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의 가을 김병락 가을 낙엽 철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가로수 거리를 거닐며 생의 의미를 반추해 보기도 하지만, 환경미화원의 가을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종일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쓸어 모아도 돌아서면 또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화단 경계석에 접치고 앉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누런 이파리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깊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며 ‘이렇게 올 한해도 다 지나 가는구나’ 하고 상념에 빠진다. 푸른 플라타너스 가지엔 아직도 많은 이파리가 추풍에 넘실댄다.
감시가 엄격해서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면 문책을 받는다. 요즘은 담당구역이 조금만 지저분하거나 주민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면 당장 인터넷이나 전화로 민원신고가 들어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더욱 난감하다. 강씨는 오늘 아침에도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어젯밤 자식의 혼사 문제로 가족과 상의를 하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잠은 일찍 깨어진다. 책임 구역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기가 하지 않으면 해줄 사람도 없는 일.
그는 비록 힘이 들지만 자기가 고생함으로 인해 출근하는 사람들의 하루가 행복해지고 쾌적한 도시가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한때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환경미화원, 악취가 난다고 공공장소나 식당에는 아예 가지도 못한 적이 있었다. 더러운 곳, 남들이 찡그리며 피해 버리는 곳을 헤집고 다니는 어두운 삶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시민의 청결의식도 많이 바뀌었고 도심지가 한결 깨끗해져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흡족해한다. 급여나 복지도 일반 공무원 수준과 대등해져 근무여건이 많이 개선되었다. 동시에 많은 책임과 의무도 뒤따른다.
사실 일이 힘들 때가 많다. 지금처럼 낙엽이 많이 떨어지는 계절에는 쓰레기양도 배가 넘는다. 그럴 때는 가족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한다. 몇 시간만 그냥 내버려두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특히 눈비가 오는 날은 시야가 흐려 작업 중 애로가 한둘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음주 운전자들에 의해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몸도 하루가 다르게 자꾸 쇠약해져 간다. 젊을 때 일 욕심을 많이 내거나 먼지를 많이 마시다 보니 술로써 그것을 해결하려 한 탓이다. 휴짓조각 하나, 낙엽 한 잎 없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 세월이다.
강씨는 합천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돈도 농토도 없었다. 남의 집 품을 해서 여덟 명의 가족이 겨우 끼니만 잇는 힘든 생활을 스무 살이 다 되도록 했었다. 호구지책이 우선인지라 배움은 초등학교 졸업이 고작, 배움에 관하여는 아직도 시퍼런 한이 이슬처럼 맺혀있다. 무작정 도시라고 와서 골목 청소 일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건만, 늘어난 것이라고는 이마에 주름살과 속병 뿐이다. 절대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려 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고생을 해왔다. 집도 마련하고 남에게 뒤쳐지지 않을 만큼 자녀 교육도 시켜, 이제는 큰딸의 혼사 문제만 남겨 놓았다.
무엇보다도 우뚝한 보람이 하나 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사랑회’ 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풀어보겠다고 자체 결론을 얻어 시작한 사업이다. 환경미화원들이 막걸릿값 등을 아껴 푼푼이 모은 것이 일천만원을 넘어섰다. 지금도 조합원 사무실에 가면 커다란 동전 저금통이 장승처럼 입구에 버티고 서 있다. 물론 강씨가 선두가 되었다. 그 향기로운 사업은 지금도 이어지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매년 저 소득자들에게 성금과 위문품을 전달해 왔다. 한때 언론에 보도되자 유명세 때문에 밖을 나서기가 귀찮을 정도였다고 너스레를 떤다.
산골 촌놈이 꿈에도 그리던 출세, 갈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직접 생방송에 출연하는 영예를 안았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그날 정말 난리가 났다. 고향은 고향대로, 직장은 직장대로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귀감의 화제가 끊이질 않았다. 가장 밑바닥의 직업으로 인식되어온 환경미화원, 감히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솔선수범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지긋지긋한 가난을 팽개치고 큰일을 해냈다는 것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나, 그리고 환경미화원의 쾌거였다. 아니 못 가진 자 전체의 승리이기도 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하지만, 이 어쩌란 말인가. 유수 같은 세월은 속일 수 없는 일인 것을. 주변에 동료가 하나 둘 쓰러져 가고 있다.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덜컥 걱정이 앞선다. 젊은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나마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잊어버리자. 인생이란 ‘공수래 공수거’ 인 것을. 일을 끝내고 선술집에 앉아 대포 잔을 기울일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모여든다. 형님· 아우하며 술잔이 바쁘게 돌아간다. 시골아저씨 같은 넉넉함과 풋풋한 정은 정말 보기 드문 인간미다. 그 털털한 웃음꽃이 가게 문을 빠져나와 가을 밤하늘에 퍼져간다.
그도 인간이다. 집에 가면 처자식과 노모, 아픈 몸에 진료비 걱정 등 수심이 그득하다. 남들도 어렵다니 그냥 참고 사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하다. 누가 단풍놀이 이야기를 꺼내다가 면박을 받고 만다. “우리한테 무슨 가을이 있노, 내년에 벚꽃놀이나 가자.” 그들은 이 가을이 후다닥 태풍처럼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이 무언지 아는 따뜻한 사람들. 때 묻지 않은 심성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이 아니던가. 지나온 삶이 그리 허무하지는 않았을 성 싶다. 깊어져 가는 가을, 그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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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곁에는
강씨가 많고 그들의 힘으로
우리가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