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증인들 까페 바로가기
청년 예수를 알고 싶다는 그대에게
꽃피는 걸 시샘해서 바람 끝이 제법 매섭더니
급기야 며칠 전엔 영동산간 지역,
아름다운 동해로 통하는
미시령에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왠지 봄이 더욱 가까워졌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벽이 오기 전의 어둠이 한층 깊듯이,
봄이 오기 전 추위는
더욱 차갑게 느껴지겠기 때문입니다.
내 유년 시절의 생일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다는
그대의 답신을 대하면서
어느덧 어릴적 친구를 대하는 양 깊은 우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사람
- 인도로 건너가 부처의 도(道)를 익혔다는 그가
과연 자신의 삶을 평안으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그대의 질문 속에서 세상에 회자되는 근거없는 추리가
얼마나 우리의 생각을 편협한 고리로 엮어 매어 버리는지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자료를 들어 그대가 알고있는
지식을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럴만한 식견도 제게는 없으려니와
그 일에 시간을 내어놓을 만큼
심각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큰 진리(大道)를 깨우쳤다는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가 '빈손으로 왔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사상으로
인생의 허무를 말했다면,
그보다 300여 년이나 앞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와 같은 부귀영화를
누린 적이 없다는 솔로몬이 이미 '전도서'를 통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하는
인생의 무가치성과 한계성을 노래하였다고 하는
사실은 저로 하여금 상쾌하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석가모니의 설법(說法)으로는,
고난의 바다와 같은 이 인생은,
오직 번뇌를 버리고 수행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다다라야만 도(道)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지고한 철학이지만 솔로몬은
그 아버지 다윗 왕과 그 조상을 통해서 약속되어온
하나님의 존재와 그 은총에 의지하는 것만이
인생을 의미있고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다는 확실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하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까지도
지혜의 왕으로 인정하는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도서3:11),
즉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심어주셨다고 말하면서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시편14:1)
결국 이 세상의 종교와 철학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생들의 몸부림,
신의 존재를 사모하는 인간정신의 발로가 아닐지 싶습니다.
지난 서신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듯이,
어떤 이는 신의 존재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억측을 부리기도 하지만,
우리의 짧은 두뇌로 설명할 수 있고
이해시킬 수 있는 존재라면
이미 신(神)이 아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그런 존재가 신(神)이라면
난 더 이상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겠습니다.
혹시 아시는지요.
마하트마 간디,
타고르와 함께 인도의 삼대 성자로 불리우는 썬다싱을.
티벳의 라마승으로부터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맞이하면서도
담요 두 장과 성경책 한 권을 들고
히말라야를 열 두 번이나 넘은 후,
33세의 나이에, 마치 예수님의 뒤를 따르듯이
히말라야의 설봉에서 사라진 그가 남긴 말은 유명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도덕적으로는 양심이라는 법을 통해서
인간에게 내면화되어있고 자연을 통해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섭리로 나타난다.
난 하나님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분과의 거리는 무한과 유한의 거리인데
어찌 참람하게 하나님을 보자고 할 것인가,
그분은 단지 성경을 통해서 얻는 믿음이 있는 그곳에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보이실 뿐이다."
쓰다보니 방향이 많이 어긋났군요.
청년 예수에 대해 듣고 싶고
알고 싶고 만나고 싶다고 하셨던가요.
기왕 썬다싱의 말을 예로 들었으니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학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낀 것이지만
무얼 좀 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를 말해주는데 한계가 있다.
그들은 이념으로 분석하고 논리로 파헤치며
아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나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해
쉽게 승복하지 않으려 든다.
농부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려들 것이나,
지식인들은 생명인 진리를 보고도 사기를 주저한다.
단절의 강, 하나님과 죄 많은 인생 사이에 가로놓인
그 강의 가교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건만
아무도 그 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보리수나무 밑에서
35년의 생애를 통해 도(道)를 이루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도(道) 곧 진리 자체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내가 세상을 창조하였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모든 범신론과 무신론과 진화론을 한 마디로 파기하셨듯이,
오직 예수님만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곧 도(道)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청년 예수, 곧 그는 죽음을 이긴 부활이요,
어둠을 이긴 참 빛이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지은 바 없는 창조주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66권이 말하는 그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한 것일진대(요5:39)
어찌 단 몇 줄의 짧은 글로
예수를 그대에게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쓸 수 없다고 누군가 표현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 예수를 표현하고 싶어
나 스스로 바울이 되어 시를 쓴 적이 있어,
짧게 발췌하여 적어보내는 것으로
그대의 물음에 갈음할까 합니다.
참, 바울을 알고 계신지요,
유대인으로서, 바리새인으로서
최고의 학문과 지성과 열심을 겸비한 학자,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의인으로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살았던 당대의 최고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부인하고 배척하다가
회심한 사건은 역사가 증명하는 위대한 사건이지요.
"나는 지금 내 가슴에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 나의 비밀은 어떤 청년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에 대한 소문이 너무 자자해서
어떤 것이 옳은 건지 혼란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남편을 다섯이나 둔 창녀를,
그것도 나처럼 경건한 이로서는 밟기도 싫어하는
사마리아 땅을 찾아가기도 하고 40년이나 중풍병을 앓고있는
쓸모 없는 인간을 찾아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이란 시골뜨기 출신인 그가 감히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말할 때는
가말리엘 문하의 최고 학자인 나로서는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그날도 나는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 예수라 불리우는
그 알 수 없는 청년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고독하나 정의롭게, 사랑과 용서를 말하나
당당하게 살다간 그 청년의 찬란한 빛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온 누리에 빛나는 그 빛,
그는 내가 아는 나사렛의 청년이 아니라 빛이었고
그는 내가 핍박하던 죄인이 아니라
내가 섬기는 바로 그 하나님이었습니다. ......,
이 비밀은 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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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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