 모르겠으니까.
재영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면 되는 거야?
민경 : 걔 너하고 결혼할 마음 없어.
재영 :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민경 : 치사하지 않니? 그동안 너 목 맨 거 알아.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애야.
재영 : 치사하지 않아, 사랑하니까.
민경 : 토요일이야. 어렵게 만든 자리니까 실수하지 마. (일어서는)
재영 : (일어서며) 뭐가 필요하대? 나랑 결혼해주는 조건으로?
민경 : (싸늘하게 보는)
재영 : 뭔가 괜찮은 카드를 내밀었을 거 아냐? 다른 한다하는 집안에서 다 꺼려하는 날 받아주겠다고 하는 거 보면?
민경 : 미안하다고 해야 하니?
재영 : 엄마.
민경 : 호스티스 출신인 엄마 덕에 한다하는 집안에서 다 꺼려하게 만들어서?
그래, 네 말 맞아. 선거 자금이 필요하다는 눈치를 보여서 가능할 거라고 했어, 그래서 만든 자리야.
재영 : 대체 왜 그래? 왜 엄마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어? 엄마 과거가 어떻든, 엄마 지금 성공했잖아? JK의 안주인이잖아?
그런데 뭐하러 그런 카드까지 내밀면서 날 그런 자리에 집어넣고 싶어 해?
민경 : 세상이 다 아는 과거를 가진 이민경의 딸이니까. 내 딸로만 살아가는 거, 이 험한 세상에선 너무 불리하니까.
좀 더 나은 백그라운드를 만들어주고 싶으니까. 이제 됐니?
재영 : 난 원강하와 결혼해.
민경 : 너도 그거잖아? 다른 데선 모두 꺼려하니까 그런 거 상관없다고 할 강하가 필요한 거 아니니?
재영 : 아니. 필요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필요한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포기해줘.
민경 : 내 딸이라는 거 하나만 빼면 너 모자란 거 없어, 그러니까 좀 더 나은 상대를 찾아.
재영 : 아빠랑 다르잖아, 원강하. 그거 하나면 엄마도 만족해야 하는 거 아냐?
59. 씬. 강하의 집 앞 (낮)
-오들 오들 떨고 서있는 초록. 주황, 나오는.
초록 : 오빠?
주황 : 추웠지?
초록 : (끄덕이는)
주황 : 들어가자.
초록 : 또라인?
주황 : 잠들었어, 그래도 조심해야 해.
60. 씬. 회사 복도 (낮)
-직원들. 팀장, 빨강,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팀장 :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연락 한거지? 오늘 총괄 실장이 격려 차원에서 특별히 한턱 쏘는 거니까 아무도 빠지면 안돼.
직원 : 미운털 박힐 작정하지 않고서야 그런 자리에 어떻게 빠지겠어요?
빨강 : 저기요, 팀장님. 전 오늘 선약이 있어서....
팀장 : 진빨강씨 작정 했어? 미운털 제대로 박혀보자? 아까 정실장한테 눈도장까지 찍혀놓고, 빠질 배짱 있어?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모두 타는데.
팀장 : 안타?
빨강 : 저 화장실 좀 갔다가 바로 갈게요.
61. 씬. 화장실 (낮)
-남이 안고 있는 진주, 은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빨강, 남이 쓰다듬으면서.
빨강 : 미안, 미안. 진짜 도망 칠 수가 없어.
진주 : 알았으니까 가봐.
은말 : 어떻게 남이는 너보다 우리가 보는 시간이 더 많냐?
빨강 : 미안, 미안. 내가 나중에 이 웬수 제대로 한번 갚을게.
은말 : 나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까 싶다.
진주 : 어서 가봐. 늦어서 눈총 받지 말고.
빨강 : 진주씨, 은말씨,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은말 : 너한테 사랑 받는 그날부터 우리는 고생길이 열렸다.
빨강 : 우리 남이 착하게 잘 있는 거야? (뛰어나가려다가, 들어오는 직원이 문 여는 바람에 문에 부딪히고)
은말 : 참 문 하난 튼튼하게 만들었나봐. 저렇게 매일 부딪히는데도 멀쩡한 걸 보니.
62. 씬. 회사 복도 (낮)
-진주, 남이를 안고, 은말과 함께 걸어오는데, 장수와 마주치는.
장수 : 아니, 무슨 애기예요?
은말 : 눈썰미도 없지. 무슨 애기는 빨강이 막내잖아.
장수 : 아니, 이 애기가 왜?
진주 : 가, 은말씨.
장수 : 왜 이 애기를 두 분이 보시냐구요?
은말 : 볼만 하니까 보겠지.
진주 : 짜장면 먹을까?
은말 : 너 돈 있냐?
