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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
[청주] 주님안에 머물러라.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사도 9,26-31
† 제2독서 1요한 3,18-24
† 복음 요한 15,1-8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기념 없음 (생명 주일)
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자는 데 뜻이 있다.
오늘 전례
▦ 모든 생명체가 꿈틀거리면서 약동하는 봄의 절정인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며 생명 주일입니다. 또한 부활 시기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덕분에 우리 안에 생명이 넘쳐흐르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들처럼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전해 받는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복음과 삶의 기쁨을 증언하면서 생명의 문화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뒤,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없애 버리려고 하자 형제들이 그것을 알고
바오로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다마스쿠스에서나 예루살렘에서나
이렇게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설교한다(제1독서).
★ 사랑의 새 계명을 전하는 요한 1서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2독서).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제자도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열매를 맺는다(복음).
◈ 오늘의 묵상
“내 안에 머물러라.” 피정 집이나 성체 조배실 같은 곳에 특히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곳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면서 그분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로 양육되고 성장하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시간을 내어 이렇게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려는 노력 없이 그저 우리
자신의 힘만 믿고 의지하면서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종이로
장난감 집을 짓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되돌아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을 곰곰이
살펴볼 때, 그 안에 포도나무의 수액이 흐르고 있는지 아니면 곧 말라 버릴
가지인지 직감적으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에 붙어 있는 생명 없는 열매들을
보게 되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 황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때로는 풍성하고
화려하며 탐스럽기까지 한 포도송이를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포도 알이 아니라 플라스틱 장식물일 때, 씁쓸함을 느낍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살아 있기 위해서 첫째로 중요한 일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열매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만이 아니라,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신다.” 하고 경고하셨습니다.
제2독서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문다고 강조합니다.
말과 혀가 아닌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느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실 것이며, 이때 비로소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될 것입니다.
당신 목숨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뽑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도 온 힘을 다해 그 수액을 열심히 뽑아
올려, 누군가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는 가지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2015.05.0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요한 15,2)
과일이 튼실하게 열리게 하기 위해
농부는 가지치기(전지작업)을 잘 해야 합니다.
웃자란 가지나 불필요한 가지는 영양만 뺏아먹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영적성장이 더디다면 우리 안에 잘라버려야 할
나쁜 습관이나 악습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은 '생명주일'입니다.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절대로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잘라버려야 할까를 고민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악습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려는 노력이 함께 할 때
우리는 멋지고 풍요로운 영적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이시여~~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생명의 향기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가?-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사도9,26-31 1요한3,18-24 요한15,1-8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생명의 향기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가?-
오늘 강론 제목은 '생명의 향기'입니다.
'생명의 향기'란 뜻도 어감도 참 좋아 우리에게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원래 제목은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가?'로 생각했는데 새벽 수도원 숙소의
문을 열고 나서며 향기 가득한 공기를 들이쉬는 순간 떠오른 제목입니다.
생명의 향기는 바로 하느님의 향기요, 부활하신 주님의 향기, 자연의
향기, 존재의 향기입니다. 존재의 깊이에서 발산하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이런 생명의 향기 가득한 성모성월 은총의 달 5월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향기를 회복해야 할 절호의 시기가 생명의 달 5월입니다.
진정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생명의 향기를, 하느님의 향기를 발산하는
법입니다. 생명의 향기가 사라져가는 작금의 시대입니다.
참 시끄럽고 요란하고 혼란한 죽음의 시대입니다.
고요히 머물러 영혼이 뿌리 내릴 시간도 공간도 찾기 어렵습니다.
생명의 향기가 아닌 도처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합니다.
하느님 중심, 사람 중심이 아닌
돈 중심의 생화(生花)가 아닌 조화(造花)같은 삶이 만연된 시대입니다.
정보와 지식은 넘치는데 생명의 지혜는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들간의 만남이, 사랑이, 침묵의 공간이 사라져 가고 있는
죽음의 시대입니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어둠과 죽음의 세력들입니다.
현대의 특징은 가볍다, 얕다, 엷다는 것입니다. 무거움이, 깊음이,
두터움이, 중심이, 방향이, 뿌리가, 기다림이, 침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응답은 없고 조건반사적 감정적 반응만 있을뿐입니다.
모두가 쉽고 빠르고 편한 것을 추구하고 힘들고 더디고 불편한 것을
기피합니다. 경거망동(輕擧妄動), 부화뇌동(附和雷同)의 시대입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많이 알아 병이 된 시대,
마치 희랍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가 완전히 열린듯한 시대입니다.
노인들은 많은데 어른이 없는 세상이요 지배층은 있는데 지도층은 없는
혼란한 세상입니다.
