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세상은 온통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 범위를 좁혀 K-리그를 들여다봐도 수원 차범근 감독의 사퇴라는 폭탄급 이슈에 모두가 눈과 귀를 집중했다. 월드컵 개막과 스타 감독의 사퇴로 흥분과 혼란이 더해졌던 이 시기, 우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축구인과 조용하고도 쓸쓸한 작별을 했다. 바로 인천유나이티드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페트코비치 감독(왼쪽)은 항상 인자한 미소를 보여줬다. ⓒ인천유나이티드
‘진짜 프로’ 페트코비치
페트코비치 감독이 인천을 떠난 이유는 성적 부진도 아니고 계약상의 문제도 아니었다. 슬프게도 그가 K-리그와 인천을 떠난 이유는 부인의 건강 때문이었다. 페트코비치 감독의 부인은 현재 고향인 세르비아에서 암과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페트코비치 감독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더 이상 축구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진짜 프로다웠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끝까지 인천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난 3월 29일 부인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잠시 고향으로 날아갔던 그는 다음달 4일 열리는 전북과의 경기에서는 벤치에 앉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모두가 김봉길 코치와 블라도 코치가 함께 팀을 지휘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연패에 빠져 있던 선수단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선수단에는 잠시 출국하는 이유를 알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전북과의 경기가 열리기 바로 전날 페트코비치 감독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구단 프런트에게 말했다. “일이 잘 풀렸다. 다행히 아내의 수술이 잘 됐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중요한 전북전 준비에 들어갔다.
인천의 기적 같은 연승
그는 전북과의 경기가 끝난 뒤 질문을 던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일이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정말 힘든 시기였다. 하늘이 도와 여기 다시 올 수 있었다. 집에서는 가장이지만 팀에서는 감독이다. 하루빨리 해결하고 돌아오는 게 인천에서의 나의 역할이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그 누구에게도 부인의 암투병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는 털어놓으면 모두가 함께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일을 바보처럼 혼자서 안고 있었다.
선수단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암도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라 그리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페트코비치 감독도 선수단 앞에서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무엇보다 연패를 거듭하고 있는 선수단의 승리가 중요한 시기여서 모두들 축구에만 집중했다. 인천은 이때까지 개막 후 2연승을 달린 뒤 무려 5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천은 이때부터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아시아 챔피언’ 포항을 4-0으로 대파하더니 이후 무려 4승 1무라는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 5경기 동안 10골을 넣고 단 두 골을 내줬다. 인천의 염원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꿈만은 아닌듯 보였다. 인천은 이렇게 두려울 것 없는 팀으로 변모했다. 페트코비치 감독도 항상 웃는 얼굴도 선수들을 다독였다.
오프시즌을 맞아 인천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페트코비치 감독과 선수단의 모습. ⓒ연합뉴스
외로운 감독, 슬픈 감독, 바보 같은 감독
하지만 페트코비치 감독의 환한 얼굴은 선수들을 위한 연기였다. 그의 부인은 고향에서 여전히 암과 싸우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부인의 유방암이 또다시 재발한 것이었다. 자칫하면 상승세를 탄 선수단에 피해를 끼칠까봐 이 같은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는 머나먼 이국에서 다른 피부와 다른 눈, 다른 피를 가진 이들과 함께 승리를 위해 준비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
결국 그는 부인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어려운 판단을 내렸다. 지난 8일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자진 사임하게 된 것이다. 정리할 일들이 많았지만 부인의 병세가 심각해 이튿날 곧바로 세르비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두가 월드컵 개막과 차범근 감독의 사퇴에 집중한 사이 K-리그의 훌륭한 한 감독은 이렇게 쓸쓸히 작별을 고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인천을 떠나면서도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배려했다. “제가 떠나는 걸 선수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선수들은 휴가를 즐겨야죠.” 그는 월드컵 휴식기를 맞아 휴가 중인 선수들이 혹시 휴가를 편히 즐기지 못할까봐 자신의 사퇴와 출국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구단 프런트에게 당부했다. 당시 선수들은 2월부터 이어진 숨가쁜 K-리그 일정을 잠시 접고 꿀맛 같은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페트코비치 감독과 마지막을 함께한 선수들은 이 추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페트코비치 감독의 출국 직전 모습. ⓒ인천유나이티드
아쉽고도 슬픈 작별
그런데 몇몇 선수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후반기에는 더 멋진 경기를 해보자”고 함께 약속했던 감독이 인사도 없이 떠날 상황에 놓이자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인천공항에 모였다. 휴가를 맞아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선수들은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했다. 주장 전재호의 연락을 받고 유병수와 강수일 등이 급히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만난 페트코비치 감독은 마지막까지도 아버지 같은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유병수에게는 “논스톱으로 패스하는 걸 줄이고 플레이 스타일상 부상이 많을지도 모르니 항상 부상 조심하라”면서 “내가 항상 하는 이 이야기를 잘 새기면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내가 세르비아 가서도 너한테 전화할 테니 전화 꼭 받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강수일에게도 아버지처럼 말을 건넸다. “지난 경기에서 왜 골을 넣지 못했느냐”고 웃으며 말문을 연 페트코치비 감독은 “항상 널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주시는 어머님께 안부 전해드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버지였고 친구였다. 그는 공항에 나온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고 마지막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인천의 몇몇 선수들은 그가 떠난 뒤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항상 선수들을 아버지처럼 대했다. ⓒ인천유나이티드
‘아버지’ 페트코비치
이방인 페트코비치 감독이 떠나는 날 선수들이 휴가를 포기하고 공항에 나온 이유는 평소 자상한 성격의 페트코비치 감독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평소 감독의 한 마디가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철학을 가진 그는 공식 석상에서 선수 개인에 대한 칭찬 혹은 질책을 철저히 자제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선수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지난 3월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한덕희와 장원석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아무런 사전 예고와 통보 없이 방문한 일화는 가슴 뭉클하다. 통역만 대동하고 조용히 문병을 다녀왔다는 소식은 다른 선수들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한덕희와 장원석은 감독의 깜짝 방문에 놀랐다.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선수들을 직접 문병 온 감독은 페트코비치 감독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가슴 따뜻한 말을 전했다. “선수들이 부상당해 누워있을 때가 가장 힘든 시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라운드에 있어야할 축구 선수가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부상을 떨치는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될까 해서 병원에 다녀왔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는 무뚝뚝한 감독이었지만 사적으로는 한없이 자상한 어른이었다.
