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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⑮> 전통 차(茶) 上 물과 불의 연금술사만이 불러낼 수 있는 茶의 神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중앙Sunday |제375호| 2014년 5월 18일
인류문명사 5000년 동안 가장 사랑받아 온 음료는 술과 차다. 술은 근심을 잊게 해 주는 망우군(忘憂君), 차는 번뇌를 씻어 주는 척번자(滌煩子)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늘 번다하고 피로하다. 답답한 일도 많다. 맑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의 여유가 그립다. 한국인에게 전통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품격 높은 정신수양의 매개체였고 인문교양의 결정체였다. 역사 속 많은 문인과 선객들은 차를 통해 교유했고 차를 우려내 마시면서 ‘깊은 마음의 생태학’을 실천했다.
“나그네는 요즘 차를 탐내어 도철(饕餮:흉포한 상상의 동물)처럼 되었소. …듣건대 고해(苦海)를 건너가는 비결은 차 보시를 가장 중하게 치고, 명산의 진액은 상서로운 약초의 으뜸인 차만 한 게 없다고 들었소. 애타게 바라노니 아낌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오.”-다산(茶山) 정약용의 을축년(1805) 겨울 ‘걸명소(乞茗疏)’
乞茗疏 乙丑冬(1805년) 贈兒菴禪師 - 茶山 丁若鏞
旅人近作茶饕 書中妙辟 全通陸羽之三篇 兼充藥餌 病裡雄蠶 遂竭盧仝之七椀 雖浸精瘠氣 不忘棊毋㷡之言 而消壅破瘢 終有李贊皇之癖 洎乎朝華始起 浮雲皛皛 於晴天 午睡初醒 明月離離 乎碧澗 細珠飛雪山燈 瓢紫筍之香 活火新泉野席 薦白包之味 花瓷紅玉繁華 雖遜於潞公 石鼎靑煙澹素 庶乏於韓子 蟹眼魚眼 昔人之玩好徒深 龍團鳳餠內府之 珍頒已罄 玆有采薪之疾 聊伸乞茗之情 竊聞苦海津梁 最重檀那之施 名山膏液 潛輸瑞草之魁 宜念渴希 毋慳波惠.
나그네는 근래 차 버러지가 되어 버렸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차가운데 묘한 법은 육우의 3편 다경이 통달케 하였으니 병든 큰 누에는 마침내, 노동(盧同)도 남긴 일곱째 잔을 마르게 하였소.정력이 쇠퇴했다 하나 기모경의 말은 잊지 않았고 막힘을 풀고 흉터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찬황의 차마시는 버릇을 얻었소. 아아, 윤택할진저 아침에 달이는 차는 흰 구름이 맑은 하늘에 떠 있는듯 하고, 낮잠에서 깨어나 달이는 차는 밝은 달이 푸른 물 위에 잔잔히 부서지는 듯 하오. 다연(차맷돌)에 차 갈 때면 잔구슬처럼 휘날리는 옥가루들 산골의 등잔불로서는 좋은 것 가리기 아득해도 자주빛 어린 차순 향내 그윽하고, 불 일어 새 샘물 길어다 들에서 달이는 차의 맛은 신령께 바치는 백포의 맛과 같소. 꽃청자 홍옥다완을 쓰던 노공(盧公)의 호사스러움 따를 길 없고 돌솥 푸른 연기의 검소함은 한비자에 미치지 못하나 물 끓이는 흥취를 게눈 고기눈에 비기던 옛 선비들의 취미만 부질없이 즐기는 사이, 용단봉병 등 왕실에서 보내주신 진귀한 차는 바닥이 났소. 이에 나물 캐기와 땔감을 조차할 수 없게 마음이 병드니 부끄러움 무릅쓰고 차 보내 주시는 정다움 비는 바이요. 듣건데 죽은 뒤, 고해의 다리 건너는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 줌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말고 베품 주소서.
