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자신도 교회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던 데카르트는 1633년 자신의 첫 작품을 완성했는데 그즈음에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출간을 포기했고, 상당 부분을 폐기했다. 4년 뒤 《방법서설》을 익명으로 출간한 것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데카르트는 조심성이 많았고 갈릴레이와 브루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의 증명을 꾀했다. 그는 신 존재 증명을 통해 자신의 견해가 교회의 가르침이나 태도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다른 이론에 비해 초라할 만큼 빈약했던 증명으로는 교회를 안심시킬 수 없었다. 교회는 데카르트를 이단으로 여겼으며, 그가 죽은 뒤 13년 후 그의 저서들을 금서목록에 올렸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으로 거론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취급되기도 했다.--- 「1부 1장,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흥부전〉을 보면 착한 동생 흥부가 복을 받고 욕심 많은 형 놀부가 벌을 받아 전세가 역전된 것은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부는 몇 개의 박을 탔을까? 아마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그냥 박에서 나온 온갖 재물로 부자 된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은 그것뿐이었으니. 흥부가 박을 탔던 건 배가 고파서 박속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박을 탔다. 그런데 엉뚱한 게 나왔다. 그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은 거의 한결 같다. “금은보화, 고래등 같은 기와집, 산해진미……” 하지만 그 박에서 나온 건 풀뿌리와 나무껍질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말을 해주면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진다. ‘재물이 아니고? 그런데 그것들은 도대체 뭘까?’ 대충 그런 심정인 듯하다.--- 「2부 1장, 문학에서 역사 읽기」
서태지 전까지 우리 언어는 랩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ㄱ, ㄷ, ㅂ, ㅈ’으로 끝나는, 즉 무성음으로 끝나는 말들은 발음을 짧고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음에 적절하지 않다. 영어의 경우는 유성음들이 많아서 이어서 발음하는 데에 매끄럽다. 그래서였을까?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의 대표작 〈난 알아요〉의 가사에는 무성음으로 끝나는 단어들이 별로 없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 울잖아요.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면 Yo!”
대단한 감각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음악은 진화를 거듭했다. 2집의 대표작 〈하여가〉는 강렬한 기타 연주에 전통악기를 조합하는 파격을 선보이며 음악적으로 진보했다. 여전히 가사는 유성음 받침으로 끝나는 낱말들이 많았다. 다만 조금씩 무성음 받침이 사용되었다.--- 「3부 3장, 랩의 바탕은 저항정신이다」
1776년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해야 할 연대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이기 때문이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했던 해이기 때문이다. 책의 정확한 제목은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즉 ‘국가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고찰’이다. 흔히 경제학의 바이블이라고 평가되는 《국부론》은 본격적인 경제학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경제학이 비로소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부론》은 단편적인 정책 주장만을 해오던 이전의 저술들과는 달리 최초의 체계적이고 획기적인 저작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정작 이 책보다는 《도덕감정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도덕철학자이기도 했다. 사실 ‘보이지 않는 손’도 이 책에서 먼저 언급했던 개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