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은 서양식 턱시도와 중산모를 빌려 착용한 채 베트남 독립 청원서를 가지고 회의장으로 윌슨과 미국 대표단을 찾아갔다. 파리평화회의에 참가한 대부분의 비서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호찌민도 해방은 식민 통치 세력의 선심이 아니라 무장 투쟁을 통해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 역,『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들녘, 2015, p.88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빈 해외 정상인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방한 첫 일정은 서울 삼청동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열린 호찌민 동상 제막식이었다. 그가 동상을 덮은 금성홍기(베트남국기)를 잡아 당기자 긴 턱수염을 한 호찌민의 흉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찌민 주석'이라는
이름과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글귀가 한글 궁서체로 박혀 있었다. 호찌민 흉상이나 초상화는 베트남을 여행하면 흔하고, 해외 정상들도 어김없이 그의 묘소를 찾아 헌화한다. 하지만 국제법상 외국이긴 해도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 호찌민 흉상의 모습은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호찌민이 누구인가. 베트남인들에겐 나라의 기틀과 통일의 기반을 다진 국부이자 영웅이다. 또한 단일 민족 간 체제 경쟁을 무력으로 끝낸 공산 지도자다.
지금은 과거사가 됐지만, 1964년 부터 베트남에 파병한 국군에 호찌민은 적군 최고 지휘관이었다. 2025년은 베트남전 종전, 통일 반세기가 되는 해이자 공화국 건국 80주년 되는 해. 통일 후 도시 이름이 호찌민에게 헌정된 엣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 함락일인 지난 4월 30일부터 공화국 수립일인 9월 2일까지 경축 행사가 줄줄이 열린다.
호찌민이 이끄는 공산 세력에 패망한 남베트남은 전쟁 초기엔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나 전력상 우위는 베트콩을 앞세운 게릴라전, 남베트남 고정 간첩과 이적 세력이 주도한 반미 선전 선동, 국제사회를 상대로 펼친 반전,평화, 여론전에 점점 허물어졌다.
파리평화협정 체결로 미군이 빠져나간 뒤 평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병합했다. 국민을 등 돌리게 만든 남베트남 위정자들의 무능과 부패, 분열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터줬다.
주한 베트남 대사관은 패망한 남베트남 대사 관저 자리에 들어섰다. 이곳에 우뚝 선 호찌민 흉상과 그에 얽힌 베트남 현대사가 새 정부 출범 후
들려오는 어리둥절한 뉴스들과 엮여 선뜩하게 다가왔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 평화를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 때도 유지했던 대북 방송을 중단하고 전방 확성기를 걷어냈다.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미 연합훈련도 예정보다 축소했다. 방한 이튿날 또럼 서기장을 만난
이 대통령은 "베트남은 외국 군대와 싸워 이겨내고 통일을 이뤄낸 저력 있는 국가"라며 파월 국군 장병에겐 힐난으로 들릴법한 말을 했다.
월북해 6,25전쟁 때 북한군으로 참전한 뒤 중국 공산당 작곡가로 활동한 정율성 동상 복원을 그의 고향인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검토한다고 한다고 한다. 이런 국내 소식이 반세기 전 풍전등화였던 남베트남의 모습과 중첩된다면 과민 반응일까.
삼청동의 호찌민 동상에 예의를 갖춰 말하고 싶다.
"생전에 발휘한 적화통일의 신공(神功)까지 이 한반도에 가져오지는 마시라"고.
정지섭 조선일보 국제부 차장
https://youtu.be/yvPmViOiN9c?si=qfnEwMBbWR7mi503
첫댓글 위 글이 다음 정책에 위반 되는 글이라 제제 한다는 데
신문기사 내용을 다음에서 제재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되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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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사적인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네요.
왜 호치민 동상을
세워야만 하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이런 것이 실리외교 인듯싶어요
월남 파병으로 젊은이들 피 값으로 경제 부흥 마중물이 됐듯이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호찌민 동상 건립 하는데 반대할 수 없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