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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울림 전시회를 '스페셜 도슨트' 없이 다녀오신 분들, 혹은 다녀오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하울림의 스토리는 7집 속 여정을 떠나기 전 소녀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술해 주고 있습니다.
'하울림 : 아림의 시간 Story book'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고 오신 후에 다시 해당 글로 돌아와 현재 글을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글이 조금이나마
'GROWTH_THEORY_:_Final_Edition'
앨범 몰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Intro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무색의 구름은 나를 소리가 들려오던
숲 앞에 데려다 놓았다.
한 소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손짓했다.
이 숲에 들어선다면
과거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무의식 중에 자각하면서도
한 발, 내딛어본다.
Intro 도슨트 :
하울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번 전시의 음악과 스토리를 맡은 윤하입니다. 오늘은 감독판 도슨트로 좀 더 세세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이 숲의 가이드로써 함께 하고자 합니다. '하울림'은 늑대의 울음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하울링과 소리의 울림 그리고 수풀 림(林) 자를 합쳐 팀보타가 만들어낸 고유의 합성어입니다.
스토리는 무색의 구름을 유영하던 일상에서 시작되어 하울림의 정령들이 여러분을 잠식하여 이곳으로 이끌게 됩니다. 정령은 생김새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감각이 민감하게 발달되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은 잠식되어 있는 동안 그들의 능력을 함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의 *전사와 정령의 모습은 모든 전시의 관람이 끝난 후 샵으로 이동하시기 전 추유진 작가의 컨셉아트 스케치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본인께서 어떤 정령에 잠식되어 여정을 하셨는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사(轉寫) : 글이나 그림 따위를 옮기어 베낌.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전사' 中 -
Chapter 1. 푸른 그을음
정신없이 소녀를 따라가다
문득 서늘함을 느껴
잠시 멈추어 몸을 살핀다.
푸른 그을음이 잔뜩 묻어있다.
깊은 숲이 한 번 더 울렸다.
나는 열쇠를 쥐듯
회색 반점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Chapter 1. 도슨트 :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립니다.
아주 자세히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노이즈와 같은 소리,
그것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숲의 입구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작은 소녀가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총총 금세 숲 속으로 달아나 버렸네요.
이 소녀를 따라 숲으로의 여정을 떠나보시면 되겠습니다.
1관은 *차임과 같은 벨 소리의 테마가 주를 이루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리버스 노이즈로 표현되었습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메아리 같기도 합니다. 소리와 빛에 이끌려 두 갈래로 난 길로 접어들면 왼쪽으로 두려움으로 인해 솟아난 땅이 보입니다. 푸른 그을음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1관의 주제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제 막 태어난 생각들이 정돈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외부 세계와 교류하려 할 때 생겨나는 현상으로, 회색 반점이 생기는 특징을 가진다'라고 설정하였습니다.
미지의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다음관, 회색의 시간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차임 : 서양의 타악기. 여러 음정을 가진 둥근 금속관을 쳐서 소리내는 악기. - 출처 : 나무위키 튜블러 벨 문서 中 축약 -
**리버스 노이즈 : 녹음된 음을 역으로 재생 하는 것.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용어해설 '리버스' 中 -
Chapter 2. 회색의 시간
습을 이루는 물방울이
이끼와 버섯 무리를 뚫고 나온 것인지
곧 스며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을 거친 과도한 밀도는
단단한 형태로 밀집했다.
저만치 멀어진 줄 알았던
소녀의 작은 손이 닿자
그것은 빛으로 물들며 문자들을 띄어냈다.
