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역사] 수학여행
1886년 일본 '원거리 소풍'서 시작… 우리나라에선 1901년 첫 등장
입력 : 2023.10.24 03:30 조선일보
수학여행
▲ 16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 /연합뉴스
중간고사 이후 많은 학교가 수학여행을 떠나고 있어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즐거운 추억을 쌓기 위해서죠. 교사 인솔하에 현장 학습과 단체 생활 기회를 제공하는 수학여행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요?
수학여행을 떠나려면 많은 학생들이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이 발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학여행의 역사는 짧은 편이에요. 수학여행의 시작은 1886년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학생들이 떠난 원거리 소풍이라고 해요.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는 그다음 해인 1887년 등장하기 시작했죠. 이후 일본에서는 많은 학교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현재 수학여행은 각 지역 자연 명소나 역사 유적 등을 돌며 경험을 쌓는 현장 체험 학습 성격이 강하지만, 당시 수학여행은 목적이 달랐다고 해요. 멀고 낯선 장소로 떠나 괴로움과 결핍을 이겨내는 인내심 훈련이 목적이었죠. 집단이나 단체 생활 속에서 불편함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의미로, 국가주의적인 면모가 훨씬 강했어요.
수학여행은 1900년대가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전해집니다. 당시 우리나라 근대 신문에서 '수학여행'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01년 황성신문 기사였어요. 러시아 동양어학교에서 중국어 학습과 연구를 위해 만주 지역으로 떠나는 수학여행을 보도한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서도 수학여행의 목적이 중국어 연구에만 있지 않다고 명시했어요. 당시 수학여행에 러시아와 중국 간 외교적 목적이 반영돼 있음을 암시했죠. 이후 우리나라 사립학교가 수학여행을 받아들였고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점차 수학여행이 보편화했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수학여행 역시 국가주의적 색채와 목적이 뚜렷했어요. 예컨대 당시 여행 안내서에는 경성(서울)·부산·평양을 주로 임진왜란·청일전쟁·러일전쟁의 사적지(史跡地)로 설명했다고 해요. 한국사와 일본사의 관계를 식민지배에 유리하게 해석하려 한 당시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수학여행은 학교의 자율권이 매우 제한됐고, 일정과 장소에 대한 통제도 심했다고 해요.
1920년대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이나 만주로 떠나는 수학여행이 증가했어요. 이는 식민지인이었던 조선 학생들에게 번화한 일본 근대 도시를 보여주며 조선인들이 일본을 동경하게 하려는 목적이 숨어 있었죠. 하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차별 대우를 받는 현실에 분노해 동맹 휴학을 하고 일제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1927년 광주고보에서 실시된 동맹 휴학이 대표적입니다. 광복 이후에는 점차 국가주의적 색채가 옅어졌고, 오늘날처럼 현장 학습 위주로 바뀌었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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