진주 : 카드 있잖아.
장수 : 제가 살까요? 저녁?
63. 씬. 설렁탕 집 (밤)
-진주, 남이 안고. 은말, 장수 앉아있는.
장수 : (종업원에게) 여기 이건 개업 할 때 돌린 전단지에 있던 공짜 쿠폰이구요. 이건 도장 열 개 찍은 쿠폰 두 장.
그럼 설렁탕 세 그릇 되죠?
종업원 : 네. (쿠폰 받아서 가는)
진주 :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
은말 : 설렁탕을 얼마나 먹었길래 도장 열개 찍은 게 두 장씩이나 돼.
장수 : 아, 그게요. 한 장은 제 꺼구요. 우리 방 사람들하고 같이 와서 먹을 때 돈을 따로 내고,
도장 한꺼번에 다섯 개 받은 적 있거든요. 그리고 또 한 장은 요 앞에서 도장 아홉 개 찍은 걸 주웠지 뭐예요.
아니 그렇게 귀한 걸 왜 마구 흘리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진주 : 엄청 귀한 거 줏으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장수 : 제가요. 잠복만 잘 하는 게 아니거든요. (옆에 있던 가방 앞 자크를 열고 쿠폰집을 꺼내는.
가지가지 쿠폰이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다) 제가 뭐든 꼼꼼히 챙기는 버릇이 좀 있어서요.
은말 : 세상에, 뭔 남자가. 이렇게 꼼꼼하디야.
장수 : (묘한 눈초리로 진주 보면서) 여기 영화 공짜 쿠폰도 두 장 있는데.
진주 : 무섭게 왜 그런 눈으로 봐요?
64. 씬. 회식 장소. 한우집 정도 (밤)
-직원들, 팀장, 빨강 쭉 앉아있고. (스무명 정도)
재영, 일어서서.
재영 : 오늘의 JK가 있는 건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신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제가 특별히 마련한 자리니까 마음껏 드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박수 치고.
직원 : 스케일이 진짜 다르세요. 삼겹살 집도 괜찮은데 이렇게 한우로 쏘시니.
재영 : 어제 잡은 소로 특별히 부탁해 놓은 고기니까 많이들 드세요. (건너편에 앉은 빨강에게) 진빨강씨, 많이 드세요.
우리 회사에서 큰 역할 해주고 계신데 많이 드시고 힘내셔야죠.
직원2 : (빨강의 옆에 앉아있는) 진빨강, 찔리겠다.
팀장 : (빨강의 옆에 앉아있는) 뭐해? 안 먹고?
빨강 : 먹어요. (먹으려고 하는데, 고기가 목에 걸리고, 집에 있는 동생들 때문에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재영 : 왜요? 맛없어요?
직원3 : 회식하면 삼겹살만 먹었는데, 한우를 먹으려니까 감격해서 그렇겠죠 뭐.
-모두 웃는데.
팀장 : 너 고기 보면 미치잖아? 어서 먹어.
빨강 : 네, 먹어요. (억지로 고기를 씹는)
65. 씬. 설렁탕 집 (밤)
-하품하는 은말. 진주, 장수 앉아있는.
진주 : (남이 안고, 핸드폰 중) 남이는 자고 있어. 알았어,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와. (전화 끊고) 은말씨는 가봐.
은말 : 너 혼자 두고 어떻게 가냐?
장수 : 제가 있을 테니까 가보세요. 피곤하실 텐데.
은말 : 왜? 나 보내고 둘이 뭐하려구?
진주 : 이장수씨도 가보세요.
장수 : 의리가 있지, 애 데리고 고생하시는 진주씨를 두고 어떻게 발길이 떨어지겠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2차도 제가 쏘죠 뭐.
66. 씬. 찜질방. 카운터 앞 (밤)
-장수, 직원에게 쿠폰 세 장 탁 내놓는. 뒤에 서있는 은말, 진주.
장수 : 개업 1주년 기념행사 때 돌린 쿠폰 맞죠?
직원 : 맞는데, 한번에 한 장씩 사용 하셔야 하는데요. 세 분이 같이는.
장수 : 아, 그래요? (돌아서서 진주와 은말에게 한 장씩 주고, 다시 돌아서서 직원에게) 우리 일행 아니에요, 그럼 됐죠?
67. 씬. 찜질방 (밤)
-진주, 남이 팔 잡고 걸음마 연습 시키는. 그 옆에 앉아있는 은말.
진주 : 금방 걷겠네. 빨리 커야 네 큰 누나가 고생을 덜하지. 빨랑 걷고 크고 그래라 남이.
은말 :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업고 다닐 때가 더 편한 거야. 걷기 시작해봐. 가만히 업혀 다니려고 안 해.
