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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개발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원조는 보통 매우 낮은 금리에 아주 긴 기간 동안 제공하여 개발도상국의 이자와 원금 상환 부담을 대폭 낮춰준다. 아예 이자와 원금을 상환받지 않고 무상으로 원조하기도 한다.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원조를 통칭해서 유상원조, 그렇지 않은 경우를 무상원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유상원조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1.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공적원조를 개발도상국에 지원할까. 그중에서 인도는 얼마나 많은 원조를 받아왔을까. 우선 전 세계 선진국은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원조를 제공하는지부터 살펴보자. 2022년이 가장 최근 통계인데 그 규모는 연간 2,760억 달러(약 360조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부터다. 그때부터 2022년까지 제공된 공적개발원조를 단순 합산하면 그 규모는 4조 8천억 달러(약 6,240조원)에 이른다.
물가 인상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합산이니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원한다면 실제 규모는 더 늘어날 테다. 이렇게 막대한 규모의 원조를 매년 제공하다 보니 원조와 관련한 자율적 규제의 목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내에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가 구성되어 있다. 현재 32개 회원(우리나라 등 31개 주요 선진국과 유럽연합[EU])이 가입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다지도 많은 돈을 원조하는 걸까. 선진국 국민과 정부 모두 마음이 비단결처럼 착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선뜻 내주는 걸까. 아니면 그 뒤에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을까. 주요 공여국들이 개도국의 빈곤 탈출 이외에도 나름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원조를 제공하고 있음은 이미 1980년대 초반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군사·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60년대와 70년대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전체 원조의 1/3을 쏟아부었다. 프랑스는 같은 시기에 자국의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에 원조를 집중했다. 이들 나라에 남아 있는 프랑스 기업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의 후속 연구를 종합해 보면 선진 공여국은 대략 3개 정도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자신들의 군사·외교적 목적 또는 식민지 관리 등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원조를 사용하는 그룹이 있다. 둘째로,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그룹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우리가 가장 많이 해외직접투자(FDI)를 실시한 베트남에 제일 큰 규모의 해외원조를 제공해 왔다. 베트남에 진출한 다양한 우리 기업들의 활동과 영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셋째로,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독특한 그룹을 형성한다. 이들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거대한 식민지를 경영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달리 군사 외교적 목적을 관철할 필요도 없는 나라들이다. 이들은 주로 이타적이고 인도적인 원조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즉 아프리카 등지에 집중하고 있다.
1960년 이후 주요 대륙별 원조 수혜 규모를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역시나 개발도상국이 많이 소재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 원조를 집중함을 볼 수 있다.
2. 꽁돈(?)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그렇다면 인도에는 얼마나 많은 원조가 제공되었을까. 1960년 이후 현재까지 개발도상국에 제공된 전체 원조 중에서 인도가 1,736억 달러(3.6%)를 받으면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에 이집트(2.9%), 시리아(2.2%), 방글라데시(2.2%) 등이 있다. 공적개발원조의 큰 형님 격이라 할 수 있는 세계은행(World Bank)은 전 세계 국가를 소득 수준에 따라 4개의 큰 그룹으로 나눈다. 이중 소득이 낮은 3개 그룹에 속하는 약 140개 국가를 원조대상국으로 분류한다.
단순히 계산하자면 나라 한 곳당 전체 원조 규모의 약 0.7%(1/140개국)씩 돌아가야 하지만, 수혜국의 인구나 경제 규모, 수혜국이 띠는 지정학적 중요성 등을 고려하여, 인도 한 곳에 3.6%나 되는 원조가 몰린 터이다.
위의 그림이 말해주지 못하는 숨은 이야기를 몇 개 해야만 한다. 첫째, 원조를 하는 공여국들이야 까다로운 기준을 정해놓고 군사원조처럼 공적개발원조에 해당하지 않는 원조를 OECD에 보고하는 통계자료에서 빼네 마네 호들갑을 떨겠지만, 원조를 받는 쪽은 자국이 받는 것이 OECD 원조 통계에 포함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살상 무기가 되었든, 돈이 되었든, 식량이 되었든, 자국에 이득이 된다면야 못 받을게 뭐가 있겠는가. 실제로 인도는 위 그림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원조를 주로 러시아로부터 받아왔다. 대개 군사와 원자력 분야에서다. 빈곤퇴치와 경제개발에 사용되는 ‘공적개발원조’로만 한정하여 취합한 위 그림으로 보여주지 못한 광의의 원조라 하겠다.
둘째로,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ADB)의 가장 대표적인 지원방식인 시장금리기반(Market rate based) 대출은 위 통계에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업은행의 대출금리보다는 확실히 저렴하기 때문에 인도 정부가 1년에 30억 달러 이상 도입한다. 인도 경제 발전에도 기여를 한다. 이 또한 위의 그림에서 보지 못하는 정보다. 참고로 <그림 3>에서 보듯이 전 세계 개도국을 대상으로 단일 공여국 중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한 나라는 그 규모 순으로 미국(8,124억 달러) 일본(4,932억 달러) 독일(4,190억 달러)이다.