정말 알아야 할 하느님을 모르는 하느님 무지의 병의 폐해가 참으로
큽니다. 그러니 결과는 외로움, 들떠있음, 불안함, 두려움입니다.
이런 토양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생명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습니다.
넓이는 있지만 깊이의 뿌리가 없는 부박(浮薄)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는 사람들은 몇이나 되겠는지요.
하여 마음의 병이, 영혼의 병이 날로 깊어져 가는 사람들이요
문제는 이런 병의 심각성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만남의 부재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해
참으로 많은 이들이 뿌리 없이 외롭게 떠돌며 지냅니다.
생각없는 사람들, 영혼없는 사람들, 사랑없는 사람들, 뿌리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것은 분명 살아있는 삶이 아닙니다.
행복도 기쁨도 평화도 자유도 없습니다.
생명의 행복, 생명의 기쁨, 생명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생명 주일입니다.
생명의 향기를 발하며 진정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늘 하느님을 사랑하고 기억하십시오.
이래야 하느님의 깊고 넓은, 멀리 두루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시야와
더불어 부단히 확장되는 이해지평을 지니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아갈 때 순수요 자비요 지혜요 겸손입니다.
오늘날의 불행은 하느님을 잊음으로 이런 마음과 시야와 이해지평을
잃음에서 기인합니다. 돈 중심의 이해 공동체는 있어도 하느님 중심의
가치공동체는 점차 사라져가는 세태입니다.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위상을 알려줍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포도나무인 예수님은 물론 그 가지들이 모두 농부이신 하느님의
관리대상입니다. 아니 이 보다도 하느님은 더 크십니다.
포도나무가 뿌리내린 땅이, 주변 모두가 하느님의 만드신 것들이요
이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모두가 되시는 하느님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있음 자체가 생명의 하느님 체험인데 얼마나 많이
하느님을 잊고 지내는지요?
하느님은 말 그대로 우리 삶의 목표. 방향, 의미, 중심이 되니 우리의
모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잊을 때 무의미, 무감각, 무기력에
허무의 심연이요, 발견할 때 비로소 참 행복에 기쁨과 평화요 의미충만한
활력넘치는 삶입니다. 하느님 하시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붙어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우리라는 가지들을 부단히 사랑으로 관리하시며 열매들 주렁주렁
익어가길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과연 내 열매들은 잘 맺어 익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목표는 하느님께 영광드림에 있습니다. 우리 분도회의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이란 모토에도 딱 드러맞는 다음 복음 말씀입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바로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우리 사랑의 열매들, 평화의 열매들로 우리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느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정신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하고 기억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없습니다.
둘째, 늘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말씀으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사랑 안이 나의 제자리입니다.
주님 말씀 안에, 사랑 안에 머물를 때 저절로 정화와 성화요, 기쁨과
평화요, 위로와 치유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을 벗어나 살기에 온갖 파생되는 문제입니다. 세상 안에, 돈
안에, 걱정 안에, 두려움과 불안 안에, 미움 안에, 어둠 안에, 절망 안에,
죽음 안에, 온갖 우상들 안에 머무르기에 죽어가는 생명들입니다.
바로 수도원 안에, 이 미사 안에 머무르는 시간은 말그대로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시간입니다.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 정주요 관상입니다.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러 깊이 뿌리내릴 때 안정과 평화요 샘솟는
기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무려 머무르다는 말이 8회 나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너무나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입니다. 주님 안을 벗어난 헛된 노고로 인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무하고 공허한 삶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할 때 참 행복이요 풍성한
사랑의 열매들 공동체입니다. 바로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공동체가
이의 모범입니다.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 때 교회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이요 성령의 격려를
받아 무수히 늘어나는 하느님의 열매인 자녀들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감격과 감사에 벅차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들에게
딱 드러맞는 오늘 화답송 후렴입니다.
"주님, 저는 큰 모임에서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셋째, 늘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요,
모두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형제들입니다.
형제들과의 관계가 없는 나는 순전히 환상이요 착각입니다.
하여 제목도 '나'대신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가?'-로 정한 것입니다.
형제란 말 자체가 관계 개념입니다.
혼자의 단독자라면 형제란 호칭도 쓸 수 없습니다.
인보성체수도회의 호칭 역시 이색적이며 복음적이었습니다.
수녀란 호칭대신에 선배든 동료든 후배든 모두 '언니'라 부릅니다.
창립자 윤을수 신부님의 유훈이라 합니다.
수사, 수녀란 호칭은 관계 개념이 아니기에 사실 복음적인 호칭이라 볼 수
없고 오히려 관계가 투명히 드러나는 형제, 언니가 복음적입니다.