진주 : 그런 건가?
-장수, 계란과 식혜 한잔을 가지고 와서 앉는.
장수 : 저번엔 천원에 세 개더니 올랐다고 두 개만 주네요.
진주 : 왜 계란 쿠폰은 없어요?
장수 : 그러니까요. 제가 원래 쿠폰 없는 건 안 사먹는 편인데, 오늘은 쏘기로 했으니 샀습니다.
진주 : 돈을 물 쓰듯이 하셔서 어쩐대요.
은말 : 근데 식혜는 한잔이야?
장수 : 전 아까 설렁탕 많이 먹어서 계란은 생각 없구. (주머니에서 소주컵만한 등산용 스탠컵을 꺼내는)
전 요기다 (식혜 컵에 따르는) 따라서 목만 축이면 되니까 두 분이 많이 드세요.
은말 : 세상에, 등치는 산만해 가지고 어떻게 고런 걸 가지고 다닌데.
장수 : 등산 용품점 개업 할 때 하나 얻은 건데 진짜 쓸만하더라구요, 위생적이고. 전 그럼 화장실 좀..... (일어서서 걸어가는)
은말 : 내가 보기엔 저 인간 너한테 맘 있다. 그러니까 그 아끼는 쿠폰을 마구 써대지.
다른 데서 찾지 말고 한번 잘 해봐. 마흔 되기 전에 시집은 한번 가봐야 할 거 아냐?
진주 : 병원 공짜 쿠폰 없다고 아파도 병원에 안 데려갈 위인한테 시집가라구?
68. 씬. 룸싸롱 (밤)
-준하, 여자와 마주 앉아 술 마시고 있는.
준하 : 이혼 해줄 테니까 결혼 할래. 해봐.
여자 : (준하의 팔짱 끼며) 그럼 얼마 줄 건데.
준하 : 해봐.
여자 : 이혼 해줄 테니까 나랑 결혼하자, 오빠.
준하 : (안주머니에서 지갑 꺼내, 십만 원짜리 두장 테이블에 올려놓는)
여자 : 오빠 멋지다. (돈 챙겨 넣으며) 또 해볼까? 오빠. 이혼해....
준하 : 나가라, 너.
여자 : (놀라서) 오빠?
준하 : (술잔 거칠게 내려놓으며) 나가라구.
여자 : 이상한 오빠야. (일어서서 나가는)
준하 : (술병 째 술을 마시다가 술병 벽에 던져버리고. 뒤로 머리 젖히고 눈을 감는)
69. 씬. 병원 전경 (밤)
70. 씬. 병실 (밤)
-정회장 침상 옆에 서있는 강하.
강하 : 일어나세요.
정회장 : (의식 없는)
강하 : 가실 때 가시더라도 지금은 가지 마시라구요. 일어나셔서 시끄러워질 일들 다 정리 해놓고 그때 떠나세요.
-간병인, 물병 들고 들어오는.
강하 : 밤에도 계십니까?
간병인 : 그럼요. 가족분들은 낮에 잠깐 들리실 때도 있고, 안 오실 때도 있구요.
강하 : 수고해주십쇼. (나가려고 하면)
간병인 : 그런데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문병 오시는 분들은 다 알아두라고 해서요.
강하 : 아무도 아니니까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가는)
71. 씬. 병원 앞 (밤)
-걸어 나오는 강하.
강하 :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72. 씬. 일식집 정도의 장소 (밤)
-강하의 회상.
-정회장, 강하, 마주 앉아있는.
강하 : (정회장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왜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냐?
강하 : .....
정회장 : 넌 참 이상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도 넌 네 아버지나 엄마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냥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아이였지. 누굴 부르는 걸 본 적 없어.
강하 : ....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내가 꾸는 꿈이 하나 있다. 난 그 꿈을 너와 같이 이루고 싶은데 어떠냐? 도와주겠냐?
강하 : 싫습니다.
정회장 : 무슨 꿈이냐고 묻지도 않는구나. 들어나 보지 않겠느냐?
강하 : 듣지 않겠습니다.
정회장 : 왜?
강하 : 저 같은 놈이 끼어들면 안 될 꿈일 테니까요.
정회장 : 왜 그렇게 네 자신한테 잔인한 게냐? 뭐가 널 그렇게 만드는 거냐?
강하 : .....
73. 씬. 병원 앞 (밤)
-걸어가는 강하.
74. 씬. 찜질방 앞 (밤)
-진주, 남이 빨강에게 업혀주는. 장수 옆에 서있고,
빨강 : 은말씨는?
진주 : 공짜로 찜질방 온 김에 아예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출근하시겠대. 요즘 동네 노인정에서 주무셨나봐.
빨강 : 그럼 쭉 노인정에서 사실 거래?
