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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두교황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환상적인 조화와 열연이 돋보이며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백미다. ⓒ 넷플릭스
선택은 거의 매순간 일상에서 일어난다. 별 고민없는 일상적인 단순한 선택에서부터 뼈를 깎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늘 우리 삶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렇다면 크고 작은 수많은 선택을 어떤 방법으로 해야 될까?
그리스도인인 나는 어려운 선택 앞에서 기도를 하며 응답을 바라지만 그건 그저 형식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이미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향해 가는 도중의 제스처였던 것이다. 변론을 하자면, 망막한 선택 앞에서 침묵뿐인 신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 교황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16세 교황은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고 그 결정이 옳은 것인지 알기 위해 아르헨티나 베르골리오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부른다. ⓒ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은 중대한 결정을 두고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두 교황의 모습을 감명 깊게 담았다. 일반인인 우리가 생각하기에 교황이라면 좀 더 다를 것 같지만, 두 사람 역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찾으려 애쓴다.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언제부턴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힘으로 살아왔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영화는 기도 후 초를 끄자 연기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는 기현상으로 그려낸다. 교황은 사소한 일까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주의 깊게 바라본다.
당시 바티칸에서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고 급기야 비서가 구속되는 일까지 발생한다. 베네딕토 교황은 이 상황을 지나치지 않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고 쌓여가는 교회문제를 고민하던 교황 베네딕토는 교황직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
종신직인 교황은 사퇴할 수 있는 직분이 아니다. 1294년, 약 700년 전에 한번 있었을 뿐이었다. 교황직분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세기의 놀랄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만큼 그 결정이 쉽지 않았을텐데 베네딕토교황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영화는 그가 어떻게 고민했을지 또 이런 놀라운 결정을 어떻게 했을지에 초점을 두고 두 교황이 만나는 과정을 전개한다.
베네딕토 교황은 후임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갖는 아르헨티나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적임자로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인지 과연 주님의 뜻인지 파악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불러들인다. 보수와 진보 극단의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때마침 베르골리오 추기경 역시 로마로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교회 내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해도 보수적인 교황의 반대로 행해질 수 없었다. 차라리 평신부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판단에 추기경직분을 은퇴하고자 이미 교황께 청한 사실이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로마로 직접 가기 위해 항공권을 이미 구입해 논 상태다.
각자 서로를 만나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것이다. 드디어 만난 두 교황의 대화는 영화의 백미다. 안개 속에 가려진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두 교황의 대화로 이어지는 영화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텐데 점점 빠져들고 만다.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간결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이 명확하다. 워낙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에 날 선 대화가 충돌하기도 하지만, 견해가 다름에도 열린 대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온유의 힘이 이런 것일까. 마냥 한사람의 의견에 굴복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뜻을 격하게 드러내지도 않는 태도는 보기 드물게 완벽한 겸손을 보여준다. 결국 서로 다른 지점에 있던 두 교황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찾는다. 영화에서 행하는 두 사람의 고해성사는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 들음의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만남의 3일째 되는 아침 교황의 전갈을 받은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시스티나 성당을 들어서자 이곳이 그가 있을 곳이라는 듯, 역광으로 어둡던 카메라는 눈이 부시게 빛나는 장면으로 전환한다. 며칠간의 긴 대화 후, 베네딕토교황은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주님의 음성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신의 침묵은 극도의 외로움이었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져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베르골리오가 적임자임을 확신한다.
"지난 이틀 동안 다시 들었어요. 당신의 음성이었소."
"음성을 듣지 못했던 이유는 주님이 날 버려서가 아니라, 가거라! 내 충성스런 종이여!"
▲ 베르골리오 추기경 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는 베르골리오 추기경. 추기경직을 은퇴를 승락받기 위해 바티칸으로 행한다. ⓒ 넷플릭스
들음의 미학
뜻밖의 제안에 놀란 베르골리오 베네딕토 교황의 처지를 공감하지만 자신은 결코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손사레를 친다. 현 교황인 베르골리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과오가 있었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독재정권하에 한발 앞서서 나서지 못했던 것, 더구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동료 사제들을 의도치 않게 어려움에 빠지게 했던 일이 그를 괴롭힌다.
독재정권이 종식된 후 베르골리오는 직위해제되어 먼 곳으로 파견된다. 낮은 자세로 새로운 임무를 행하며 고해성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가톨릭신자로서 나에게 고해성사는 나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것이였다면, 사제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초라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이었다. 듣는다는 것, 이건 비단 사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주님의 음성은 평화를 가져다주었지"
▲ 베네딕토 16세교황과 배르골리오 추기경이 바티칸에서 만나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만남을 통해 베네딕토교황은 베르골리오주기경이 적임자임을 확신한다. ⓒ 넷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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