“나는 대사(大師)는 보고 싶지도 않고 대사의 편지 또한 보고 싶지가 않소. 다만 차와의 인연만은 차마 끊어 없애지 못하고 능히 깨뜨릴 수가 없구려. 이번에 또 차를 재촉하니 보낼 때 편지도 필요 없고, 단지 두 해 동안 쌓인 (차)빚을 한꺼번에 보내어 갚되 또다시 지체하거나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마조(馬祖) 스님의 꾸지람과 덕산(德山) 스님의 몽둥이질을 받게 될 터이니, 수백천 겁이 지나도 피해 달아날 도리가 없을 거요.”-추사 김정희의 차 구걸 편지 ‘여초의(與草衣)’ 34
吾則不欲見師, 亦不欲見師書, 唯於茶緣, 不忍斷除, 不能破壞, 又此促茶進不必書, 只以兩年積逋竝輸, 無更遲悟可也, 不然馬祖喝, 德山棒, 尙可承當, 此一喝, 此一棒, 數百千劫, 無以避躱耳, 都留不式
앞글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다산 정약용이 혜장 스님에게 애타게 차를 구걸하는 편지다. 사사로운 편지 글에 임금께 올리는 상소문 형식을 취했다. 답답한 유배지에서 차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웃음 짓게 한다.
뒷글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차를 구걸하는 편지다. 19세기 한국 최고의 인문교양인이 차 박사로 통하던 초의선사를 숫제 공갈 협박하고 있다. 물론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한 장난기의 발로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자신이 직접 제다한 녹차를 우려내 찻잔에 따르고 있다. 박 소장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의 차 계보를 5대째 잇고 있다. 조용철 기자
차가 뭐길래 당대의 거유들이 그토록 애걸복걸하며 생떼를 썼던 걸까. 곡우(穀雨)가 지나고 입하(立夏)를 며칠 앞둔 즈음, 취재팀은 남녘의 야생 차밭을 찾았다. 경남 하동 지리산 남쪽 기슭, 수정같이 맑은 화개천이 흐르는 화개면 운수리 일대는 호리병 속 별유천지다. 꽃피는 신선골 화개동천(花開洞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했던 시배지다. 화개천이 풀어져 섬진강과 맞닿는 데까지 좌우 산기슭에 500여 ㏊ 야생 차밭이 펼쳐진다. 비 갠 뒤라 야생 차밭이 더욱 푸르다.
“서로 인접한 칠불사와 쌍계사 일원은 경치도 빼어나지만 차에 얽힌 역사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우선 이곳 쌍계사 소유의 야생 차밭은 828년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의 종자를 가지고 와 심었던 한국 차 시배지지요. 『삼국사기』(흥덕왕 3년條)에 나옵니다. 쌍계사에는 최치원 선생이 쓴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가 있습니다.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인데 최치원 선생은 진감선사의 질박한 성품과 높은 정신세계를 차 마시는 습관으로 잘 드러냅니다. ‘중국차를 바치는 사람이 있으면 가루로 만들지 않고 땔나무로 돌솥에 불을 때서 달여 마셨다. 나는 이것이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배를 채울 뿐이다’. 이 비문 내용으로 미뤄 보면 신라인들이 차를 가루로 만들어 마셨음을 알 수 있지요. 최치원 선생 또한 차를 즐겼던 걸로 보입니다.”
김동곤 쌍계제다 대표는 향토사에 밝은 다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차 명인이기도 한 그는 『왕의 차』를 비롯한 몇 권의 저서를 냈다. 취재팀을 쌍계사 경내로 이끈 김 명인은 진감선사비와 꽃담, 찻물로 써 온 음양수(陰陽水)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칠불사에서는 아자방(亞字房)과 초의선사의 차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곳 하동의 다인들은 이웃한 전남 구례 다인들과 차 시배지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하동에 시배지 기념비가 서자, 화엄사 장죽전이 진짜 시배지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차의 종자를 심은 곳이 지리산이라고만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은 양쪽 모두를 인정, 현재 두 곳에 시배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근대의 역사학자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가 있다. 세상에서는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라고 전한다”고 썼다. 그 기록을 인정한다면 차 시배지가 또 달라지는 셈이다. 차를 통해 드높은 정신적 교감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다인들이 지역 간에 차 시배지 논란을 빚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지리산 남녘 일대로 여기면 그만이다.
