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에 도착하자마자 강석재 어르신을 만났다.
오늘이랑 내일, 이틀 동안
숙소 위치를 정하고 예약도 해야 하고,
관광지와 맛집도 찾아야 하고,
여행지 순서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닥에 앉아 계신 강석재 어르신,
보이자마자 여행 계획 세우자고 했다.
① 숙소
숙소를 한 번도 예약해 본 적 없는 나지만
이번 여행에 어르신이 숙소를 예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어르신에게 예약해 본 적 없어서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이 강원도 여행이랑 포항 여행 갔을 때 숙소 비용이 얼마 나왔었는지
같이 갔었던 선생님께 물어보신다고 하셨다.
물어보면서 부산에서 숙소가 저렴한 지역도 알아 오셨다.
“어르신, 숙소 비용은 얼마가 적당해요?”
“20만 원이 적당하지, 싶은데,
사람들이 여름에 부산에 많이 놀러 가서 숙소비가 비싸다카대.
해운대가 그나마 싸다카드라.”
“그러게요, 여름이라 다들 부산으로 여행 가나 봐요.
해운대 지역으로 숙소 검색해 볼까요?”
염순홍 선생님이 알려주신 아고다 앱을 깔아 지역을 해운대로 설정하고 검색했다.
숙소가 다양하다.
이 중에 어디를 골라 설명해 드려야 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침대를 여쭈었다.
“넓은 침대 한 개에 같이 주무시는 게 편하세요?
1인용 침대 두 개에 따로따로 주무시는 게 편하세요?”
“같이 자도 상관없어.”
“가격은 오천 원 차이예요. 편하게 따로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어 그래? 그럼 따로 자는 게 좋지.”
‘지역: 해운대, 침대: 2개, 가격: 20만 원 이하’로 설정해서 검색했다.
제일 위에 있는 숙소를 선택해 사진을 보여드리며 설명해 드렸다.
“이 숙소는 작은 침대가 2개 있고요. 이 검은색은 TV고, 옆에 냉장고도 있고 문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어요. 가격은 12만 원이에요.”
“12만 원? 그 정도면 괜찮네. 이틀 자면 얼마고?”
“24만 원이에요.”
“거기로 예약하면 되겠다.”
앱으로 예약하려고 보니 입력할 게 너무 많고 복잡해서 전화로 예약하기로 했다.
“어르신, 숙소 예약해 보신 적 있어요?
저는 없어요. 전화해서 뭐라고 해야 해요?”
“그냥 전화해서 2박 잘 거라고 하면 되지.”
“연습해 볼까요? 제가 호텔 직원 할게요. 네, 호텔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르신께서 입을 다무셨다.
어르신이 직접 통화해서 예약하기는 할 수 없는 일인지 고민하던 중
어르신께서 호텔 번호 있냐고 물어보셨다.
어르신 휴대폰에 번호를 대신 눌러드렸더니 통화 버튼을 누르셨다.
연습도 없이 통화하다니. 내가 다 긴장됐다.
호텔이 바쁜지 받지 않았다. 다시 한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직원과 통화하려면 2번을 누르라고 해서 누르고 기다렸더니 연결되었다.
“00호텔입니다.”
“여보세요? 여 거창입니다.”
“네”
“숙소 이틀분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오늘 예약하면 될까요?”
“어떤 객실 타입으로 몇 명 투숙하세요?”
“2명”
“객실 하나세요?”
“네.”
“옆에 또 학생이 한 명 있는데 여학생인데, 그분하고 세분이 쓸낀데 한데 쓰는 게 아니고 따로따로 쓸 깁니다.”
“객실 2개로 예약하실 거세요?”
“남자 두 분하고 여학생 한 분하고 세 분이 쓸낀데 숙소를 2개를 예약할까 싶어서요.”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했던 걱정들이 바보 같았다.
연습 없이도 해내는 어르신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상담사가 예약자 이름과 번호를 물어봤는데
어르신 번호를 몰라서 일단 내 이름과 번호를 대신 알려드렸다.
그리고 1분 후 예약 확인 문자가 왔다.
②관광지
예전에 갔던 여행에서 어디 갔었는지 물었다.
강원도에서 쌍화탕이라는 엄청 넓은 목욕탕과 동물원에 갔었고,
목포에서는 케이블카 탔었다고 했다.
“어르신, 부산 케이블카 검색해 볼까요?”
“부산에도 케이블카가 있나?”
“검색해 보니까 송도에 케이블카 있고, 해운대에 열차가 있어요.
케이블카는 바다 위를 가로질러서 타고 도착하면 구경할 곳도 있대요.
열차는 해운대 해변 따라서 열차 타는 거고, 도착하면 카페 있는데 좀 걸으셔야 해요.”
“얼마고? 그건 장애인 할인 없나?”
“어르신 75세잖아요! 케이블카는 노인 할인 20% 받을 수 있대요.”
“그래! 그럼, 그거 타자! 열차까지 타면 너무 비싸니까 케이블카만 타야겠네.”
“부산에도 동물원이 있나? 저번에 갔을 때 돼지도 보고 동물 보니까 좋더라고.
차 타고 편하게 구경했는데 부산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어르신, 부산에 왔으니까 물고기 구경은 어떠세요?”
“물고기?”
“네. 아쿠아리움이라는 곳인데요. 상어도 있고 가오리도 있어요.”
“가오리 회 쳐서 먹으면 맛있는데”
“....”