진주 : 다음주에 계 타는 거 하나 있대. 그걸로 월세 보증금 해서 방 얻을까 하시나봐.
빨강 : 계도 부으셨대? 좋겠다, 은말씨는. 계 탈 돈도 있고.
진주 : 퍽도 좋겠다. 70 넘어 손에 쥔 거라곤 곗돈 천만 원이 전분데. 그나저나 넌 남이 업고 어떻게 들어갈래?
빨강 : 늦었으니까 좀 더 기다렸다가 다들 잠들면 들어가지 뭐.
진주 : 애들은 오늘 무사했을까?
빨강 : 전화 안온 거 보면 오늘은 무사히 넘긴 거 같아.
진주 :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장수 : 참 인생 스릴 있어요, 빨강씨는.
진주 : (흘겨보는) 쿠폰만 챙기지 마시고, 눈치도 좀 챙기시죠.
75. 씬. 강하의 집 앞 (밤)
-빨강, 남이 업고 집 안을 살피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준하의 차. 빨강, 얼른 몸을 숨기는.
준하, 대리 기사 내리는. 준하,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준하, 대리기사에게 돈 주고 초인종을 누르는.
76. 씬. 편의점 (밤)
-빨강, 잠든 남이를 업고, 물건 이것저것 만져보며 서성이는.
종업원 :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빨강 : 아니요. 그냥 좀 보는 거예요.
종업원 : (갸웃하고 걸어가는)
빨강 :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 12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잠든 남이 다독이며) 참 시간 안 간다.
77. 씬. 강하의 집 마당 (밤)
-빨강, 불안한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현관 앞에 서서, 가만히 현관문을 여는.
만약을 위해, 남이를 앞에 꼭 여며 매고, 웃옷으로 앞을 가린. 가슴이 왕창 부푼 이상한 모습으로.
78. 씬. 거실 (밤)
-빨강,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태규E : 가정부라는 게 밥도 안 해주고.
빨강 : (하얗게 굳어지는데)
태규 : (소파에 엎뎌 자면서, 잠꼬대하고 있는, 테이블 위엔 피자판이 놓여져 있고) 어...나 똥 안 쌌는데.
빨강 : (혼잣말로) 저 또라이는 잠꼬대도 드럽게 해요.
79. 씬. 지하방 (밤)
-빨강, 겨우 문을 열고 들어서서 한숨을 돌리는. 동생들 모두 잠이 들어있고.
빨강 : (안심을 하면서, 앞에 안은 남이를 풀어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내려놓는데)
주황 : (눈을 뜨고, 힘없이 일어나 앉는) 누나, 왔어?
빨강 : 응. 하루 종일 답답했지?
파랑 : (그 소리에 눈을 뜨는) 배고파.
빨강 : (멍해지는데)
-초록, 노랑도 힘없이 일어나 앉는.
초록 : 저 아저씨 게임만 하고 집에만 있어.
노랑 : 잠도 자기 방에 들어가서 안 자.
주황 : 잠자면 배고픈 거 모른다니까, 빨랑들 자.
빨강 :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실 쪽을 보면서) 나쁜 자식.
80. 씬. 거실 (밤)
-빨강, 소파에서 잠든 태규를 발로 차는.
빨강 : 야, 야, 들어가서 자. 들어가서 자라구.
준하 : (화장실에서 나오는, 술기운이 완연한 느낌으로)
태규 : (벌떡 일어나 앉으며) 삼촌 이 여자가 나 발로 막 차.
빨강 : 정말 왜 그러세요? 제가 멀쩡한 정신으로 주인 집 식구분을 어떻게 발로 차겠어요?
준하 : 술 좀 작작 처먹어라. (귀찮은 표정으로 자기 방으로 가는)
태규 : 술은 작은 삼촌이 처먹은 거 같구만.
준하 : (돌아보는)
태규 : 굿나잇 삼촌.
81. 씬. 식당 (밤)
-빨강, 밥솥에서 밥을 한가득 푸는, 계란 후라이와 장조림 통조림을 열어 한꺼번에 넣고 비비는데.
강하, 물컵을 들고 들어오는.
빨강 : (놀라서) 아직 안 주무셨어요?
강하 : (빨강이 들고 있는 양푼을 보는)
빨강 : (호들갑스럽게) 오는 길에 쌀을 조금 사왔어요. 나중에 쌀값은 월급에 보태주셔도 되고,
뭐 얼마 안 되니까 떼어 잡수셔도 되구요.
강하 : 그걸 지금 먹으려는 겁니까?
빨강 : 아, 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오니까 속이 좀 출출해서요.
강하 : (냉장고에서 물 따르면서) 참 걸게 드시네요.
