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절. 흑백과 칼라가 공존했었다.
칼라의 탄생으로 흑백은 나날이 그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듯 여전히
대다수의 사랑 속에 있던 시절.
"야~ 너거 둘이 그림 좋네. 한 장 박아라. 싸게 해 준다."
사진에 나름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친구 섭이는
'올림푸스 펜' 사진기 하나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우리들은 부지런히 사진 찍힐 친구들을
섭외하고 다녔다.
"우린 사진 안 찍을란다..."
"야들이 지금 뭐라 카노? 고딩 마지막 소풍 아이가~
안 찍어 후회 말고 찍어서 보람 찾자~"
갖은 감언이설로 친구들을 꼬드겨서 사진사 섭이를
부르면 섭이는 득달같이 달려와 사진을 찍었다.
"자~ 폼 좋고. 활짝 웃어봐라~ 하나.. 둘.. 셋!"
"야~ 내 독사진 한 장 박아 도고."
"손님, 독사진은 사절입니다~"
"와?"
"짜식이 쏠로틱하게 이런데 와서도 혼자 찾네.
지발 친구들과 좀 어울려 살아라 인마야~"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가을 소풍을 앞두고
여섯 명의 단짝 패거리가 모였다.
그날 모의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공짜로 우리들의 마지막 소풍을
칼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을까?>였다.
총기 만발하던 시절,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속출하고 결국 합의된 결론은...
친구들에게는 흑백 사진을.
우리들은 공짜로 칼라사진을.
흑백 필름 3 롤을 찍어서 팔면, 사진기 빌리는 값과
우리들 칼라 사진 값을 제하고도 약간 더 돈이
남으리라는 계산.
수학 잘하는 섭이와 기호가 다시 계산을 해봐도
분명히 남는다는 검산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Go~
섭이를 제외한 다섯은 바람잡이와 영업팀.
작전명은,
<흑백과 칼라 그 혼돈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작전의 확실한 성공을 위하여...
솔로 사진은 No!
두 명은 기본, 5명이면 제일 좋고,
단체라면 넙죽 큰절 한번 해주자.
한 컷의 필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담아라~
우리들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알다시피 그 당시 고3 소풍이야 11시만 넘으면
파장 분위기. 우리 여섯은 잽싸게 마무리하고
대구역으로 이동, 김천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들의 대장, 용기가 준비해 온 계란말이 밥을
기차 맨 뒷칸 난간에 앉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우리들의 성공을 자축하는 맥주도 한잔씩. ㅎ
우리들의 대장이 그냥 대장일 리가 없지.
용기가 객실을 오가며 여고생 물색에 나섰지만
평일 그 시간에 기차를 타고 다니는 여학생은
없었고, 빈손으로 털래털래 돌아와도 우린 좋았다.
우리들의 목적지는 김천 직지사.
버스를 내려 직지사를 향하던 그 길에 가득
피어있던 코스모스들의 잔치를 어찌 잊으랴.
우리들은 19세의 시인들이 되었다가, 그 길을
미친 듯이 달려가는 소년들이 되었다가...
허허 하하~ 호탕하게 웃는 호연지기들을 가슴에
나누어 품었다.
물론 그 순간들이 칼라로 지금까지 고스란히
사진첩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두말할 일이 아니다.
직지사의 천불상.
"저 천불상 속에 꼬추 나와있는 동자상 찾아내면
아들 낳는다더라~"
"그래???"
다들 어렸지만 대를 이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꼬추 달린 동자상 찾느라고 눈이 빛나고,
그 얼굴들에 담겼던 웃음들은 천 개의 동자상들이
빚어내는 웃음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절과 절 주위를 돌며 신나게 놀다가 해거름이
되어서야 대구로 향한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거 잘 가지고 있제?" 용기가 물었다.
"그럼~ 흐흐흐. 우리들 재산 아이가~"
더듬거리며 뭘 찾던 섭이의 비명.
"어??? 없다!!!"
아니 이럴 수가!
운명의 신이 마지막 순간에 등을 돌리시다니...
정신없이 놀다 보니 그 귀한 흑백필름과 사진관에서
빌려온 사진기 케이스를 직지사 약수터 부근에
놔두고 와 버렸다네. 그나마 다행인 건 손에 들고
다니던 사진기와 그 안에 담긴 우리들의 칼라
사진들은 남아 있었다는 것. 에휴...
그다음 날, 우리들은 이 반 저 반 돌아다니며 우리를
믿고 사진 찍혀준 친구들에게 친구들의 귀중한
추억들을 김천 직지사 약수터에 두고 왔음을
이실직고했고, 하루 내내 친구들의 집단 폭력을
피해 도망 다녔다.
