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 Corners 지역에서의 세번째 날 여행은 또다른 캐년인 브라이스(Bryce)와 자이언(Zion)으로 이어졌다. 커냅(Kanab)이라는 작은 타운에서 새벽같이 출발한 덕분에 우리가 브라이스 캐년에 도착한 때는 아침해가 계곡 아래의 무수한 돌탑 가득 퍼지고 있었다. 수천 수만 개의 후두(hoodoo)라고 부르는 암주(岩柱)들이 아침 햇살에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그랜드 캐년의 붉은 퇴적 사암이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여지기 시작한 것이 불과 5~6백년 전이라면, 브라이스 캐년의 거대한 호수였던 바닥이 붉은 퇴적 석회암이 되어 융기된 후 바람과 서리에 의해서 깎여나간 바위의 나이는 약 5억 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으로부터 이어지는 거대한 계단(Grand Staircase)의 맨 위쪽 계단에 자리해 분홍빛 절벽으로 휘감겨 있는 브라이스 캐년의 풍경이 숨을 멋게 할만큼 아름답고 신비스럽다.지상으로 드러난 층층의 무수한 돌탑 후두들의 무리가 모두 기묘한데다가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끝도없이 이어져 있다. 브라이스 캐년을 "바위 안의 시(Poetry in Stone)"라고 안내하는 팜플렛 서사의 타이틀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해가 뜨면서부터 끊이없이 변화되는 다채로운 캐년의 색깔과 모습은 밤이되면 그곳이 지니는 '고질의 어둠(high-quality darkness)' 덕분에 은하수의 별들이 마치 무지개마냥 찬란히 빛난다고 한다.
발치 아래로부터 멀리 펼쳐진 장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우리가 향한 곳은 자이언 캐년(Zion Canyon).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의 서쪽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콜로라도 강의 북서쪽 지류인 버진 강(Virgin River)이 사암과 석회암의 거대한 바위채들 사이를 흘러내리며 북에서 남으로 길게 계곡을 만드는 곳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구간은 캐년의 동남쪽으로부터 접근해서 그랜드 캐년 쪽으로 이어지는 서남녘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강물이 만들어주는 계곡의 녹색 푸르름과 아름다움이 마치 천상의 세계, 유대인들이 '약속된 땅(Promised Land)'이라고 부르는 시온(Zion)과도 같은 곳이다. 자이언 캐년은 모하비사막의 위쪽을 북에서 남으로 가르며 사막의 도시 라스베가스(Las Vegas)의 젖줄인 미드 호수(Mead Lake)에 이르고 이곳에서 콜로라도 강과 합류한다. 요세미트 공원에서 보았던 화강암 바위 못지않은 거대한 바위채들이 그리 크고도 많을 수가 없다. 바위의 터널 사이사이로 내다뵈는 바위산의 위용이 놀랍다.
아리조나와 유타 주에 걸쳐있는 이들 캐년을 섭렵하고는 모하비 사막을 동북 지역으로부터 서남쪽으로 3시간쯤을 달려 늦은 오후 시간이 되면서 라스베가스로 접어들었다. 사막의 한중간에 건설된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라스베가스(Las Vegas). 스폐인 사람들이 '초원(Meadows)'이라는 뜻의 Vegas라고 부르던 곳 라스베가스는 모하비사막의 한가운데 풀이 무성하고 오아시스가 있던 곳으로 서부로 향하는 한 길목에 있던 곳이다. 지쳐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을 축이며 잠시나마 쉬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라스베가스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서부 개척 시대가 끝나고 미국의 근현대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20세기 초 1903년의 일이다. 소규모 도시 개발로 시작된 라스베가스는 1930년대에 들어 그 전기를 맞이했다. 도박산업을 공식화하고 이혼이 용이한 도시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라스베가스는 1931년 대공황 극복을 위해 추진한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착수된 인근 콜로라도 강 협곡의 후버 댐(Hoover Dam) 건설과 함께 그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이 댐의 건설로 대량의 물 공급이 가능해졌고 새로운 도시 라스베가스로 사람들은 새로운 즐길거리를 찾아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라스베가스는 세계의 엔터테인먼트 수도라고 불릴만큼 현대적인 연예와 오락의 첨단 도시로서 그 명성을 쌓아나왔다. 미국 서부의 끝단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에서 발길을 멈추었던 개척자들은 그들이 언뜻 지나쳐갔던 모하비 사막의 한중간으로 유턴하여 그 정신을 새롭게 발휘하였다.
신기루와도 같은 늦은 오후의 이내가 아득하게 낀 사막 안의 도시 라스베가스는 그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주 멀리 잿빛 산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워낙 평평하기 때문이다. 낮인데도 화려한 네온 간판이 매머드급 호텔의 건물에서 빛나고 있다. Flamingo라는 분홍빛 네온 간판이 빛을 발하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밤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라스베가스 구경에 나섰다. 이태리 베니스를 테마로 한 Venetian Las Vegas와 라스베가스대로의 천정 불빛 쇼, 그리고 벨라지오호텔 광장의 분수 야경, 세계 최대의 규모, 초호화라고 하는 호텔 미라주(Mirage)의 극장 공연 관람까지 구경은 한밤중이 되도록 이어졌다. 2006년부터 장기 공연 중인 '비틀즈 러브(Beatles Love)'라는 타이틀의 공연은 비틀즈의 음악과 이야기를 소재로 디지털 뮤직, 영상, 배우들의 노래, 춤과 곡예로 2시간 가까이 펼쳐졌다. 밤이 깊어진 휘황한 거리를 걸으며 맡을 수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합법화된 마리화나의 것이라는 말에 현기증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지만 도시의 밤공기는 상쾌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득한 도시의 분위기는 흥겹기만 했다.
