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23-41)>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 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이 시는 귀천(歸天)으로 널리 알려진 심온(深溫) 천상병(千祥炳) 시인의 행복(幸福)이다.
지난 금요일(6월 16일) 오전 9시경에 안국동 소재 해정의원(해정의료재댠)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일반검사(신체계측, 시력, 청력, 혈압 등), 혈액과 소변·대변(분변) 검사, 흉부촬영, 심전도검사(Electrocardiogram) 그리고 위내시경검사(Esophagogastroduodenoscopy)를 받았다. 수면(睡眠)내시경검사 시 수면제의 사용으로 인한 심폐기능 저하, 쇼크 등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고령층은 비(非)수면으로 검사를 한다.
매 2년마다 국가검진이므로 비용은 심전도검사비 3,000원과 위내시경 검사비(10%) 8,230원 등 총 11,230원을 지불했다. 오전 10시경에 위내시경 검사 결과를 최광준 원장이 설명해 주었으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내(전 고려대 교수)와 막내딸(서양화가)과 함께 인사동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남도제철음식점 ‘여자만’에서 점심 정식(1인 28,000원)을 맛있게 먹었다. 정식은 죽, 샐러드, 전(2가지), 계절무침, 수육, 가오리찜, 생선(고등어), 된장찌개, 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만(汝自灣)은 전라남도 고흥군, 보성군, 순천시, 여수시에 둘러싸인 만(灣) 이름이다.
점심 식사 후 ‘귀천’ 찻집에서 전통차(쌍화차, 대추차, 오미자차)를 마셨다. 카페 귀천은 서울미래유산(Seoul Future Heritage)로 2013년에 선정되었다.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씨가 1985년 개업한 전통찻집이며,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문인과 예술인들의 발길이 많았던 곳이다. 목순옥 씨가 2010년 별세한 후 조카가 운영하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嬉路市)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귀국하여 마산에서 성장하였다. 1993년 4월 28일 서울에서 지병인 간경변증(肝硬變症)으로 별세했다. 천상병은 마산중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상대(商大)에 입학했으며 1955년 4학년때 중퇴했다.
천상병의 문단 활동은 마산중학교 5학년 때인 1949년 7월 ‘죽순’에 시 ‘공상’외 1편을 처음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950년 6.25전쟁 중에는 송영택 등과 함께 동인지 ‘신작품’을 발간하여 시를 발표하였다. 1952년 ‘문예(文藝)’ 잡지를 통하여 시 ‘강물’ ‘갈매기’ 등이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정식 등단하였다.
천 시인은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뤘다.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는 출소 후 어린 아이처럼 돼버렸다. 가난과 무직, 방탕과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그 뒤 제2시집(1979), 3시집(1984), 4시집(1987), 제5시집(1991)을 펴냈다.
천상병 시인의 작품은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을 통해, 우주의 근원과 피안으로서의 죽음, 비참한 인생의 현실 등을 담았다. 그는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와 같이 전체적으로 장식적 수사나 지적인 조작을 배제하고 현실을 초탈한 삶의 자세를 매우 간명하고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천상병 시인은 세속적 가치와 인위적 기교를 뛰어넘은 소박하고 천진한 시 의식을 담음으로써 매우 개성적인 시 세계를 보여준 시인이다. 그는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으로 불리었다. 카페 귀천을 찾는 사람들은 시인의 맑은 영혼과 욕심 없는 행복을 배우고 간다. 필자도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의 행복한 시(詩)를 전통차(傳統茶)와 함께 마셨다.
<사진> (1) ‘여자만’에서 점심식사, (2) 천상병 시인과 부인 목순옥 여사, (3) ‘귀천’에서 전통차.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18 Jun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