“장난이고. 아쿠아리움은 얼마고?”
“3만 원인데 예약하면 2만 5천 원이래요.”
“그래 그러면 예약해야겠네.”
③식당
식당도 신중하게 정했다.
“어르신, 돼지국밥 맛집 아세요?”
“모르지.”
“내일 노래 교실 가시니까 선생님이나 같이 수업 드는 분들한테 물어보는 거 어떠세요?”
“안돼. 노래 수업 끝나면 선생님은 바로 나가시고 노인분들이라 몰라.
물어볼 때 상황이 아니야.”
“그러면 지금 검색해서 찾아볼까요?”
부산에는 돼지국밥이 엄청 많다. 블로그에 들어가 하나하나 설명해 드렸다.
“여기는 수육이 부드럽대요, 여기는 맛이 깔끔하대요, 여기는….”
“아무 데나 가. 싼 데로 가.”
“아. 그럴까요?”
“장어구이도 옛날에 많이 먹었어.”
“장어구이 검색해 볼까요?”
장어구이도 검색해 보니까 엄청 많이 나왔다.
1인분에 4만 원이라고 말씀드리니 더 싼 곳은 없냐고 물어보신다.
3~4인분에 4만 원인 곳을 찾아 알려드렸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빵 먹고 점심으로 물회 맛있게 먹자고 하셨다.
물회는 낮에 먹어야 더울 때 시원하게 먹어야 맛있다고 하셨다.
자갈치 시장에서는 생선구이를 먹기로 했다.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 일찍 일어나도 관광지라 식당 문을 늦게 열어서 못 먹어.”
“어르신, 어떻게 다 아세요? 여행을 많이 다녀 보셔서 그런가?”
식당 오픈 시간을 참고하면서 자갈치시장에서는 뭐 먹을지, 밥 먹고 뭐할지 의논하다 보니 6시간이 지났다.
아침 월평에 오자마자 얘기하고 입주자 대표로서 방역 회의하시고 다시 돌아와서 얘기하고 점심 먹고 얘기하고 코로나 검사받고 얘기했다.
어르신이 먼저 얘기하자고 공부방에 찾아오셨다.
자신의 여행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4시가 됐을 무렵, 어르신과 나는 힘들어 오늘은 이제 그만하고 내일 다시 정하자고 했다.
오늘 열심히 계획 세운 덕분에 내일은 준비물과 아쿠아리움 예약, 여행 계획 정리만 하면 된다.
④기념품
“어르신, 여행 전에 허복란 씨와 윤미소 씨 못 만나게 되면 여행 다녀와서 만나는 거 어떠세요?
부산 여행 기념품도 사서 선물로 주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
“여행 기념품, 뭐로 주지?”
“간식 어때요?”
“간식은 사서 바로 줘야 하는데 바로 못 주잖아. 상해서 안 돼.”
“기념품 가게 있던데 여행하다가 보이면 구경하다가 사 볼까요?”
“그래도 되지, 부채도 사야 해. 00 씨가 부채 사 달라고 했어.”
“공방 원장님 선물도 사 갈까요? 예쁜 옷 입고 여행 갈 수 있게 해 주셨잖아요.”
“선물해 주고 싶은 예전에 선물했더니 받기 부담스럽다고 주지 말라카더라고.”
“00 씨 줄 부채 살 때 공방 원장님 것도 사는 건 어떨까요? 안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요.”
“그래. 그건 안 부담스러워하겠다.”
어르신의 여행이 둘레 사람들과의 관계에 좋은 구실이 되면 좋겠다.
2023년 7월 12일 수요일, 임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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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어르신이 직접 숙소 예약하시고 그 나머지 자잘한 결정도 다 어르신 뜻대로...
온전히 어르신 여행이네요.
저는 운전기사에 객실 도우미 역할 잘 하겠습니다.
잘 물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저는 잘 몰라요. 어르신이 알려주세요. 임재경 선생님의 예쁜 호소가 어르신에게 얼마나 반갑게 들릴까요? 어른 노릇 하시도록 주선하는 임재경 선생님의 마음이 고마워요.
장애인 할인이라는 말에 멈칫. 노인 할인을 추천했다는 말에 어떻게 저리도 세심하고 속이 깊을까 생각했어요.
"물어볼 때 상황이 아니야." 와, 어르신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6시간. 역사를 쓰는 시간!
어르신 연세 만큼 경험이 많으셔서 결정도 빠르고 추진력이 대단하십니다.
저녁 나눔 시간에 임재경 선생님과 강석재 어르신의 장장 6시간의 대화를 축약본으로 들었죠.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임재경 선생님은 대화를 즐겁게 이끄는 재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긴 시간 의논에도 강석재 어르신이 재미나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르신이 먼저 얘기하자고 공부방에 찾아 오셨다.' 이 이야기는 글을 읽으며 알았어요. 이 문장을 읽으며 '그래, 어르신의 여행이니 어르신이 먼저 의논하자고 찾아오셨구나!' 생각했어요. 임재경 선생님께서 강석재 어르신이 그렇게 생각하시도록 잘 묻고 의논하셨나 봅니다. 그리고 대화의 재미도 어르신의 발길을 이끄는 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의논부터 이토록 즐거운 여행이라니, 여행 당일은 얼마나 더 즐거울까요!
숙소와 식사를 알아볼 때 둘레 사람와 의논할 수 있게 주선해도 좋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