공짜로 칼라 추억을 간직하고자 했던 우리들의
잔머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케이스 값은 십시일반 힘을 합해 갚았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마지막 소풍이었다.
휴일 집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보는데 이제는
접착력이 다 떨어져 얇은 사진 한 장 붙잡지 못하고
툭 흘려 버리는, 그 사진들 중 하나를 보다가...
지나갔지만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는 그날 그 추억을
되돌아 본다.
첫댓글
위로 형과 누님들이 많은 마음자리님은
일찍 사회성이 길러진 모습입니다.
고딩 마지막 소풍의 기억을 칼러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자리님의 칼러에 대한
유혹이라 할까요.
69년도에 제 결혼 사진은
흑백과 칼러의 두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은 못 남겼어도
오래된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그시절 그때가.^^
그땐 상상도 주로 흑백영화처럼
흑백으로 떠올리곤 했는데, 칼러가
나오면서 세상이 새로운 색으로
입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ㅎ
옛 학창시절과 직지사 얘기 덕분에 저도 근무하면서
추억을 더듬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집에 가면 옛날 지리산 다니면서 찍은 흑백사진과
학교 때 사진을 찾아보아야겠어요.
그나저나 여섯 명 중 오데 서있는 이가 마음님인교?
제 느낌으로는 사진의 아랫쪽 오른쪽 같은데... ^^
옛날 잃어버린 그 필름에 담긴 사진은 맘속에 더 오래
남아 간직되겠네요.
ㅎㅎ 사진 뒷줄 중간, 안경 쓴 녀석이
그때의 접니다. ㅎ
덕분에 이런 추억의 사진이 남았군요.
이제는 갈 수 없는 풋풋한 옛시절이 늘 그립습니다.
마음은 나이 먹을 줄 모르니
언제든 두레박 던져 퍼올리면
그 시절 그 물맛을 볼 수 있습니다. ㅎ
와우~~
참 재미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대구역에서 기차 타면 김천까지
1시간 걸리지요.
잔머리 굴리다가 힘든 일도 겪었지만
그 시절이 아니면 그런 잔머리도
못 굴리겠죠.ㅎ
저도 친구들이랑 직지사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눈물 날만큼 정겨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땐 친구들과 같이 기차 타고 어디 가는 것이 왜 그렇게 재미가 있던지... 금요일 오후에 대구 근교의 청도 왜관 구미... 생각나는대로 정해서 우루루 갔다가 오곤 했습니다.
마음자리님은 모범생 같아 보이는데요 ? ㅎㅎ
저는 고 2때 수학여행에 사진관에서 사진기를 빌리고
필름도 사갔는데 돌아와서 현상 하려고 보니
사진이 하나도 안 찍혔더라고요 .
우리 조직 (사계절 )이 폭망이었습니다 .
마음자리님 덕택에 그 시절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
모범생 아니고 장난기가 많았지요.
아녜스님이 조직도 있었어요?
'사계절' ㅎㅎ 간지가 납니다.
아련한 추억의 한 자락이군요.
그래도 아직 산업현장에서 열심이시니
보람 행복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돌아 볼 추억들도 자주 떠오릅니다.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소풍가서도 카메라가 없어서 남에게 빌붙어 찍던 시절이었습니다. 고3 졸업사진을 졸업식장 사진사에게 선금주고 가족들과 찍고 동대문근처 사진관을 찾아가니 그런 사진관은 없는 사기였습니다.
이미 이런 사기꾼은 천벌을 받고 객사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어린시절 추억을 훔쳐간 놈이 명대로 살겠습니까?
아... 생각납니다.
관광지에 그런 사기꾼들이 많았어요.
버젓이 '사진' 완장까지 차고 다니면서.
명대로 못 살지요.
다 사라졌을 겁니다. ㅎㅎ
사진에서 짐작 했던분이
마음자리님 맞으시군요
글에서 느낀 이미지랑 같으시네요 ㅎ
옛날엔 소풍갈때 사진사가
따라 오기도 했지요
저는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옛날 사진이 남은게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저 작은 사진에서도 이미지가 느껴집니까? ㅎ
사진이 있으면 회상하기가 훨씬 쉬운데... 아쉽겠어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제가 중3이던 76년까지는 흑백 사진을 주로 찍었던 것 같고
77년 고1 때부터는 칼라 사진을 주로 찍었던 것 같습니다.
78년 고2 때 경주 수학 여행 사진은 칼라예요.
흑백과 칼라 사진에 얽힌 추억담 재미나게 읽으며 제 추억도 더듬어봤네요. ^^
우린 참 많은 혼동의 시기를 겪으며 살았어요.
흑백과 컬러도 그랬고,
라디오에서 티브이로 넘어올 때도,
기차의 변천사,
공중 전화에서 휴대폰까지...
추억이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