차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780년 당(唐)의 문인 육우(陸羽)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인 『다경(茶經)』을 집필한 이후 ‘차’라는 용어가 비로소 생겨났다고 한다. 그전에는 차라는 글자가 없어 도(荼·씀바귀)로 불렸다는 것. 육우는 나 여(余) 자 부분의 한 획을 빼고 차(茶)로 명명했다. 茶를 파자(破字)하면 두 개의 열십(十)에 팔십팔(八十八)이 되니 합하면 108. 중국인들은 차를 즐기면 108세까지 장수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라는 글자를 환(丸)이나 고약처럼 인식하여 한 가지만 넣고 달이는 약물은 모두 차라고 말한다. 생강차·굴피차·모과차·상지차…. 이는 그릇된 것이다. 중국에는 이런 법이 없는 것 같다.”-다산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
보리차도 차라고 여기는 한국인의 대용차 개념을 다산은 분명히 바로잡고 있다. 차는 차나무(학명 Camellia sinensis)의 어린 순이나 잎으로 만든 마실거리다. 차나무는 동백나뭇과에 속하며 늘 푸른 활엽수다. 찻잎에 들어 있는 카테킨(Catechin·폴리페놀) 성분이 산소와 결합. 산화된 정도에 따라 녹차·백차·청차·황차·홍차·흑차로 나뉜다. 형태에 따라 흩어진 잎차와 뭉친 떡차로 나누기도 한다.
한국인은 고려 때까지도 차를 즐겼다. 하지만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의 차 문화는 쇠퇴하고 만다. 『다부(茶賦)』를 지은 한재 이목(寒齋 李穆, 1471∼1498)처럼 차를 즐긴 선비가 있긴 했지만 주로 연행길에서 가져온 중국차를 얻어 마시는 정도였다.
취재팀은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덖어 만드는 체험을 하기로 했다. 전남 순천 주암호를 끼고 모후산 동쪽 자락으로 향했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산이 깊어 대광천에 다다르자 내비게이션도 휴대전화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초의선사의 차 계보를 5대째 잇고 있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의 차밭은 심산유곡에 있다. 듬성듬성한 대나무 그늘 아래로 차나무들이 보인다. 차는 돌밭이나 대밭에서 난 것을 상품으로 치는데, 대밭차를 죽로차(竹露茶)라 한다. 해차를 채취하는 4월 말과 5월 초에 보름가량 머문다는 산막에서 원시의 밤을 보냈다. TV도 인터넷도 없는 절집 같은 산막이었다.
◀김동곤 쌍계제다 대표가 우리나라에서 차를 처음 심었다는 경남 하동 화개동천 시배지에서 차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차 명인이다.
이른 새벽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신다. 뜰 앞 영산홍은 불이 붙었고 벽오동나무에는 연보랏빛 꽃이 피었다. 마을에서 올라온 아낙네들이 찻잎을 따러 산을 탄다. 동트기 전에 채취하는 게 좋다지만 야생 차밭에서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취재팀도 대숲으로 가서 손톱으로 여린 찻잎을 딴다. 새순이 올라와 그 옆으로 잎 하나가 펼쳐진 것을 일기일창(一旗一槍), 두 잎이면 일기이창이라고 한다. 그렇게 두 유형만을 골라 딴다. 곡우 전에 참새의 혀 같은 한 가닥 새순만을 따서 만든 차는 ‘세작(細雀)’이다. 부드러운 향과 맛이 살아 있는 전통 우전차로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명차다. 이처럼 세작이나 일, 이기를 선호하는 건 차 고유의 정기 때문이다. 쇤 잎은 떫고 써서 채취하지 않는다.
