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저항하는 사람들① 홈플러스 노동자 “MBK 쫓아내고 홈플러스 지킨다”
민주노총이 올 하반기 불평등을 갈아엎고 한국사회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총파업 준비에 한창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이 예상된다.
벌써부터 현장투쟁 의제를 놓고 곳곳에서 투쟁이 벌어지면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결심이 무르익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연속해서 소개한다.[편집자]
지난 13일 광화문, 마트노동자 11명이 삭발했다. 수험생 자녀를 둔 엄마이자, 자녀의 상견례를 앞둔 여성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홈플러스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투쟁방식 중 하나인 ‘삭발’을 결심했다.
회사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가 홈플러스 인수 당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잘 나가는 매장의 문을 닫고, 부동산을 팔아치우면서 홈플러스를 산산조각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벌써 9천 명이 넘었다.
▲ 13일,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집단 삭발했다.
우리는 늘 불평등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적게는 10년, 많게는 20~30년 가까이 홈플러스에서 일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찍소리 못하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한 대가가 폐점매각이란 말입니까?” 울산의 홈플러스에서 18년 동안 일한 손상희 씨가 울부짖었다. 그는 나이 50이 넘도록 삭발은 꿈도 꿔본 적 없다.
홈플러스 근무 20년 차, 인천에서 올라온 김미리 씨는 양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두 번의 수술을 했다. “시키는 대로 일했고 주는 대로 받았는데, 우리 처지를 돌이켜 보면 노예와 다를 바 없습니다. 홈플러스 성장을 위해 애쓴 우리가 더는 쓸모 없다며 내팽개쳐졌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자회견 참석 인원이 제한됐다. 지역에서 함께 올라온 동료들은 삭발하는 동료의 모습을 먼발치에 서서 지켜봤다.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졌다.
▲ 동료의 삭발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홈플러스 노동자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 홈플러스를 국내 대형마트 업계 2위에 올려놓은 노동자들. 이들이 대형마트 최초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만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게 2년 전 일이다.
광주에서 올라온 임미영 씨의 말대로 “2013년 노동조합 만들고 8년 동안, 투쟁하지 않고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 8년간 온갖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싸웠다.
노동조합 출범과 함께 ‘0.5계약제’를 고발했다. 0.5계약제는 노동시간을 30분 단위로 계약하는 것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인 이들은 ‘하루 7.5시간’ 근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노동계약을 맺었다. 유통업계에선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계약방식. 심지어 10분 단위로 맺는 계약도 있었다. 당시 홈플러스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임금을 줄여보겠다는 꼼수로 연 130억의 임금을 체불했다. 노동조합을 만든 첫해 투쟁으로 ‘0.5계약제’를 폐지하고 승리했다.
비정규직에게 적용됐던 시급제를 월급제로 바꾸고, 6시간·7시간의 노동을 ‘8시간 전일제’로 바꾸는 등 차별을 없애고 현장을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노동조합 설립 5년 만에 정규직 전환이라는 큰 승리를 따냈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그들의 일터가 하나씩 통째로 없어질 위기다.
이번에도 투쟁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MBK를 쫓아내지 못하면 홈플러스가 산산조각난다. 하반기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마트노동자들이 투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유다.
홈플러스 인수자금 71%가 빚, 그 이자는 어떻게…
2015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홈플러스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 홈플러스 영업이익과 순이익(단위 : 억 원)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경영악화의 결정적 요인이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발생한 5조 원가량의 과도한 차입금과 이에 대한 이자비용 때문”이라고 말한다.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는 인수자금 7조 2천억 원 가운데 5조 원을 차입해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인수자금 중 71%가량을 빚으로 조달한 셈이다. 차입매수(LBO) 방식, 인수대상 회사(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빌렸다. 즉, MBK가 인수자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인수대상인 홈플러스가 자기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말이다.
홈플러스 영업이익이 몽땅 MBK의 차입금 이자 비용으로 지급됐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이자 비용의 합계(약 1조 2635억 원)가 홈플러스 영업이익 합계(9711억 원)보다 무려 2924억 원이나 많다.
▲ 2016년~2019년까지 홈플러스 이자비용(단위 : 억 원)
노동자들이 골병들며 일해 올린 영업이익을 결국 이자 비용 갚는데 쓰면서, 홈플러스는 이자 비용 갚느라 순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됐다.
홈플러스 매장·부지·연구원 팔아… 부동산 매각으로 차입금 상환
MBK가 ‘차입금에 대한 이자 비용’을 홈플러스 영업이익으로 갚아왔다면, ‘차입금’은 홈플러스 부동산과 자산을 팔아 갚고 있다.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은 지난해부터 홈플러스 매출 최상위 매장에 대해 폐점을 전제로 한 매각을 추진 중이다. 전국매출 최상위권인 안산점과 부산지역 매출 1위 가야점, 홈플러스 1호 매장인 대구점, 그리고 대전둔산점의 폐점매각이 진행 중이다. 대전탄방점은 올해 2월 말 폐점했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알짜매장들이 추가 폐점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
MBK가 홈플러스 매장, 부지 외에도 연수원 등을 팔아 얻은 매각대금은 총 3조 5천억 원. 홈플러스를 7조 2천억 원에 사 절반을 팔아치워 빚을 갚았다. 이 가운데 4개 매장 매각대금만 1조 2천억 원에 달한다.