Chapter 2. 도슨트 :
매우 습하여 꽃과 열매가 보이지 않고 이끼와 버섯만이 우거진 늪의 숲. 모든 생명에는 물이 깃들어 있으나, 습기가 되는 순간 생명이 제한된 환경으로 변형됩니다. 버섯은 포자가 되어 날아와 진득하게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기에, '다음에는 다른 것이 자랄 수도 있는, 잠시 들렀다 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습기는 많은 생명을 다시금 잠들게 하지만, 이끼만큼은 습이 있는 동안만 머무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들 사이에 빛이 나는 큐브가 있습니다. 여섯 개의 큐브는 '소녀가 지난 여정에서 얻게 된 경험과 진리를 간직한 빛나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라앉을 듯이 무거운 숨과 몸을 이끌게 한 여러분만의 빛나는 큐브는 무엇이었나요? 아마 그건 이미 가지고 있던 힘과 용기였겠지만, 꽃과 열매가 맺히지 않는 곳에서의 발견은 기적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Chapter 3. 잿빛숲
빛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소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줄곧 신경 쓰였던 그을음은
어느새 더욱 짙은 잿빛이 되어 있었고,
붉고도 검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질식할 것 같은 파괴적인 건조함에 잔뜩 굳어버린 몸을
스스로 끌어당겨 웅크려 안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Chapter 3. 도슨트 :
빛이 나는 큐브를 뒤로한 채 걸어 나가면 질식할 것 같은 건조한 공기가 이어집니다. 몸을 무겁게 하던 습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고, 애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라버린 껍질이 즐비합니다. 회색 반점보다 조금 더 심화된 미지에 대한 잿빛 공포 속에서도 이것을 대면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숨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두려움 속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의심으로부터 피어나며, 마치 나만이 겪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잠시 의심합니다. 소녀는 그 작은 몸으로 이곳을 어떻게 벗어났을까? 과연 이 길을 이겨내고 간 것이 맞는지, 다른 지름길은 없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깊은 터널을 애써 공감하려 하면서도, 나의 절규와 비명은 아무도 모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몰래 들키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숨이 잿빛일 때, 그것에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 사실을요.
Chapter 4. 백색의 모습
바람이 응답했다.
백색 바람은 반가운 듯 주변을 돌며
짙게 엉겨있던 그을음을 떨어내고
그림자 없는 꽃봉오리를 만들었다.
다음에는 무엇이 올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미루고
지나치게 깨끗한 꽃봉오리 속에서
끝도 없이 머물고 싶어졌다.
Chapter 4. 도슨트 :
백색의 꽃봉오리는 탄생과 부화의 직전을 상징합니다. 백색은 경험에 의거한 진리를, 꽃봉오리는 미숙하고 설익은 상태를 표현합니다. 백색과 꽃봉오리는 반대의 방향성을 가지고 충돌합니다. 마치 탄생 직후에 모든 것을 깨우친 아이와 같은 모양새로 말이죠. 이상과 현실은 늘 충돌하지만, 때로는 적당한 곳에 머물며 다음 꿈을 꾸고 싶게 만들죠.
이상도 현실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몽글한 향이 피어나는 꽃봉오리에 푹 안기듯이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내려두고, 잠시 쉬어가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기대앉아 평화로운 백색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Chapter 5. 하울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미뤄왔던 의문들이 지독한 회색 반점을 퍼트렸다.
나는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떨어냈던 반점이 다시 붙어 불어나기 전에
어색하게 포근했던 백색의 꽃봉오리 전에
짙은 잿빛이 낳은 붉고도 검은 뿌리 전에
습을 이루는 물방울의 단단한 형태가 있었다.
Chapter 5. 도슨트 :
자, 그럼 다음 관으로 이동해 보시겠습니다. 신발을 벗고 입장하시기를 추천드리는 이유는
오감으로 전시를 만끽하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전시 제목과 같은 하울림관입니다.
지금껏 만나온 도형과 무형의 경험들이 재조립되는 과정을 형상화하였습니다. 길어진 큐브는 큐브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상태를, 바닥은 완전히 정립하기 전 재조립이 가능한 굳기 전의 상태로 마치 시멘트나 유화 물감과 같은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모자이크로 보이는 평면은 진리의 후부로 추정되는 것의 조각 모음을 뜻합니다.
감정과 생각들을 모두 펼쳐 놓고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 하울림 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앞서간 소녀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음을 나타내지만, 경험에는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제는 당신께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해도 되겠지요. 우리는 때때로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감정이나 생각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곤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평생 함께 나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인정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죠. 그때는 언제인가요? 그리고, 지나왔다는 이유로 들여다보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지신다면 소녀 역시 기뻐할 것입니다.
Chapter 6. 숲의 독백
소녀가 눈앞에 서있었다.
반가움은 의지하고 싶은 욕구를 동반했다.
혹시 이런 생각이 들키진 않았는지
가늠해 보고자 소녀를 보았지만
소녀는 오롯이 함께였다.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무색의 구름에 갇혀있던 모든 힘을 다해 소리를 냈다.
두 번째 울림이었다.
Chapter 6. 도슨트 :
스토리북 내에서는 이곳에서 소녀를 처음으로 가까이 마주하고 만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알아듣는 듯, 알아듣지 못하는 듯 빙긋 웃기만 하면서 말이죠. 성찰의 시간 끝에서 만나는 인연은 그만큼 특별하게 다가오고, 무언가 전과는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여러 생명과 여러 색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고통의 끝에 맞이하게 된 첫 얼굴, 그것은 소녀이면서 자신이기도 합니다.