산에서 따온 찻잎은 줄기를 골라 잘라내고 무쇠 솥으로 덖는다. “쇠 비린내가 없는 무쇠 솥으로 섭씨 300~350도에서 잽싸게 덖어내죠. 불의 장악이 요체예요. 불 때는 화부(火夫)와 호흡을 맞춰 가며 솜씨 좋게 덖어내야 명차가 됩니다. 이 초벌 덖음에서 차의 품질이 결정돼요. 아저씨, 불이 세요!”
부뚜막에 올라앉아 차를 덖던 박동춘 소장이 불 조절을 주문하자 불 지피던 아저씨가 대나무 한 가닥을 재에 묻어 끈다. 박 소장은 30년 이력의 솜씨로 대나무 솔을 능숙하게 젓는다. 덖음은 ‘살청(殺靑)’이라고도 한다. 은은한 향기가 피어날 즈음 날렵하게 찻잎을 감쳐 담아낸다. 이때를 놓치면 불에 항복한 것이 되고 미리 담아내면 설익게 된다.
불에도 문무(文武)가 있다. 여린 불은 문화(文火), 드센 불은 무화(武火)다. 불 기운을 잘 다뤄야 명차가 나온다. 차를 덖는 박 소장은 당당한 여전사의 풍모다. 수제차(手製茶) 명인이야말로 연금술사다. 전다박사(煎茶博士)라고 칭송받던 초의선사도 매번 차를 덖을 때마다 불 기운이 지나쳤던 모양이다. 차 품평에 일가견이 있던 추사로부터 ‘불 조절을 잘하라’는 지적을 받곤 했다.
덖어낸 찻잎은 손으로 박박 비빈다. ‘유념(柔捻)’ 과정인데 차에 담긴 성분을 잘 추출하고자 세포벽을 뭉그러뜨리는 것이다. 대자리에 널어 창호지로 덮어 뒀다가 다른 가마솥에 재차 덖는다. 건조(乾燥) 과정으로 초벌 덖음 때보다 길게 진행되는데 이때 다향이 수시로 변하는 신비를 경험한다.
두 번째로 덖어낸 차는 뜨겁게 덥힌 구들방에서 말린다. 방 안은 난초 향기 못지않은 고혹적인 향기의 숲이 된다. 다인들을 매료시키는 해차가 그렇게 탄생한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해차를 우려내 마시며 담박소쇄(澹泊瀟灑), 그 맑음을 지향해 온 한국인의 혼을 생각한다. 내년 이맘때면 다시 이 산막에서 보름간의 정갈한 제다의식이 펼쳐질 터, 그것은 긴 기다림의 제의(祭儀)다.
일찍이 초의선사는 칠불암에 머물면서 차의 신에 대한 전기 『다신전(茶神傳)』을 편찬했다. 명나라 장원이 쓴 『다록(茶錄)』을 베낀 것이지만 특유의 향과 맛, 약성까지 지닌 차에 인격신의 지위를 부여한 초의는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다.
“차는 물의 신(神)이고 물은 차의 체(體)다. 좋은 물이 아니고는 그 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정제된 차가 아니면 그 체를 엿보지 못한다.”
초의는 이 다신과 만나는 과정과 절차를 다도(茶道)로 보았다. 다신은 불을 잘 다스려 갈무리해 둔 차 속에 깃들어 있고, 그 차를 뜨거운 물로 우려내면 비로소 나타난다. 차는 정신이고 물은 육체인 것. 건강한 육체와 정신의 조화는 어느 때나 미덕으로 통한다. 그래서 차를 만들고 우려낼 때 중정(中正)의 도를 말해 왔다.
한 잔의 차에는 이렇듯 오랜 기다림과 정결한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인들은 지금, ‘커피공화국’에서 인스턴트 음료에 빠져 있다. <下에 계속> 동행취재=한경환 기자, 김석근 아산정책연구원 인문연구센터장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⑮> 전통 차(茶) 下 옛말 된 다반사 … 차 도입 가장 빨랐지만 차문화 급속 위축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중앙Sunday|제376호| 2014년 5월 25일
▲서울 인사동길에 위치한 현대식 전통찻집 ‘오설록’에서 손님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매장 1층에는 즉석에서 덖은 차를 시음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조용철 기자
다반사(茶飯事).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처럼 예사로 있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 일상생활에서 차가 널리 애용됐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중국 원산지의 차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받아들였다. 신라와 고려 때는 차 문화가 융성했다. 고려청자에는 미학적으로 빼어난 차 주전자와 찻그릇, 찻잔이 많다.