82. 씬. 지하방 (밤)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정신없이 양푼에 코 박고 밥을 열심히 먹어대는.
빨강 : (그런 동생들이 안쓰럽고) 저 또라이가 있는 한, 니들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황 : 하는 수 없지 뭐.
빨강 : 보내 버려야해, 어디로든. 저 또라이를.
83. 씬. 강하의 집 외경 (밤)
84. 씬. 거실 (밤)
-어둠.
85. 씬. 화장실 (밤)
-태규, 소변을 보느라 변기 앞에 서서.
태규 : 이젠 폭력까지 쓴다 그거지. 이젠 막가자는 건데. 그래 좋다, 이거야.
막가는 걸로 치면 나도 둘째가라면 서....서....울 간다 이거야.
86. 씬. 거실 (밤)
-태규, 화장실에서 무심하게 나오는데. 파랑, 맹한 표정으로 천천히 태규의 앞을 지나가는.
태규 : (놀라서, 눈이 커지고) 어....어.....
-갑자기 태규의 뒷머리로 날아드는 양푼. 푹 쓰러지는 태규.
-빨강, 맹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파랑을 낚아채서 지하방으로 뛰어가는.
87. 씬. 지하방 (밤)
-빨강, 파랑을 안고 들어와서 숨을 몰아쉬는. 주황, 놀라서 눈을 뜨고 일어나는.
주황 : 뭐, 뭐야? 이 자식 또 돌아다닌 거야.
빨강 : 한참 괜찮다 싶더니, 몽유병 다시 도진 거 같다.
주황 : 걸린 거 아니지?
빨강 : 파랑이 꼭 붙들고 있어. (얼른 일어나 급하게 나가는)
88. 씬. 거실 (밤)
-태규, 천천히 눈을 뜨는데, 옆으로 달려들며 무릎을 꿇고, 태규를 흔들며 소리를 치는.
빨강 : 어머, 왜 이러세요? 나와들 보세요, 조카분이 이상해요.
태규 : (일어나려고 하면)
빨강 : (팔꿈치로 눌러 못 일어나게 하면서) 왜 이러세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이봐요. 이봐요.
-강하, 2층에서 내려오고, 준하, 술 때문에 머리가 아파 머리를 누르며 방에서 나오는.
강하 : 무슨 일입니까?
빨강 :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조카분이 화장실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계셔서....
준하 : (진짜 귀찮고 짜증스럽다) 저 자식 진짜.
태규 : (머리를 감싸 쥐고 일어서며) 귀, 귀신이야, 꼬, 꼬마 귀신. 꼬마 귀신이 여기 막 돌아다니고.....
89. 씬. 욕실 (밤)
-강하, 태규에게 찬물을 뿌려대고 있는. 이젠 귀찮아서 말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물만 뿌려대는.
태규 : 진짜야, 삼촌, 요만한 꼬마 귀신 놈이 막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준하 : (욕실 앞에 기대서서) 그냥 입원 시키자, 형.
90. 씬. 지하방 (밤)
-빨강, 동생들 뺑 둘러 앉아 의미심장한 표정들로 마주보는.
빨강 : 방법을 찾은 거 같다. 쇠뿔도 단숨에 빼야하는 거야.
91. 씬. 태규의 방 (밤)
-캔 맥주, 세 개 정도가 뒹굴고 있고, 태규, 오들 오들 떨면서 맥주를 들이키며. 스탠드만 켜놓고.
태규 : 나 미친 거 아니야.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살다보면 헛 게 보일 수도 있는 거야. 그리니까 너무 떨지 말자. 태규야.
(그러다 눈물을 터트리면서) 엄마, 나 미친 거면 어떡해. 한국 가서 사람 되서 오라고 했는데. 나 미친 거면... 엄마.....앙.....
-쓰러져 잠이 든 태규. 뭔가 이상한 기척에 눈을 뜨는데. 문 앞에 서있는 하얀 물체.
처음엔 초점이 잡히지 않아서 흐릿하게 보이는데, 서서히 시선을 모으는데.
하얀 천을 뒤집어쓴 머리 푼 여자 아이가 입에 피를 흘리면서 서있다.
태규 : 이....이...젠 여자 애 귀신까지..... (픽하고 쓰러지는)
92. 씬. 지하방 (밤)
-빨강, 동생들 둘러앉아있고, 빨강, 노랑의 입에 피를 닦아주는.
빨강 : 수고했어.
노랑 : 이 케찹 어디 거야? 맛있다.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93. 씬. 지하방 (밤)
-빨강, 동생들 잠들어 있는.
빨강,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핸드폰 확인하면, 새벽 3시가 넘어있다.
