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쉼을 주는 광화문 글판
이관순의 손편지[85]
2019.12.12.(목)
광화문의 꽃‘교보 글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선 남산과 도시
한 중앙을 가로지르는 한강, 빌딩 숲 사이로 청아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청계천의 자연친화적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지요.
이들을 배경으로 광화문 네거리에 서면 더욱 환상적입니다.
파란 하늘을 이고 경복궁 뒤로 뻗어나간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빼어난 경관을 품은 곳이 광화문입니다. 도읍풍수로는 절창을
부를 만한 곳이지요.
광화문에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또 하나의 명품이 자리합니다.
교보빌딩 정면에 걸린 ‘글판’ 입니다. 철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이
석 달마다 글판은 새 글로 단장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새 얼굴을 내밀죠.
이제는 제법 세월의 더께까지 더해 서울 도심의 명물이 됐습니다.
내년이면 광화문 글판이 첫 선을 보인지 30년쯤 됩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는 서울을 찾을 때마다 첫 이미지로 교보빌딩을 꼽습니다.
거래처와 일이 크게 꼬여 상심할 때 광화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글판을
보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30년 가깝게 교보빌딩에 걸린 글판은 8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도 다릅니다. 삶의 좌표를 일깨우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젊은 날의 추억, 삶의 위로와 격려도 받습니다. 글판은 길어야
석 줄 정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시나 글 중에서 임팩트한 구절을
주로 따옵니다.
세상이 변할 때는 글판도 따라갑니다. IMF 환란 때, 계절이 바뀔 때,
세월의 굽이마다 움츠러든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세상을 비관했던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기도 하고,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용기를 주는 등
때로는 공감을 안기고, 가슴에 풍경을 달아주기도 합니다.
수년 전 교보생명이 그동안 올린 글판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풀꽃 시인 나태주의 시 ‘풀꽃’이 1위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7년 전 봄에 올려 진 ‘풀꽃’은 시의 전문인 석 줄 그대로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순간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음을 알리고, 결구는
눈이 번적 뜨일 만큼 아름답습니다. 시작활동 50년의 나태주는 감성적
언어로 쇠락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마음마다 꽃다발을 안기는 서천의
향토시인입니다.
광화문에는 하루 백만 명, 수십만 대 차가 오가면서 팬도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외국인도 찾아보는 문화 상징물이 되었지요. 이 영향으로 기관과
기업들도 빌딩에 글들을 내걸고, 각종 화장실, 엘리베이터, 지금은 지하철
안전문에도 시가 보입니다. 광화문 글판의 향기가 퍼진 셈이죠. 오늘도
광화문에 가면 막 피어난 꽃잎에서 나는 향긋한 글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 이관순(소설가, 다음 이관순의 손편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대추가 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장석주)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마음/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첫댓글 따뜻한 사랑 많이 나누어 추위에 행복한 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