유병수는 페트코비치 감독을 떠올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정말 훈련장에서는 친구 같은 분이셨어요. 다가가 먼저 장난을 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감독님이었어요. 또한 감독님께서 항상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셔서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페트코비치 감독은 유병수가 맹활약하던 지난 시즌에도 말을 아끼더니 이번 시즌 유병수가 부진할 때 역시 별다른 말없이 그를 출전 명단에 꾸준히 올려 부진을 벗어나게 했다.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믿음 축구’의 단적인 예다.
그가 언젠가는 다시 K-리그로 돌아와 지금껏 보여준 인천의 ‘짠물 축구’를 이어가길 바란다. ⓒ인천유나이티드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페트코비치 감독은 또 자신만의 뚜렷한 축구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누가 봐도 명백한 오심이라 할지라도 절대 항의를 하지 않는다. “항의를 한다고 판정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심판은 심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경기는 상대팀 선수와 하는 것이지 심판과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K-리그에 잦은 판정 시비가 있었고 인천도 여러 피해자 중 한 팀이었지만 그는 심판 판정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닫았다.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당시 분리 독립 전이었던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화려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버리고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시켜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끈 장본인 페트코비치 감독은 2009년 1월 인천 고문에서 정식 사령탑으로 임명돼 그 해 팀을 4년 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등 통산 20승17무15패로 K-리그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냈다. 이번 시즌에도 6승 1무 5패(승점 19점)로 6위라는 호성적을 거두고 있고 FA컵도 16강에 진출한 상태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아쉽게도 K-리그를 떠났다. 하지만 그의 지도력이나 인간적인 면모는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일하면서도 우선적으로 가족을 사랑할 줄 아는 ‘뜨거운 남자’ 페트코비치 감독이 훗날 건강을 되찾은 부인과 함께 웃으며 K-리그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인천 구단에 문의한 결과 페트코비치 감독은 부인의 병원비와 병간호에 좋은 조건을 제시한 알 아흘리(카타르)와 어제 계약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페트코비치 감독이 떠나기 전 미리 인천 구단과 상의된 내용이었고 어제 알 아흘리 구단과 계약을 마쳤다고 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페트코비치 감독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감독을 보내야했던 인천 구단 모두에게 앞으로 행복한 가득하길 바랍니다.
인천의 김석현 부단장은 '스포탈코리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바로 감독직을 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렇게 떠나고 바로 가서 감독을 맡는다면 우리도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부인의 몸 상태와 관련된 사정을 충분히 아니까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로 돌볼 사람이 없는 걸로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첫댓글 알 알리에서 화이팅~ ^^
부인이 알 알리에서 치료중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천 떠나기전 구단과 확인된내용이였고 병원비,병간호에 적극적협조를 받아 계약했다네요/// 인천구단도 몰르고있다 배반당한게 아니라 사전에 다 확인된거...ㅣ
알 알리 돋네 ..... 일단 윤곽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기 전 까지 기다렸다가.. 완벽해지면 포풍처럼 까야지... 지금은 일단 보류..
이하 김현회 기자가 직접 해당 칼럼에 단 댓글이라 합니다.
인천 구단에 문의한 결과 페트코비치 감독은 부인의 병원비와 병간호에 좋은 조건을 제시한 알 아흘리(카타르)와 어제 계약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페트코비치 감독이 떠나기 전 미리 인천 구단과 상의된 내용이었고 어제 알 아흘리 구단과 계약을 마쳤다고 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페트코비치 감독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감독을 보내야했던 인천 구단 모두에게 앞으로 행복한 가득하길 바랍니다.
다행이군요 역시 페트코비치감독님이 우릴 배신하실 분은 결코 아니죠~!!! 부디 부인되시는분의 병이 완치되고 알 아흘리에서 호성적거두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독님..
인천 구단과 합의 하에 간거라면 별 문제 없는거네요. 부인의 쾌유를 빕니다.
다른 기사에는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인천의 김석현 부단장은 '스포탈코리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바로 감독직을 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렇게 떠나고 바로 가서 감독을 맡는다면 우리도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부인의 몸 상태와 관련된 사정을 충분히 아니까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로 돌볼 사람이 없는 걸로 안다.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글쎄요 김현회 기자가 직접 문의를 해서 얻은 답변을 믿는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요즘 기자들은 믿을수가 없어요
이어 "부인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장소(카타르)를 고른 게 아닌가 싶다. 유럽은 치료비가 너무 비싸고 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지 않다. 부인 근처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선정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적이 있다"라며 페트코비치 감독이 카타르를 선택한 배경을 추측했다.
한편 김석현 부단장은 신임 감독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한 채 "브라도 라드마노비치 코치는 인천에 남는다. 남은 코치진으로 후반기를 치를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파리아스에 이어서 2번째군요. K리그 감독 뺏어간건... 파리아스때도 연봉 지급 밀렸다던데 페트코비치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려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