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215. 죽은 다음에는?
(위령성월에 죽음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에서 발췌한 내용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여러 번 나누어 게시할 예정입니다)
죽은 다음에 천당 갈지 지옥 갈지 연옥에서 단련을 받을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사람 중에 그래도 잘 아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아와서 잘 살아라, 그래야 천당 간다 하던가? 너네 큰 아버지 열심히 기도하고 남들도 잘 도와주고 성당 일도 열심히 하고 그러더니 천당 가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단다 하던가? 너네 작은아버지 성당도 다니다 말다, 좋은 일하다가 때로는 안 좋은 일도 하다가 하더니 지금 연옥에서 죽도록 단련 받고 있단다 하고 일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죽은 이는 다시 와서 죽은 다음의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
미국사람들은 자기가 죽으면 천당 갈 것이다 라고 믿는 사람이 80% 정도 된다고 한다. 터키는 무려 95% 사람이 천당 간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어떨까? 죽어서 천당 갈 거라고 믿는 사람이 49% 이다. 그러니까 죽음 이후의 천당 간다는 확신이 없으므로 일단은 살아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고 말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문화가 자리잡은 유럽이나 멕시코 같은 곳에 가보면 공동묘지가 동네 한 가운데 있다. 이는 죽음에 대한 문화가 다르다. 유럽이나 남미는 공동묘지의 느낌이 다르다.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고 박물관, 공원 같은 느낌이 많다. 도시락 싸 가지고 공동묘지로 놀러간다. 아르헨티나는 기일이 되면 공동묘지에 가서 아버지 관을 다시 꺼내 닦으면서 차 ‘맛데’ 를 마시면서 생전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미국은 그리스도 국가이다 가톨릭 신자가 7500만명이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면서 아버지 묘, 어머니 묘를 맨날 본다. 매일 묘를 지나가면서 장미 한송이 놓아두면서 이야기를 한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데 당신이 잘 봐 달라고 한다. 그들은 묘지 참배는 덕의 대학을 가는 것과 같다 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죽으면 산속 깊숙한 외진 곳에 묻어버린다. 자주 갈 수도 없는 곳에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갈 수 있다. 대한 국민들은 보러 가는 날은 다 같다. 죽은 날은 다른데 찾아가는 날은 같다. 명절 때 성묘 가는 날이다. 묘지에 대한 감정은 비슷하다. 어느 동네에는 동네 가운데 장의차 진입 금지 라는 팻말이 붙어 있기도 하고, 죽음의 문화에 대해 부정적이다. 추모공원 만들려면 힘들다. 서울 추모공원 세우는데 9년 동안 반대를 했다. 성당 납골당도 반대가 심하다.
한국사람은 죽는 거 진짜 싫어한다. 하느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죽는 거 싫어한다. 사형수들 죽기 전에 벌벌 떤다고 한다. 사형수가 사형 받으러 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라고 말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사형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죽기 싫어한다. 사형은 문제가 아니라 죽고 난 다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도 죽음 싫어한다. 믿는 사람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비율이 49% 이다.
천당 지옥이 있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내가 죽으면 천당 갈 거 같지 않으니 일단은 살아 있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