명절날이나 조상의 생일날 낮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차례상에 차를 올렸음은 물론이다.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보다 무려 340년이나 먼저 나온 차 예찬서 『다부(茶賦)』의 저자 한재 이목(寒齋 李穆·1471∼1498) 선생은 일찍이 차에 매료된 茶人이다. 그는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에 관한 참고서 『사례편람(四禮便覽)』을 편술했는데 ‘제례편(祭禮編)’ 기제홀기(忌祭笏記)에 철갱봉다(撤羹奉茶:국을 물리고 차를 올림) 의식을 기록했다. 홀기란 대중의 집회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둔 기록물이다.
“우리 이씨 종중에서는 그 기제홀기에 근거해 제사상에 차를 올립니다. 한재 선조께서는 생전에 차를 즐겨 드시며 일곱 가지의 효능을 일렀지요. 한 잔을 마시니 메마른 창자가 눈 녹인 물로 씻어낸 듯하고, 두 잔을 마시니 마음과 혼이 신선이 된 듯하고, 석 잔을 마시니 두통이 없어지며 호연지기가 생겨나고, 넉 잔을 마시니 기운이 생기며 근심과 울분이 없어지고, 다섯 잔을 마시니 색마가 도망가고 탐욕이 사라지며, 여섯 잔을 마시니 세상의 모든 것이 거적때기에 불과해 하늘나라에 오르는 듯하고, 일곱 잔은 절반도 마시기 전에 맑은 바람이 옷깃에 일어난다고요. 생전처럼 감흥하시라고 지금도 제사 때마다 일곱 주발의 차를 올려오고 있습니다.”
대전에 사는 이세병 종중회장이 확인해주었다. 이제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차를 올리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다반사라는 말은 여전히 쓰이지만 밥 먹고 마시던 차는 커피로 대체됐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당 연평균 2.17㎏의 커피를 마셨다. 일본(3.29㎏)보다는 적지만 대만(1.03㎏), 중국(0.01㎏)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4조1300억원으로 2200억원가량 되는 전통차시장의 20배에 달한다. 세계 커피시장은 약 83조원, 차시장은 95조원가량이다. 한국은 세계 커피시장의 5%, 차시장의 0.2%를 차지한다. 국내 차 소비량은 중국과 인도·일본·미국은 물론 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훨씬 적어 50위권 밖이다. 국내 차 생산량은 2000t으로 중국(162만t)이나 인도(99만t), 케냐(38만t)는 물론 일본(7만8000t)에 크게 못 미치는 형편이다. 생산량이야 기후조건에 좌우된다지만 소비량은 다르다.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수기치인(修己治人)이나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과 결부해 마셔온 유교와 불교문화 전통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국차인연합회에서는 국내 차인이 5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하지만 통계로 보면 한국인은 거의 차를 마시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스무 배 이상 즐겨 마시거나 대용차를 약간 마시는 정도다.
