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태우리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치유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어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에도 결국 아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당신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가수 노사연의 노래 ‘만남’을 불러줍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아들에게 불러주는 노래를 통해서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해 온 지난 시간이 우연과 필연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게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과 만남을 무언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기적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아들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어머니는 확신합니다.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이 연극 활동을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한동안 슬픔과 절망에 빠진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들은 자녀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몇몇 취미 활동들을 함께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연극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김태현 연극 감독의 도움을 받아 4·16 가족 극단 ‘노란리본’을 꾸린 어머니들은 연극을 통해 당신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되었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기회를 제공받았다며 만족합니다. 그렇게 연극 활동은 어머니들로 하여금 세상을 떠난 자녀들을 우연이나 필연과 같은 일방적인 영역이 아닌 ‘서로 간의 바람’으로 이어진 인연과 ‘영원’의 영역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노란리본 극단의 세 번째 작품인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합니다. 이 연극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될 단원고 학생들이 여행지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연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기자랑은 연극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게 도착한 제주도에서 친구들에게 선보이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어머니들은 단원고등학교 강당에서 <장기자랑>의 마지막 공연을 펼칩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학부모들이 처음으로 모였던 장소이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이 열렸던 곳에서, 아이들의 못다 핀 꿈을 연극으로 대신 피워주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영화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우연과 필연의 틀이 아닌 서로 간의 바람으로 묶듯이 담습니다. 이 같은 영화 속 어머니들의 모습은 한계 지어진 우리네 기억에 ‘영원’을 새기고 태울 수 있음을, 그리고 10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영원을 태우는 기억’으로 새겨져야 함을 일깨웁니다,
[2024년 4월 21일(나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첫댓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ᆢ
사랑!!
출근 길에 듣던 그날의 비보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