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의 기억입니다. 신학생 때입니다. 본당의 여름행사를 마치고, 성당 주일학교 교사들의 여름모임에 함께 했습니다. 당시에는 여름행사가 많았습니다. 고등부는 지리산으로 산행을 갔었고, 중등부는 용문청소년 수련장에서 다른 본당과 함께 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초등부는 성당에서 놀이마당을 했습니다. 교안을 만들고, 물품을 준비하고, 율동을 연습하면서 여름을 보냈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배려로 수고했던 교사들 30여명이 안면도로 3박4일 여행을 갔습니다. 민박집에 머물면서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고, 낚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름, 젊음, 바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1983년의 여름 안면도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잊지 못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랜턴의 건전지가 떨어져서 몇몇 여교사들과 건전지를 사러 바닷가의 가게로 갔습니다.
건전지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동네 청년들이 우리를 불렀습니다. 제게 말을 걸었는데 저는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두려웠습니다. 캄캄한 밤이었고, 청년들이 몇 명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등부 교사인 홍 데레사가 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동네 청년들은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초등부 교사인 강 막달레나는 조용히 빠져나와서 민박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떨고 있었는데 한명은 묵주기도를 하였고, 다른 한명은 어둔 밤을 헤치고 민박집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다행히 민박집 주인과 교사들이 왔고, 모든 일은 원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캄캄한 어둠과 같습니다. 작은 불빛은 어둠을 밝혀 줍니다. 믿음의 불빛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려움은 조심해야 하지만 무서워 할 것은 아닙니다. 행동은 두려움을 벗어나는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1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결핍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미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시간, 영성체가 얼마나 은혜로운 선물인지를 절절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사제들은 신자 없는 미사를 지내면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얼마나 풍요롭고 은혜로운 것인지를 절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을 잃어버리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도 지난 1년은 결핍의 시간이었습니다. 성지순례도 취소되었습니다. 어렵게 약속을 잡았던 신문홍보도 취소되었습니다. 사순특강도 취소되었습니다. 매달 결산을 하면서 늘어나는 손실에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러나 동료사제들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텃밭을 가꾸면서 결실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줌으로 강의를 시작하였고, 회의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분명 불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녀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명단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넣으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나의 이름을 기억하심을 믿습니다. 또한, 체온을 측정하면서, 내 마음 안에 사랑의 온도는 얼마나 될지 헤아려 봅니다. 손 소독제로 손을 닦으면서 하느님 앞에는 깨끗한 손, 빈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했는지, 과식 과음했는지를 반성하면서 말을 줄이고, 덜 먹고 덜 마시기를 다짐해봅니다. 성당에 들어가서 정해진 자리에 앉으면서 하느님이 내게 정해주신 자리를 찾았는지 성찰해봅니다. 사회적 거리를 두기 위해 띄엄띄엄 앉으면서, 내 이웃 사람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해주었는지 반성해봅니다.”
오늘의 제 2독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풀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의 억울함을 서로 풀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 시켜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화해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백신은 공공재로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를 비롯해서 많은 교회가 교황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개발한 백신을 한국에서 생산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산된 백신이 공공재로서 모두에게 나누어지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조심하면서, 가진 것을 나눈다면 곧 일상의 삶으로 돌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