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기막힌 사랑
내리는 비도 피하고, 구두도 손 볼 겸 한 평 남짓 한 구두 수선 방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나이 70 넘은 분이 양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으로 다가와 나의 흙 묻은 구두를 손 보기 시작하였다.
불구의 어르신 앞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내 행동이 무례한 것 같아 자세를 바로 하면서
"어르신! 힘들게 번 돈 어디에 쓰시나요?"
공손하게 여쭙자 가슴에 응어리진 지난날의 긴 이야길 나에게 들려주셨다.
힘들게 번 그 돈을 한 달에 한번 보내주는 곳은 부모님도 자식도, 형제도 아닌, 신분을 밝히지 못한 채 수 십 년 동안
보내 주는 곳에 대한 사연이었다.
"대대로 물려 온 지긋지긋한 가난,
한 마지기 땅으로 9 식구가 사는 집의 장남인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들의 손을 뿌리치고
자유 평화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월남 전에 지원해 갔어. 하지만 더 가슴 아픈 건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가는 것이었어..."
"울며 매달리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약속했었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겠노라고...>
그녀가 말하더군. <살아 만 오라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기다리겠다고.>
같이 마을 뒷동산에 올랐는데, 작은 몸을 떨며 나를 붙잡고 얼마나 울어 대던지.
그리곤 이 삼일 후 해병대에 지원해서 월남 파병이 되었지.
그 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
살기 위하여 싸웠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죽지 말아야 했지.
수 없는 전투를 힘들게 하면서 편지가 왕래하던 다음 해,
귀국을 앞둔 겨울 마지막 전투에서 벙커로 적의 수류탄이 떨어진 거야. 생각할 여지가 없었어.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동료들의 목숨은 구했지,
눈을 떠보니 하체가 없는 불구자 가 된 거야. 통합 병원에서 겨우 살아났건 만
울면서 밤을 지새우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그 몸으론 사랑하는 여자 앞에 나설 수가 없음을 알았던 거야.
고민 끝에 세상에서 제일 슬픈 말을 전해야 했어, <그 여자에게 차라리 나가 전사했다고...>
난 가슴이 찢어져 내리는 것 같아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했지.
그 후 불구자로 제대한 뒤 3 년쯤 후에 상처가 아물게 되자, 난 그 여자가 보고 싶어졌어.
그때쯤 그 여자가 결혼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
잘 살아주길 기원하며 숨어 서라 도 딱 한번 만이라도 보려고 그 달 기적처럼 어느 간이역에서 그녀를 만났어.
둘이는 벙어리가 되어 서로 멍청히 보고만 있었지. 그러고 나서 그 여자의 남편을 보는 순간 난 더 기가 막혔지,
그 남편은 나보다도 더한 양손 양다리가 모두 없는 불구자였어.
그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인 나를 월남 전에서 잃었다 생각하고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이었어.
그 얘길 듣고 난 후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그 남자를 버리라 할 수도 없었고, 내게 돌아와 달라 할 수도 없었어.
그 여자는 하체가 없는 내 앞에 엎드려 한참을 울더군.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해가 질 때 떠나가면서 나에게 말하더군.
<우리 둘이 약속한 그 뒷동산의 꽃을 자기 눈물로 키웠다.> 고. <하지만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곤 손 흔들며 떠나버렸어.
그 후로 난 지금까지 웃으며 살아 본 적이 없어. 그저 그녀와 함께했던 그 동산에 올라 내 자신을 책망하며 살아왔었지.
나의 용서를 빌며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 얼마 안 되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주려고 이렇게 번 돈을 그 여자한테
매월마다 익명으로 보내고 있지..."
노인은 그렇게 말을 이어 가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하늘을 보며 눈물을 닦아내고 계셨습니다.
구두 수선 방을 나서며
'노인의 기막힌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