“녹차는 커피에 비해 카페인도 적고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세계 10대 건강식품이라고 하죠. 하루 10잔 이상 마시면 위암 20%, 간암 45%, 폐암 54%의 억제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아도 차라는 건 기호식품인데 맛이 없으면 안 마시게 돼 있어요. 오랜 차의 역사와 문화에 비해 훨씬 후발주자인 커피는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요즘 녹차라테나 녹차프라푸치노, 블렌딩 차가 젊은 층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차 업계가 영세하니까 서로 힘을 모아 연구개발과 다큐멘터리 제작, 이미지 광고를 적극적으로 해서 커피시장의 절반만이라도 차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태 티젠 대표의 바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한다. 차인들과 업계의 이해와 주장이 서로 달라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차의 대중화는 산업화와 직결된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2003년 작고) 회장은 차 문화가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1979년부터 ‘아름다운 집념’으로 통하는 녹차사업을 시작한다. 적자를 감수하고 고집해온 녹차사업은 이제 ‘오설록’이라는 고유 브랜드로 성장했다. 전국 백화점 매장 41개, 인사동과 압구정동 등에 있는 티 하우스 12개가 커피전문점 천하에서 전통차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차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 건 ‘선의의 경쟁자’가 없어서입니다. 돈이 안 되니까 기업은 하려 들지 않죠. 오설록 하나뿐인 셈이고 영세농이 대부분입니다. 오설록은 티백 현미녹차보다 격을 높여 잎차 중심의 블렌딩과 프리미엄사업에 중점을 둬요. 서성환 선대 회장의 창업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거죠. ‘일로향’ 같은 고급 수제차는 연간 3000통만 만들고 나머지는 기계차지만 블렌딩에 집중해요. ‘삼다연’이라는 상품은 인기가 좋은데 잎차에 고추균을 넣고 삼나무 통에서 100일간 발효시켜요. ‘제주 영귤’도 블렌딩 차죠. 오설록은 드디어 올해를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로 흑자전환하며 밝은 전망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회계매출은 공시기준 600억원이고 올해는 20억원 정도 이익이 날 것 같습니다. 우리로서는 매우 반갑고 고마운 희소식입니다.”
▲오설록 박순용 상무 오설록사업부 박순용 상무는 국내 최초로 제주도 차박물관에 덖음솥을 설치, 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차 덖는 걸 현장에서 고객이 직접 보고 그윽한 차향을 음미하도록 한 것이죠. 1년에 120만 명이 제주도 차 박물관을 찾는데 그중 100만 명은 덖음 차를 마시고 가요. 평소 종이컵에 현미녹차 마시던 고객들이 덖음솥 현장을 체험하고 잎차에 빠져듭니다. 인사동 오설록 티 하우스에도 덖음솥이 있어요. 고객의 40%가 외국인이죠. 외국인들이 브랜드를 가져가고 싶어 하고 국내외 프랜차이즈 요청도 많죠. 우리 차의 대중화를 프랜차이즈 커피숍처럼 해서는 세계 차 문화를 선도할 수 없다고 보고 신중합니다.”
차인들은 인문정신과 고품격 문화를 말하지만 지금 우리는 녹차와 너무 멀어졌다. 절집 스님들은 차를 많이 마신다고 믿지만 사실은 유럽의 목사나 신부들보다 적게 마신다. 유럽 목사신부들은 홍차 매니어다. 홍차의 종주국 역시 중국이다.
바리스타학과 40여 개 대학, 커피 교육기관 500여 개,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 17만 명. 중국에서 차를 제일 먼저 받아들인 이 ‘신생 커피 공화국’에 차학과가 있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 차시장이 성장해야 차 교육기관도 성장한다.
“올해 설부터 차례상에 술 대신 차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제사 때도 차를 올릴 겁니다. 차인들에게 간절히 권하고 싶어요. 돌아가신 조상의 간(肝)을 생각해서라도(웃음) 술 대신 차를 올렸으면 좋겠어요.” 방송인 이계진씨가 오늘에 되살려낸 ‘차례’가 한국 차 문화 르네상스의 예고편이었으면 한다.
*취재지원=임보미 아산정책연구원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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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기름지고기름에 튀기고 뽂은음식 먹으면서도 비교적 건강한 이유도 있습디다. 차를 물보다 더 마시더군요 시간되면 위에 잠깐 언급된 抹茶 한잔 합시다!
말차(抹茶)~~~~
아직 맛보지 못한 茶...
기대됩니다! ^^
주로 다례에 사용되는 말차는 맷돌을 사용하여 분쇄한 거품이 많이 나는 것이 선호되고 있다. 또한 분쇄되는 찻잎의 입자 크기도 품질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800메쉬 이하의 작은 입자로 분쇄된 것일수록 색택이 밝은 느낌을 주게 되고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고급 아이스크림이나 케익일수록 가는 입자의 말차가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