나 혼자가 아닙니다. 다 똑같이 주님 안에 있는 주님 나무에 붙어있는
평등한 생명의 형제들이요 언니들입니다.
'우리'란 순수한 우리말이 얼마나 풍요로운지요. '나'의 복수의 뜻도
있지만 한 우리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형제란 말도 반갑습니다.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사울을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사랑하는 형제이기게 이렇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배려하는 동료
형제들입니다. 오늘 요한 1서가 형제 사랑의 계명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바로 진리이신 주님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할 때 하느님 앞에서 마음 편히
가질 수 있고 하느님 큰 마음을, 큰 사랑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은 단 하나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주님 안에 머무르게 되고 주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바로 이를 깨닫게 해주는 분이 성령입니다.
오늘 부활 제5주일 생명 주일에, 주님은 우리 모두 진정 생명의 향기를
발하며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늘 하느님을 사랑하고 기억하십시오.
2.늘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3.늘 서로 사랑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를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어
우리 모두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어 새사람으로 탄생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성요셉 수도원 신부 -
◈ [서울] 부활 제5주일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의 몸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의해서 건강이 유지되고,
생명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문화, 역사, 전통이라는 토대에서
자랐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제게 영적인 힘과 지혜를 주었습니다. 신학교는
제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못자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제게는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신자들은
제게 사랑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 제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저와 신앙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입니다. 여러분은
가지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보셨고 아주 간단하지만 명확한 진리를 비유를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이 따뜻한 사람, 이웃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모두 사랑과 정이 가득한
가정이라는 포도밭에서 자라났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고 탄압했던 사울을 당신의 포도밭으로
인도하시고 사울을 통해서 교회가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주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지금 당장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상처 입은 영혼들일지 모릅니다.
교회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과연 이곳에서 튼튼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가 자라는지, 아니면 말라서 곧 버려질 포도나무들이
자라는지 돌아봅니다. 저 자신은 성소국장으로서 교구장님께서 위임해
주신 사제양성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입니까! 우리가 참된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혈연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따라야 합니다.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합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내 주위를 돌아보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번 입지 않는 옷도 있습니다. 몇 년 째 듣지 않는 음반도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포기하지 못하는데 주님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여행을 가면 따로 방을 마련해 주시는 교우들의 배려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다른 분들은 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사제라는 이유로 음식을 갖다 줄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자가용으로 모시러 오고, 모셔다
드려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아니라고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간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신앙인으로서 풍성한 결실을 맺으려 한다면,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합니다.
살기 편한 집은 있지만 따뜻한 정이 흐르는 가정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편리한 시설과 아름다운 성당 건물은 있지만 기도와 사랑이 넘치는 성당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흡수하는 것이 나를 만든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
복음: 요한 15,1-8
< 내가 흡수하는 것이 나를 만든다 >
앤디 워홀이란 사람은 미국 현대 미술의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삶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는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테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를린
먼로가 사망했을 때 그 자살 소재를 주제로 오렌지 색색의 먼로를 그린
그림은 지금도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비행기 사고나 전기의자, 해골과 같은 죽음에 관한 것들을 작품으로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접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죽음에 관한 것이었기에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침입한 페미니스트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멎었다가 1분 30초 만에 다시 뛰어 되살아났고 그는 죽음과
삶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말했고, 정말 간단한 담석제거 수술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맙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받았던 친구는 하반신 마비, 또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친구는
마약중독으로 사망, 자신이 가장 아끼던 여자 모델까지도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우리나라 말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로 내뱉으면 그것이
현실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자신의 속에서 흘러넘쳐
나오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빨아들이며 살아온 것들이 말로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고 그 말로 나오는 것들은 어떠한 기운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현실로 자신에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앤디
워홀은 죽음을 계속 자신 속으로 빨아들인 것이고 죽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 실험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젊음과 관련된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본 사람과 노인과 관련된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본 사람이 실험이 끝나고 나와 걸을 때 속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증명해 낸 것입니다. 젊음과 관련된 단어로 문장을
만드는 작업을 한 사람은 씩씩하고 빠르게 걸어서 집으로 갔고, 노인과
관련된 단어들을 접했던 사람들은 실험실에 들어올 때보다 현격하게
느려져 어깨를 떨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나는 내가 흡수하는
무엇으로부터 내 자신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어떤 것들을 흡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됩니다. 성경입니까, 텔레비전입니까,
인터넷입니까? 그런 것들이 나를 만드는 양식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게임을 상상하고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이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재미있게 소개되기도 합니다.