빨강 : 아직 3시 밖에 안됐네. (동생들, 남이 이불 여며주고)
94. 씬. 식당 (밤)
-빨강, 들어와서 앉는.
빨강 : 내일 아침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을 해줘야지. 그래도 명색이 가정분데. (하면서 하품하는)
95. 씬. 강하의 집 전경
-여명.
96. 씬. 강하의 집 거실 (아침)
-준하 방에서 나와, 욕실 쪽으로 가려다 식당을 보고.
97. 씬. 식당 (아침)
-준하, 들어오면, 식탁에 엎뎌 잠이 들어있는 빨강.
준하 : 빨강씨?
빨강 : ....
준하 : (살짝 어깨를 건드리며) 빨강씨?
빨강 :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일어났어. 일어났어.
준하 : 여기서 잔 거예요?
빨강 : (둘러보고) 몇, 몇 시예요?
준하 : 7시 넘었어요.
빨강 : (울상이 되는) 어떡해, 어떡해, 오늘은 꼭 아침을 해드리려고....
준하 : 그래서 여기서 잔 거예요?
-강하, 식당으로 들어오며.
강하 : 욕실에 수건이 없는데....
준하 : (빨강을 돌아보고) 어, 그거. 세탁기가 고장이래. 아래층 욕실엔 수건 있을 거야. (강하의 등을 떠밀며 나가는)
빨강 : (미안하고)
98. 씬. 세탁실 (아침)
빨강 : (가스 밸브를 잠그면서) 이러면 안돼, 진빨강. 이러면 애들 들키기 전에 밥 한번 안 해주는 가정부라고 네가 먼저 쫓겨나.
99. 씬. 식당 (아침)
-빨강, 우유를 따르고 있는. 준하, 강하 앉아있고.
강하 : (빨강이 들고 있는 우유잔을 보는) 어제 쌀 사가지고 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빨강 : 그래서 밥을 하려고 했는데, 가스가 끊겼지 뭐예요? 가스비 안내셨나 봐요?
준하 : 태규 이 자식을 진짜.
빨강 : 조카분이 콘푸레이크 다 잡수신 거 같은데, 오늘 아침은 그냥 우유만 드셔야 할 거 같은데....
준하 : (돌아서며, 화가 나서) 우태규?
100. 씬. 거실 (아침)
-준하, 앞서 나오고, 강하, 나오는데, 빨강, 우유 두 잔 들고 따라 나오면서.
빨강 : 그래도 빈속에 어떻게 출근들을 하세요? 우유라도....
준하 우태규?
-방에서 정신줄 놓은 맹한 표정으로 추적추적 걸어 나오는 태규.
준하 : 너 가스비 같은 건 꼭 제 날짜에 내라고 했지? 너 정말 뭐하는 자식이야.
태규 : 삼촌.....나.... (울음 터트리며) 정신 병원 좀 알아봐줘.
101. 씬. 지하방 (아침)
-빨강, 출근복 차림으로 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주황 : 출근 시간 지났잖아?
빨강 : 저 또라이가 마당에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남이를 데리고 출근을 해?
주황 : 그냥 남이 두고 가. 우리가 알아서 해볼게. 정 안되면, 남이도 애기 귀신 만들지 뭐.
노랑 :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언니는 빨리 출근해.
102. 씬. 마당 (아침)
-빨강, 급하게 뛰어나오는데, 태규, 멍하니 나무 아래 앉아있는.
빨강 : (웬수하는 표정으로 흘기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태규 : 가정부씨?
빨강 : 나 출근 시간 늦었어, 너 상대할 시간 없다. (지나치려고하는데)
태규 : 빨강이 누나?
빨강 : (어라, 저게 웬일이래 싶은데)
태규 : (눈물을 뚝 흘리면서) 우리 삼촌들 잘 좀 부탁해. 나 없으면 밥도 못해먹는 사람들이니까.
빨강 : 네가 뭐 잘 해먹인 거 같지도 않은데.....
태규 : (더 큰 소리로 울면서) 그래서 지금 후회하고 있는 거야. 정신 멀쩡할 때 밥이라도 좀 잘 해먹일 걸 그랬다구.
빨강 :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하는 수 없이 옆에 쪼그리고 앉는)
태규 : 우리 엄마가 사람 되라고 한국 보냈는데.....정신 병원에 입원하면 우리 엄마 자살하실 지도 모르는데.....
워낙 물불 안 가리는 분이라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니까 사람 돼야 한다고 하셨는데....아, 엄마....
빨강 : 너무 집에서 게임만 하지 말고 바깥 생활을 좀 해봐. 그럼 상태가 호전 될지도 모르잖아?
태규 : (눈물을 흘리면서 멍하니 빨강을 바라보는) 그럴까?
