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박남희 반짝이다 요동치던 물 저쪽으로 너를 보낸 후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심연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너를 향한 부력은 이름을 얻지 못했다 강물 위에는 낙엽 한 장에 얹혀있는 가을과 검불의 문장이 전부다 암호같다 너는 늘 흐르는 물 저쪽에 있다 나를 건너야 너를 만날 수 있다 견우와 직녀 사이에 흐르는 은하는 그들에게 어떤 문장이었을까 마음으로 마주 보는 것들은 서로에게 아득한 저쪽이다 저쪽과 이쪽 사이에는 어김없이 침묵의 강이 흐른다 어떤 날은 환영처럼 눈앞에 무지개다리만 놓였다 사라질 뿐 강에는 다리가 없다 지금 어떤 경계처럼 내가 흐르고 있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나를 건너야 한다 너는 늘 불편 저쪽에 있다 나는 어디론가 자꾸 흐르다가 저 혼자 깊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빛은 점점 맑아져 내가 나를 건너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그럴수록 너는 내 앞에서 보름달처럼 선명해져 내 몸의 안쪽까지 훤히 비춘다 내 몸은 너를 향해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쉬지 않고 출렁이는데 너는 여전히 내가 흐를 수 없는 저쪽이다 몸과 멀어진 마음의 저쪽은 늘 멀고 환하다 나를 건널 수 없어 오래 반짝이던 몸의 통증이 다리 없는 마음에게 무슨 말을 걸기 시작했는지 저녁 햇빛이 빠르게 기울고 있다 ―반년간 《시인하우스》 2024년 (창간호) ---------------------- 박남희 /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 『고장난 아침』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어쩌다 시간여행』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