3. 인도에 가장 많이 원조한 나라
인도에 가장 많은 원조를 지원하는 공여국 또는 공여기관은 어디일까. 독자분들도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앞에서 언급한 아시아개발은행이다. 매년 30억-35억불가량을 지원하며 1등을 달리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아시아 국가의 빈곤퇴치와 경제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이다 보니 인도와 같은 아시아 개도국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2023년에 아시아개발은행 뉴델리 사무소 고위층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 내부에서 ‘과거 30년 동안 아시아 개발은행의 제1고객은 중국이었지만 앞으로 미래 30년 동안 제1고객은 인도가 될 것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아시아개발은행은 뉴델리 사무소에는 100여 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근무 중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이 해외 사무소 중 가장 큰 규모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수년 안에 현재 피고용 인원수와 비슷한 규모를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다. 현재 건물 바로 옆에 똑같은 규모의 빌딩을 짓기로 인도 정부와 이미 이야기를 끝냈고 건축허가까지 다 받아놓았단다. 한마디로 아시아개발은행이 작심하고 인도에 돈을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도 아시아개발은행과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규모(약 30억 달러)의 원조를 매년 인도에 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Asia Dam and Buildings(아시아의 댐과 빌딩)'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인프라 개발에 집중하지만, 세계은행은 인프라 건설뿐만 아니라 공중보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유사한 규모를 고용하고 있으며, 뉴델리 시가지 한복판의 힌두스탄 빌딩에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뉴델리에서도 가장 임대료가 비싸고 멋진 건물이기도 하다.
사족 하나만 더하자면 2023년 7월, 인도 출신 미국인인 아제이 방가(Ajay Banga) 전 마스터카드 회장이 세계은행의 총재로 취임했다.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를 책임지는 여러 국제기구 가운데 가장 큰 형님 격인 세계은행의 총재 자리에도 이제는 인도 출신 인사가 앉게 된 터이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에 이어 단일 국가로서 인도에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이 두 기관과 더불어 인도 해외원조를 이끄는 삼두마차라고 봐도 무방한 그 문제적 남자, 아니 문제적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4. 못다 이룬 꿈 또는 뛰어난 안목
1944년 4월부터 6월까지 인도 북동부, 현재 마니푸르주의 주도인 임팔(Imphal) 근방에서는 2차 대전 때 가장 소모적인 전투를 다투는 임팔 전투가 벌어졌다. 임팔은 인도, 중국, 미얀마(당시 버마) 등이 접경하는 지역이다. 인도로 침략하기 위한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일본에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땅이었다. 반면, 이렇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이미 대규모 병참기지를 건설해 놓고 있던 영국 주도의 연합군 입장에서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곳이었다. 3개월간 진행된 전투에서 연합군도 약 1만 2천 명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보았지만, 일본군은 무려 5만 5천 명가량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결국 일본은 이 전투에서 패하며 서진(西進)을 멈춰야 했다.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점령하려 했던 꿈은 접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4년이 지난 1958년, 일본 정부는 인도에 최초의 공적개발원조대출(ODA Loan)을 제공하였다. 규모는 180억엔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첫째, 인도는 일본의 공적개발원조대출(ODA Loan)을 받은 최초의 수혜국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이 대규모의 원조 대출 제도를 만든 후 콕 집어서 최초로 대출해 준 나라가 다름 아닌 인도라는 의미다. 둘째로, 이 원조자금대출은 당시 자왈할랄 네루 총리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인도의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에 쓰였다.
얼핏 들으면 그냥 흘려들을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곰곰이 씹어보면 시사하는 바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성장잠재력이 큰 인도라는 나라를 자국의 첫 번째 유상원조대상국으로 선정한 일본의 안목에 감탄하게 된다. 특정 건설 프로젝트를 고르지 않고 인도라는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첫 번째 원조 대상 사업으로 선택함으로써 향후 인도가 나아갈 경제성장 방향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자국의 인도 진출 전략에 활용할 만반의 준비를 한 터이다. 주도면밀한 인도 진입전략이라고 할 만하다.
한번 상상회로를 돌려보자. 전쟁에서 패한 지 불과 14년 만에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점령하려다가 실패한 나라의 경제개발 전략을 수립하고자 막대한 자금을 원조해 주던 일본은 그 당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인도를 도와야겠다’는 이타적 생각뿐이었을까. 아니면 ‘군사적으로는 점령하지 못했던 나라를 이제 경제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경제 지도(경제개발 계획)를 손에 얻었구나’라고 쾌재를 불렀을까. 나는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독자분들과 비슷한 쪽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한편, 1958년 당시 일본 총리는 2차대전 중에 상무성 대신을 맡았다가 종전 후 A급 전범 혐의를 받고 3년간 감옥에서 복역하기도 했던 기시 노부스케였다. 그는 이미 2차대전 중 일본의 꼭두각시 국가였던 만주국의 총무청 차장(오늘날 직급으로는 내무부 차관이지만 허수아비 장관을 대신해서 사실상 만주국을 통치했다)을 맡아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 바 있다. 인도를 방문한 그를 자와할랄 네루 당시 인도 총리는 극진하게 대접했다. 인도를 방문한 노부스케의 눈에 인도가 제2의 만주국으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