민낯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노란빛으로 떠오르는 실망감이면서 곧 순수함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숲에 들어서며 들었던 하울링은 나의 목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시차를 지닌 경험은 타인의 경계를 허무는 진귀한 것이니까요.
당신께 가장 따뜻함을 전하는 빛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당신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기를 소녀와 윤하, 그리고 팀보타가 기도하겠습니다.
Chapter 7. 검붉은 그림자
울림의 출처를 깨닫자
그것만으로도 혼자 내딛는 걸음이 가벼워졌다.
출발할 때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잿빛에서 태어났던 붉은빛과
소녀에게 숨기고 싶었던 노란빛의 섞임이
체온으로 스며들었다.
모든 색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
Chapter 7. 도슨트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 여정에 동반되는 성장통이라면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늘 씩씩해 보이는 소녀 역시 한 번쯤은 그런 염세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아무리 투영해도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 검은 그림자가 붉은빛을 함께 띠기까지.
제7관 검붉은 그림자에서는 온전한 나의 빛으로 끌어안은 숲을 표현합니다. 두려움과 후회, 미지에 대한 불안과 마주하길 미뤄왔던 상처. 모든 색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뒤엉키고 섞여 자꾸만 새로운 색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나의 힘으로 빛을 뿜어낼 때. 마치 태양빛과 같이 뜨겁게 타올라 나의 생각과 감정이 혼합된 여러 색의 내가 결합되는 과정을 통해,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듯 나의 내면의 빛은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는지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Chapter 8. 터전의 숲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무수한 아상의 열거에도 모든 길은 이어져 왔다는 사실.
처음부터 한치의 망설일 것이 없었다.
그저 터전 그 안에 삶이 있다.
Chapter 8. 도슨트 :
터전의 숲, 최종관입니다. 이곳에서는 지난 도슨트에서 들려드렸던 스토리를 읊어드릴까 합니다.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무수한 아상의 열거에도 모든 길은 이어져 왔다는 사실.
순서는 언제나 내게 친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뒤엉키고 섞여 시작과 끝을 알아볼 수 없어도
돌아보면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퍼즐 조각과 같다.
세상이 빛을 선명하게 찾았을 때
비로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한치도 망설일 것이 없었다.
시야를 가렸던 무색의 구름도
지워지지 않던 회색 반점도
자꾸만 엉겨 붙던 푸른 그을음도
막무가내로 뿌리내리던 붉은 뿌리도
소녀가 알려주었던 백색의 기억도
감추고 싶었던 노란 감정도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터전 그 안에 삶이 있다.'
그럼 밖으로 이동하신 뒤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cookie 도슨트 :
작년 여름부터 준비해 온 전시의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감각을 통해, 스토리북을 통해, 이번 감독판 도슨트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전시를 즐겨주셨을 관객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소녀를 따라 마주하는 내면의 여정, 하울림에서 이런저런 가이던스를 만들어 보았지만, 전시의 특성상 난해하다 느끼는 분도 계실 거에요. 여러분께서 듣고 느끼시는 대로 자유로이 받아들여 주시고, 잠시나마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꿈꾸듯 유영하신다면 그것으로 저희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이를 이해하기 힘든 만큼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할애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입니다. 이 공간을 떠나시더라도 오늘처럼 아픔을 쌓아두지 않고 자주 직면하여 스스로 안아주실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하겠습니다.
'예술 그런거 별거 아니고 여러분의 터전과 삶이 예술입니다. 화이팅. 또 뵙겠습니다.'
Epilogue
언젠가 숲을 배회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끔 그곳에서 들었던 하울림을 듣는다.
도슨트로 스토리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면, 다시 한번 신비로운 숲속으로 떠나보셔도 좋을 겁니다.
숲 깊은 곳에서 새로운 울림이 들릴지 모를 일이죠.
'하울림 : 아림의 시간 Story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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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따라가보니까 전시회가 새록새록 떠올라요. 글에서 목소리와 쉼까지 읽히는 기분입니다. 저는 도슨트 없이 관람했는데 덕분에 더 다채롭게 관람한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하누나의 글은 완전히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상상하며 읽어나가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요.
도슨트 없이 하울림 보고 와서 속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덕분에 쭉 읽어보면서 전시 기억도 다시 생각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글에는 대단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