▲ 2020년 이후 홈플러스 폐점매각 내역(탄방점은 둔산점과 비슷하게 추정)
노조는 “MBK는 사모펀드계의 특대형 부동산투기꾼”이라고 칭했다. 폐점매각 행태를 “부동산개발이익을 노린 전형적인 부동산투기”라고 규정했다.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이 추진하는 알짜매장 매각은 통상적으로 해오던 ‘매각 후 재임대(세일즈앤리스백)’ 방식이 아니라 폐점을 전제로 한 매각이다. “매장을 허물고 수십 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는 것으로 마트 사업을 포기하고 부동산개발에 뛰어들어 한 몫 챙기겠다”는 것. 저급한 부동산투기꾼이 아니면 무엇이냐는 것이다. 홈플러스 안산, 둔산점은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임원이 속해 있는 주식회사들이 매입업체로 손을 뻗었다. 노조는,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임원들이 MBK의 부동산투기에 편승해 홈플러스 알짜매장 폐점매각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혈안이 된 MBK를 보면서, “홈플러스를 인수한 목적도 부동산매각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이날 마트산업노조 정민정 위원장을 비롯해, 주재현 홈플러스지부 위원장과 각 지역 대표들이 삭발했다.
폐점과 매각이 이어지면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 매출을 올린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었다. 2015년 MBK 인수 이후 홈플러스 직영인력은 2021년 2월까지 총 4529명 줄었다. 외주·협력직원 등 간접고용 직원도 4349명이나 줄었다(2019년 12월 기준). 약 9천 명 가까운 인력이 줄어든 것이다. 경영위기를 만든 원인은 따로 있는데, 희생은 노동자들이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사모펀드 먹튀·부동산투기 “정부가 규제해야”
최저임금 노동자의 상징이 될 만큼 저임금에 시달리던 마트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돼 차별과 불평등을 좁혀가려던 찰나 고용불안에까지 떠밀린 반면,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은 2020년 대한민국 부자 랭킹 12위(2조원)에 이름을 올렸다.
20년 넘게 홈플러스에서 일한 김일주 씨는 “김병주 회장은 저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자본주의의 끝판을 보여주는 인간”이라고 분노했다. “청춘을 바쳐 일해 온 홈플러스가 악질 사모펀드 손아귀에서 엉망진창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며 삭발을 결심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뱉었다. 경남에서 올라온 박지미 씨는 정부를 향해 “멀쩡한 기업이 이렇게 산산조각날 때까지 왜 부동산투기꾼들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사모펀드의 이른바 ‘먹튀’ 행각의 대명사,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사태를 마트노동자들도 모르는 바 아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지난 8일 청와대 앞에서 “하루빨리 사모펀드의 부동산투기와 먹튀 매각을 규제하라”고 요구했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부동산투기를 잡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정작 사모펀드의 부동산투기는 묵과하고 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역시 사모펀드 투자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됐을 뿐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 기업먹튀를 규제하는 내용은 없었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도 모자라 온라인쇼핑몰 옥션·지마켓·G9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그리고 배달서비스 ‘요기요’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MBK가 홈플러스에서 보여주는 도미노폐점, 부동산투기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 “산산조각난 머리칼은 다시 자라지만 산산조각난 홈플러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주재현 홈플러스지부 위원장은 끝장 투쟁을 선포했다.
노조는 올해 안에 MBK와의 싸움에 끝장을 볼 결심이다. MBK를 쫓아내느냐, 노동자들이 쫓겨나가느냐 둘 중 하나다. 주재현 홈플러스지부 위원장의 “산산조각난 머리칼은 다시 자라지만 산산조각난 홈플러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8년간 조합원의 단결된 힘으로 싸워 이겼듯이, 이번 싸움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외침에 조합원들도 승리의 결심을 높인다.
‘꼭 삭발까지 해야 하냐’는 물음에 “오늘 우리의 투쟁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또 한 획을 그을 것”이라 자신하며 광주에서 상경했다는 임미영 씨도 “하나로 뭉쳐 싸우는 노동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며 머리칼을 내놨다.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나 한 푼이라도 덜 주려는 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지켰고, 악질 투기자본으로부터 자신의 일터를 지키는 투사가 되고 있다.
“건실하던 유통기업이 부동산투기꾼에 의해 망하고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나라라면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습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에서 이 사회의 희망도 보고 싶다.
금융투기세력에 의한 유통산업 먹튀, 부동산 자산 불평등 조장 세력에 의한 직접적 피해, 무인자동화 등 신자유주의식 4차산업혁명에 따른 고용위기까지... 이 땅 ‘불평등’ 모순이 홈플러스 노동자들에게 집중돼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총력을 다해 일터를 지키고 투기자본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마트노동자 투쟁의 신호탄이 불평등을 갈아엎고 세상을 바꾸자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 110만 민주노총 총파업의 기운을 달구고 있다.
▲ 삭발을 마친 노동자들이 동료들 앞에서 결심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