빨강 : (끄덕이며) 내가 보기에 너 심각한 편은 아닌 거 같아.
태규 : 정말? 정말?
빨강 : 나 사람 보는 눈은 좀 있거든. 너 조금만 노력하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 거야.
태규 : 자기?
빨강 : (뭐야 이건)
태규 : 나.....자기 마음에 들려고 하는 거 있지. 어쩌면 자기가 내 운명의 상대일지도....
영화에서 보면 다 그렇잖아? 웬수처럼 싸우다가 막 정들고..... (빨강의 손 덥석 잡으며) 자기는 안 그래?
빨강 : (기겁을 해서 손 찰싹 때리며 뿌리치고) 너 술 말고 마약 같은 것도 하니?
103. 씬. 회사 로비 (아침)
-정신없이 뛰어가는 빨강. 엘리베이터 앞에 서는데. 문 열리고 내리는 카드사 직원.
빨강 : (아, 진짜 하는 심정으로 뒤돌아서 뛰려고 하는데)
직원 : 나 안 쫓아갈 건데.
빨강 : (돌아보는) 그러다 쫓아오려고 그러는 거죠?
직원 : 나 심장 나빠서 그 짓 더는 못해.
빨강 : 그런데 여긴 뭐하러?
직원 : (빨강 앞을 휘파람을 불며 지나치며) 그러게, 나는 여기 왜 왔을까나요?
빨강 : (저건 또 뭐지 하는)
104. 씬. 사무실 (아침)
-팀장, 앞에 서있는 빨강.
팀장 : 인생 정말 그렇게 대책 없이 살래?
빨강 : 네?
팀장 : 받아갈 월급도 없는데, 거기 차압까지 들어오게 해? 너 정말 왜 그 따위로 사니?
빨강 : 아.... (그거였구나)
팀장 : 아? 도 통하셨어요?
빨강 : 죄송합니다.
팀장 : 아버님이 의사셨다면서?
빨강 : (보면)
팀장 : 물려받은 것 있을 거 아냐? (서류 들고 지나치면서) 카드 빚부터 해결해. 그런 거 권고 사직감이라는 것도 모르니?
빨강 : ......
105. 씬. 지하방 (낮)
-남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주황, 거의 울 듯한 느낌으로.
주황 : 남아, 남아, 조금만, 응? 조금만....
파랑 : (조용한 소리로 이상한 노래 부르면서 남이 달래려고 하고)
-노랑, 초록, 문 앞에 서서 망을 보는.
노랑 : (돌아서며) 됐어, 됐어. 또라이 나갔어.
주황 : (남이 입에서 손떼고) 초록아, 빨랑 남이 우유 타.
초록 : 응. (얼른 분유통을 여는데) 오빠?
주황 : 왜?
초록 : 우유.....없어.
106. 씬. 회사 복도 (낮)
-빨강, 괴로운 심정으로 은말, 진주와 마주 서있는.
은말 : 참 그놈의 우라질 놈의 돈들은 다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야. 남이 우유는 사야하니까, 진주 너 카드 있지?
진주 : (울상이 되는)
은말 : 왜?
진주 : 카드 다 엄마가 잘라버렸어. 교통 카드만 빼고. 은말씨 계 타는 거 좀 당길 수 없어?
은말 : 그 곗돈 세계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한 게 아니거든.
진주 : 어떡하니? 빨강아?
빨강 : (뒤돌아서 뛰기 시작하는)
107. 씬. 만수네 슈퍼 앞 (낮)
-빨강, 멍한 눈으로 슈퍼를 바라보는. 문이 잠겨 있는.
힘없이 돌아서는 빨강. 만수 걸어오고.
빨강 : (반색하며) 만수야?
만수 : 어, 빨강이다.
빨강 : 만수야? 엄마, 아빠 어디 가셨어?
만수 : 목욕하러.
빨강 : 목욕하러? 그럼 금방 오시겠네.
만수 : 응. 목욕하면 오겠지, 때 다 밀면.
빨강 : 언제 가셨는데?
만수 : 아침 먹고.
빨강 : 그럼 오실 때 되셨겠네?
만수 : 응. 근데 온양이 어디야? 몇 정거장이야?
빨강 : (멍해지고) 온, 온양 가신 거야?
만수 : 응. 동네 사람들 다 갔어.
빨강 : 나 갈게, 만수야. (돌아서려는데)
만수 : 내가 돈 줄까?
빨강 : (화들짝)
만수 : 엄마가 짜장면 사먹고 있으라고 돈 줬어. 많이 줬어. (주머니 뒤지면서) 사먹고 남은 돈 있어, 그거 너 줄게.
느네 동생들 사탕 사다줘. 내가 줬다고 꼭 말해.
