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거룩해지는 길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홀로 푸르고 푸르다는 뜻으로, 높은 절개가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한국 사람 소나무 사랑이 유별난 게 이 말 때문일지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게 변해도 높은 산 위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쩌면 바리사이들이 생각하는 거룩함이 이런 것과 비슷했을지 모른다. 부정 타지 않으려고 깨끗해지려고 부정한 이들과 말도 섞지 않았으니 말이다.
반면에 거룩하신 구세주 예수님은 더러운 이들, 죄인들과 어울리셨고 그런 이들이 그분을 따랐다고 복음서는 전한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2,15)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도 그분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죄인들 사이에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내려다보시며 기뻐하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예수님은 당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 아버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지 아주 잘 아셨다.
그리스도인, 하느님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이 거룩하신 거처럼 거룩해져야 한다.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죄짓게 하는 모든 것을 끊어버린다. 바리사이들처럼 철저하고 냉정하게 규칙적으로 자신을 그런 것들과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거룩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게 그렇게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겉으로는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이상하게도 속은 차가워진다. 그 안에는 하느님이 머무르실 자리가 없기 때문일 거다. 하느님은 사랑이고, 연민이 하느님 사랑과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산 바리사이들 마음은 깨끗해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두고 예수님은 그릇만 열심히 닦지 말고 마음을 그렇게 닦으라고 가르치셨다.(마태 23,26) 그들이 돈을 좋아한다는 것도 아셨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4-15)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비우면 채우신다. 영원한 생명을 간절히 바라며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 착실한 청년은 비울 수 없어 슬퍼하며 돌아갔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은 좋은 스승이다. 스님이 독야청청하셨다면, 추기경님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두 분의 모범이 다 필요하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초인적인 수련이 아니라 연민으로 흘리는 눈물이고 또 그 실천이다. 열심히 살아 마음이 차가워지느니 잘 살지 못해도 마음이 따뜻한 게 낫다.
예수님, 오늘 기념하는 주님의 종 안토니오 성인은 성경 말씀을 실제로 주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말씀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가진 걸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도 주고 주님을 따르려고 사막으로 갔습니다. 제게도 주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