음식을 먹어야 에너지가 나오듯이,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에너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진리를 이용해 우리 안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권력과 성과
물질만능주의를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이것도 모른 채
아기들에게 스마트 폰을 쥐어줍니다. 아이들 프로그램이 다 건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 애니메이션에도 선정적인 것과 폭력적인 것이
조금씩 가미되어 있습니다. 남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래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세상 모든 매체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세상에 지배받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저도
경영학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알지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수많은
CF에도 교묘하게 육감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넣습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성욕을 자극할 수
있는 장면을 넣을지 고심합니다. 아이들은 음료수 마시는 광고를
보면서도 그 음료수가 흘러서 목을 거쳐 가슴 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성적으로 자극을 받습니다. 물론 대중가요는 이제 드러내놓고
직설적으로 성적인 가사와 춤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쾌락이
곧 행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추구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흘러들어오는 수액을 받아들여야만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묘하게 이와 비슷한 열매들을 우리
안에 맺히게 만들고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인식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육체적이고 쾌락적인 것이고, 기쁨은 개그콘서트와 같이 폭소를 하는
것이고, 평화는 싸워 이겨서 누구도 자신에게 두려움을 줄 수 없이
강해지는 것이라 믿게 만듭니다. 이 순간적인 쾌락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니
십자가의 사랑이나, 박해받는 기쁨이나,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그러나
하느님을 가진 평화를 원하지 않게 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지만 그것으로 맺히는 행복이 가치 없는 것이라 믿도록 만들어버려 모두
나무에서 떨어져나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행복은
순간적인 쾌락에 불과하고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립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만 맺힐 수 있는 성령의 열매가 참 행복인
것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은 크리스마스의 고전으로 손꼽힙니다.
돈만 알던 스크루지 영감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하룻밤 만에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밤에 공동묘지에서 무덤을 파는 일을 하던
‘가브리엘 데 그라프’라는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인상도 험악하고
술주정꾼에다 성탄절에도 돈만 주면 무덤을 파주는 누구도 마주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싫어하여서 아이들이 가브리엘
앞으로 지나가는 일은 절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탄절 날 갑자기 사라져서 7년 만에 다시 나타났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나중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아이들을 위한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것입니다.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전처럼 무덤만 파며 죽음의 문화와
함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학대당하는 난장이들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쨌든 7년 동안 직업을
바꾸었을 것이고 좋은 영향이 있는 직업이나 환경 안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안데르센이 이 개과천선 이야기를 디킨스에게 해 주며 소설을 써 보라고
추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디킨스는 사람이 그냥 변할 수만은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꿈에 천사를 만나 자신의 순진했던 과거와 외톨이가
되어버린 현재의 모습과 지옥으로 가게 될 미래의 모습을 보는 장면을
삽입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머무름’입니다. 머무는 곳에 있는 것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게 되고
그 열매가 곧 내 자신의 삶이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은 아르바이트로
닭을 잡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수천 마리의 닭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하게 되었지만 일주일 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주위에서 사람들이 보기에 얼굴이 자꾸
험악해져가고 눈빛도 이상해져간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계속
생명을 죽이며 피를 보기 때문에 그렇게 변화되어갔던 것입니다.
지금 나의 주위엔 무엇으로 둘러싸여 있습니까?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시간과 그렇지 않고 세상 것에
둘러싸여 있는 시간을 따져서 세상 것들에 더 둘러싸여 있다면 자연적으로
더 세속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양식이고 나의 양식이 나를 만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지이기 때문에 당신에게만 붙어있어야 당신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는 아무 좋은
사람도 될 수 없음을 믿고 규칙적으로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 [인천]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혼자 죽는 것이 가장 두려워.”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제껏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경험했겠습니까?
주변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서부터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안타까운 사고의
죽음까지 너무나 많은 죽음 속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위의 대답에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죽음’아닌 ‘혼자’가 두려운 것입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삶이 곧 죽음이라고 생각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두려움을 가져다주며 또한 실제로도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점점 팽배해지면서 혼자만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며,
또 실제로 혼자가 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 보입니다. 이 모습이
어쩌면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나’ 하나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셨음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하셨지요.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하면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면서 ‘죽음’으로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젠가 수능을 치룬 고3 학생들이 ‘1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자신의 꿈과
5억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고
하니 모두가 ‘꿈’을 선택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학생의
아버지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버지들은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요?
놀랍게도 5억을 선택하겠다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남아있는 자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꿈을 포기하고 5억을 선택하겠다는 것이지요.