다음날 10월 26일은 열흘 간의 미 서부여행 마지막 여정의 하루. 아침 일찍 라스베가스를 출발하여 300km쯤의 거리인 로스앤젤레스로 되돌아와서 또다른 현대 서부 개척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헐리우드(Hollywood) 일원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1848년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 지역을 챙긴 미국은 서부 개척 시대의 막을 내리며 로앤젤레스를 반듯한 개척의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가 서부 개척자들의 고장다운 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도시 북부의 헐리우드 지역이 로스앤젤레스와 통합되고 미국의 영화 산업이 이 지역으로 집중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10년 헐리우드가 로스앤젤레스로 통합되면서 우연의 일치와도 같이 미국의 주요 영화 산업체가 헐리우드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1880년대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세계와 미국의 영화 산업은 - 당시엔 무성 활동사진 영화부터 만들어졌지만 - 미국 동부의 뉴저지로부터 시작되어 플로리다의 잭슨빌 지역에서 발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풍토의 동부 지역에서는 영화의 촬영이 주민들의 불평과 반대로 여의치 않았다. 고심끝에 영화제작자들은 4계절 영화 로케가 가능하고 햇빛 등 영화 촬영을 위한 자연 여건이 좋은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선호하게 되었다. 개척 정신이 남아있는 이 지역의 진보적 풍토는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기 시작한 영화 산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미국의 영화 메카가 된 로스앤젤례스는 1960년대까지 세계 영화의 절반 이상을 만들었다. 동시 녹음의 천연색 영화가 촬영되면서 헐리우드의 영화 시장은 코미디, 드라마, 액션, 뮤지컬, 로맨스, 공포물, 과학공상물, 애니메이션 등 모든 쟝르의 영화를 창출하였다. 자유로운 사고와 개척의 정신이 영화 산업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4시간 여의 버스 여행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tsal Studio)를 찾았다. 유니버설 영화사의 촬영 스튜디오이자 영화 테마 파크인 곳이다.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와 쥬라식 월드(Jurassic Park) 등의 영화를 여기에서 만들었다. 유수 영화제작사의 하나인 유니버설 픽쳐스(Universal Pictures)는 영화 제작은 물론 로스앤젤레스를 위시하여 세계 여러 곳에 유니버설 테마 파크를 운영하여 재미를 보고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두 시간 여에 걸쳐 이루어진 영화 촬영 스튜디오 투어, 그리고 쥬라식 파크, 트랜스풔머, 해리 포터 따위의 다양한 영화 가상 공간 체험은 흥미진진했다.
유니버설 스트디오 다음의 장소는 보다 영화의 숨결이 가깝게 느껴지는 헐리우드 지역의 스튜디오죤( Studio Zone이라고 알려진 곳. 헐리우드 사인이 있는 언덕, 비버리힐즈(Beverly Hills)와 인접한 이 곳은 30마일죤(TMZ: Thirty Mile Zone)으로도 알려진 지역인데 유수의 여러 영화제작사와 그들의 스튜디오, 그리고 1929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 영화상(Academy Awards/Oscars)의 시상식이 열리는 헐리우드대로 중심의 돌비극장(Dolby Theatre)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극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레드카펫을 밟고 계단을 오르는 인기 영화배우들에게 쏟아지는 갈채와 환호가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헐리우드의 중심가 불버드 인도에서는 세계적인 유명 배우와 연예인들의 손이나 발 모양을 찍어놓은 프린팅도 볼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배우 이병헌, 안성기의 것도 있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Kimchi라는 이름의 한식당에서 무한 리필 불고기와 삽겹살 파티로 마무리가 되었다. 소주도 한잔 곁들일 수 있었다. 한국적 식문화가 이곳까지 전파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식당을 나서는 문밖 표지판에는 소프라노 조수미 등 여러 한인 음악인과 가수들의 공연 안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새삼 이곳이 세계 대중문화의 중짐 공연장이라는 실감이 들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저녁 불빛을 뒤로하며 하룻밤을 묵은 뒤 떠나야할 에어포트 호텔로 향했다. (2023.10.27)
첫댓글 미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는 땅이었는데, 이곳에서 우리 능력있는 신세대들이 많이 와서 역량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캐넌, 라스베가스,할리우드를 다시 잘 둘러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말로써 표현하기가 벅찬 웅장한 자연의 모습이 선히 떠오릅니다.
근데 그랜드캐년의 퇴적 사암이 콜로라도강에 의해 깎이기 시작한 역사가 아주 길지는 않군요.
라스베가스, 로스앤젤레스, 헐리우드 등 기억이 아슴하네요. 잘 봤습니다.
그랜드캐년의 나이는 5~6백만 년, 브라이스캐년은 5억 년이 넘는다는 비교적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얘기는 그랜드캐년오로부터 브라이스캐년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계단 이른바 Grand Staircase 아래에는 130마일의 거리에 이르는 마찬가지 525백만 년이 되는 바위가 깔려 있는데, 그랜드캐년의 경우 그곳 땅이 콜로라도 강에 의해 침식되기 시작한 것이 5~6백만 전의 일이고, 브라이스캐년에 지상부로 드러난 암주 hoodoo는 그 아래의 525백만 년이나 되는 오래된 기층 바위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브라이스캐년 팜플렛의 설명을 이해하였습니다. 오해할 수도 있는 글을 쓴 듯한데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순우 덕에 많은 곳을 보고 갑니다.
눈이 찢어질 정도로 캐넌은 바라볼 수록 신기한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눈 즐감. 감사. 라스베가스에서 몇 푼 땄다가 몽땅 날렸지요. 도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