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호르비랍 수도원.
9일 아침 예레반에서 약 30km 떨어진 호르비랍 수도원을 향해 길을 나선다. 이곳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 깊은 곳이다. 구약 성경에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가 끝난 후 표착했다는, 성산 아라랏산(해발 5,137m으로 현재 터키의 최고봉임)이 아라스 강을 경계로 한 터키 국경 너머로 바라다 보인다. 아담과 이브의 세 아들인 카인, 아벨, 셋 중 셋의 아들이 노아이고, 노아는 또한 셈(아시아인, 성직자를 상징), 함(아프리카, 농민), 야벳(유럽, 전사)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아르메니아는 노아의 정통 후손 셈이 세운 나라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유대인과 그 정통성을 다툴 만큼 신앙심이 돈독하다. 깊은 우물이란 뜻의 호르비랍은 4세기 성 그레고리오가 13년 동안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 위에 7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해 17세기에 완성되었다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성인 성 그레고리는 티라다테스 3세 왕에 의해 13년 간 전갈과 뱀이 우글거리는 이곳 지하 동굴에 갇혀 있었다. 그레고리의 아버지 아낙은 페르시아가 고용한 자객으로 아르메니아 왕을 죽인다. 그래서 어린 그레고리는 카파도키아에서 자라며 기독교 사제가 된다. 이후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아르메니아로 돌아와 기독교를 전파한다. 왕은 부왕을 죽인 죄와 이교를 전파한 죄를 물어 그를 동굴 감옥에 가둔다. 왕은 자신과의 결혼을 거부하는 33인의 수녀들을 죽이는 등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었다. 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망친 이가 니노 수녀였다는 말도 있다.
그레고리를 구해준 이는 왕의 여동생 호스로비둑트였다. 꿈에 그를 풀어주라는 계시를 받고 오빠에게 청하여 그를 석방시킨 것이다. 공주와 아쉬켄 왕비가 이미 기독교 신자였다는 설도 있다. 이후 그레고리는 왕의 병을 고쳐 주었고, 이를 계기로 왕은 세례를 받고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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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산은 본래 아르메니아 영토였다가 러시아 혁명 후 레닌과 터키의 케말 파샤 사이의 조약에 의해 터키에 귀속됨으로써,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비원이 서린 곳이다. 성산 백두산에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우리도 그들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눈다.
유구한 역사와 고유 문자를 지니고,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한편 비운의 슬픔을 겪어온 점에서 참으로 우리와 많은 것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