자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꿈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너’를 위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위해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처럼, 포도나무가 되어 가지인 우리를
기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절대로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함께 살도록 명하신 나의
이웃들과도 떨어져서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함께 살아갈 때,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풍성한 결실을 이 세상 안에서 맺을 수 있습니다.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는 법이 없다. 물은 모든 것에
대해서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다. 우리 인생도 물과 같아야 한다. 그 어떤
사람도 부드럽게 감싸 줄 수 있고, 그 어떤 삶도 아우를 수 있는....
(김옥림)
소화 데레사 성녀. 죽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나의 기도를 점검해 봅시다.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위험에 항상
열려있는 우리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위험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보다는, 위험에 처해도 겁내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직접 오지 않기를 원하는 우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이 없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고통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나를 도와줄 협조자, 이익을 줄 누군가만을 청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인생과 싸워 이길 스스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새벽, 우리의 기도를 점검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의 현상에
불안해하고 불평불만을 던지면서 바치는 기도보다는, 지금의 나를
발전시키고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가 내게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더불어 늘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음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지요? 축하합니다.
◈ [청주] 주님 안에 머물러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 (요한 15,1-8)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주님 안에 머물러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이 시간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어두울 땐 안 보이는 것들이 불을 켜면 나타납니다. 눈 감았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을 뜨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없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마음을 두면 나타납니다. 사실 없는 것도 마음 두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마음을 없애니 사라집니다. 마음을 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마음 두는 것에는 시간도 거리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지고 아무리 오래 되어도 마음을 두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사실 마음에 두면 눈을 감아도 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아내, 남편, 아니면 자식, 부모?
재물, 명예...“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마음 둘 자리를 잘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오늘은 어버이께 마음을
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곧 어버이 날이잖아요! 하늘 아버지와
성모님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머물다’ 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둔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두어 그가 바라는 것, 기뻐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2독서의 표현을 빌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요한 3,24).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에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15,7).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 머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내 된 사람은 남편에게 마음을 두고, 남편 된 사람은 아내에게 마음을
두어야 ‘이심전심’, 마음이 통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화목합니다. 그러나
동상이몽도 있으니 걱정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서로에게 지킬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부부로써 신의를 지키는
것, 스승에 대한 존경, 그리고 제자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이 일상
안에서의 계명입니다. 이것을 지킬 때 주님으로부터 더 큰 복을 얻게
되고, 청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신 말씀은
달리 말하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이 청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모님을 ‘은총을 가득히 받은 복된 어머니’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복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자벳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령 복되십니다.” “믿으셨기에
복되신 분!”하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으셨기 때문에 복되십니다.
우리도 먼저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하고, 믿음으로 청해야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분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대로 행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까 남자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친구 같은 아내’,
‘현모양처’형을 선호하고, 여자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로 ‘가정적인
남편’, ‘카운셀러 남편’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는 ‘당신을 믿어요!’ 이고, 아내 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는
‘당신 너무 힘들지?’ 랍니다.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배우자를
선택하겠느냐? 는 질문에 남성은 71.5%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은 50.4%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부부 불화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로의 일로 가정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답이
45%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탓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도 서로의 관심이 다릅니다. 이 다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가슴에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 생애를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수님 곁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무에서 가지가 영양을 공급 받는 것이지, 가지가 나무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리지만 가지가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제자들 속에 주님께서 함께한 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주님께는 이득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가지 하나를 잘라버린다면 여전히 그
포도나무에서 다른 가지가 돋아날 것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버리지
못하지만 제자는 스승을 등지고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려진 가지는 뿌리에서 분리되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가지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없이 가지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 무엇인가에 성공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머물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천상의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1-34).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고달픔만 더하고 좋은 열매를 못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내 뜻을 먼저
찾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든 청하여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관심이 있지만, 바로 그 앞부분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하는 말씀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이 먼저입니다.
오늘은 주님 안에 머물러 꼭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 안에서, 일터에서 주님 안에 머물러 기쁨을 누리시길 빕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한 일은 헛수고임을 일찍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길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치매의 마지막 단계의 증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치매의 마지막 단계의 증상은‘부부사이’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랍니다.
자기 남편이, 자기 아내가 다른 사람인줄 알고 좋아진답니다. 서로 끝까지
사랑 안에,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항구하게 주님 안에
머물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하느님 나라의 국적
2015년 나해 5월3일 부활 제5주일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하느님 나라의 국적
주민등록증은 다 있고 또 해외여행 때 누구나 여권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의무와 책임을 지며 국가의 보호도 받습니다.
집시들은 국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보호를 받지 못해 거지생활 합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으면 모두 하늘나라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국적을 갖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의무도 지고 책임도 있으며 이를 이행할 때 보상도 받는 겁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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