빨강 : (고마워서) 응. 응. 그럴게. 만수야.
만수 : (주머니에서 꼬깃한 천 2백원을 꺼내 빨강의 손에 꼭 쥐어주는)
빨강 : (멍한)
만수 : 근데. 느네 아빠, 엄마, 죽인 트럭 나 봤다, 진짜 봤다.
108. 씬. 강하집 식당 (낮)
-초록, 노랑, 우유를 우유병에 따르고 있는.
초록 : 생우유 먹이면 애기 배탈 난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노랑 : 그래도 남이 배고파서 막 울잖아. 그냥 먹여보자.
109. 씬. 지하방 (낮)
-초록, 남이에게 우유 먹이려고 하지만, 남이 도리질 치면서 막 우는.
파랑 : 남이 똑똑하다. 자기가 먹던 거 아닌 거 아나봐.
노랑 : 먹어, 남아, 이거 안 먹고 너 울기만 하면 큰일 나.
초록 : 이렇게 계속 울면 남이 기절하는 거 아닐까?
주황 : (입술을 깨무는. 그러다 벌떡 일어서서 뛰쳐나가고)
110. 씬. 대형 마트 (밤)
-주황. 망설이다가 품에 분유 한통을 집어넣고 마구 뛰는. 계산대 옆을 통과하는데, 이를 발견하는 직원.
주황, 정신없이 분유 껴안고 뛰는. 직원들 주황을 향해 달려오고.
죽어라 분유통을 안고 뛰다가 넘어지고. 분유통 놓치고, 다시 주우려 하지만, 직원들 달려오고.
하는 수 없이 도망치는 주황.
111. 씬. 강하의 집 식당 (밤)
-초록, 노랑, 냄비에 죽을 끓이고 있는. 파랑, 남이를 업고 서서 왔다 갔다 하는, 연신 울어대는 남이.
파랑 : 빨랑 좀 해봐.
노랑 : 이상하다. 왜 죽이 안 되지.
초록 : 자꾸 타기만 하잖아.
파랑 : 빨랑 좀 해. 남이 이러다 죽겠다.
112. 씬. 진주의 집 근처 (밤)
-진주, 분유 두 통 사서 들고 서있는, 뛰어오는 빨강.
진주 : 빨리 좀 오지.
빨강 : 어떻게 한 거야?
진주 : 뭘 어떻게 해. 언니 지갑에서 훔쳤어. 우리 엄만 내가 훔쳐갈까 봐 지갑도 감춰준다는 거 아니니.
그래도 이혼한다고 와 있는 언니 덕 좀 본다. 어서 가져가서 남이 먹여.
빨강 : (와락 진주 끌어안는) 우리 진주, 내 마음 알지?
진주 : 빨리 가. 빨리.
빨강 : 응. (울먹해서) 내가 남자면 우리 진주랑 진짜 결혼한다.
진주 : 악담 하지 말고 그냥 좀 가라.
빨강 : (분유통 들고 뛰는)
113. 씬. 동네 슈퍼 앞 (밤)
-슈퍼를 노려보고 있는 주황.
114. 씬. 동네 슈퍼 안 (밤)
-주황, 분유 한통을 품에 숨겨서 걸어 나오는.
수퍼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들어오는 준하.
주인 : 어서 오세요?
준하 : 저희 집에 쌀 좀 배달해주세요.
-하는데 옆으로 지나치는 주황.
주인 : 야, 야, 너 뭐야?
주황 : (뛰는데)
주인 : 쟤 쟤 좀 잡아주세요.
준하 : (뛰어나가는 주황을 잡으려고 돌아서는)
115. 씬. 동네 슈퍼 앞 (밤)
-주황이 뛰는데. 준하 뛰어와서 주황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주황 : 놔요, 놔요.
-주인 따라 나와 주황을 잡고.
주인 : 어린놈의 새끼가....(주황의 몸을 뒤져. 분유를 찾아내고, 주황의 머리를 때리면서) 이 도둑놈의 새끼.
요즘은 왜 어린놈들이 다 이 모양인지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놈들이 드나들어서 정말 골치 아파 죽겠다니까요.
너, 집 어디야?
주황 : ....
주인 : 가자. 경찰서. (끌고 가려고 하는데)
빨강 : 주황아?
주황 : (울면서 빨강을 보는)
빨강 : 너....왜?
준하 : (빨강과 주황을 번갈아보며) 아는 아입니까?
빨강 : .....
주인 : 이 도둑놈의 새끼하고 어떻게 되요?
빨강 : 도둑놈이라고 하지 마세요.
주인 : 아니, 도둑놈을 도둑놈이라고 하는데....
준하 : 누굽니까? 이 아이?
빨강 : 제....동생이에요.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