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부르면 부른 만큼 행복이 온다 /청화스님> 성자가 되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꿔가지고 빌려가지고 와서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이니까 이것을 가리고 있는 나쁜 버릇만 걷어내면 됩니다. 걷어내는 작업이 어렵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버릇 걷어내는 작업은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걷어내면 그만큼 우리한테 행복감이 오고 많이 걷어내면 또 그만큼 훨씬 더 풍족한 행복감이 우리한테 오는 것입니다.
염불해서 염불에 일념(一念)이 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외의 다른 이름도 무방합니다. 지장보살도 무방합니다. 부처님 이름은 다 신통합니다. 다 신통한 것인데, 이른바 부처님의 총대명사가 나무아미타불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쪽으로 우주의 인력(引力)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르면 부른 만큼 우리한테 행복이 옵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지으신 부처님의 명호에는 우주의 생명이 다 담겨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하면 우주생명과 같이 상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부처님 이름은 이름 자체가 불가사의하단 말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염불만 한다고 하면 얼마나 큰 공덕이 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학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도인 말 듣고 하는 그런 큰스님들도 하루에 나무아미타불 십만송(十萬頌)도 하고 오만송(五萬頌)도 하는, 그만큼 공덕이 큰 명호입니다.
우리한테 어떤 병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병도 역시 우리의 무지와 나쁜 버릇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처님 명호를 외워서 우리 마음이 일념이 되면 웬만한 병은 다 물러가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아, 내가 무던히도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는데 나한테는 단박에 공덕이 오지 않는다'고 의심할지 모르나, 그렇게 단박에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과거세에 지은 업이 있단 말입니다. 과거세에 지은 업이 상쇄가 됩니다. 금생에 공부를 별로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 업이 가벼운 분들은 보다 빨리 마음이 바꿔지겠지요.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염불을 하면 그때는 몸도 가벼워지고, 평소에 듣지 못하는 신묘(神妙)한 우주의 음(音)을 다 듣게 됩니다. 이른바 천상묘음(天上妙音)이란 말입니다. 천상 멜로디를 듣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더러는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는 신선한 광명도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주의 순수한 생명은 바로 광명이요 빛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명호도 모두가 다 빛에 관한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새겨서 풀이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한도 끝도 없는 우주에 가득 차 있는 하나의 광명생명(光明生命)이란 말입니다 .
< 생사를 초월한 보배로운 이름, 아미타불/청화스님>
부처님의 심오한 뜻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뜻을 모르고 한다 하더라도 염불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 가운데 가장 향기로운 연꽃인 동시에,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또는 보현보살이나 그런 보살들이 가장 훌륭한 벗으로 삼는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아미타불 또는 아미타불이 이 세상의 모든 개념 가운데 가장 고귀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적인 전문 술어로 말하면, 무생청정보주명호無生淸淨寶珠名號라, 생사를 초월한 보배같은 그런 명호란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가장 행복스럽고 가장 위대한 이름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리고서 우주의 실상 자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런 최상의 이름을 갖는 부처님이니까, 그 이름 가운데 부사의한 공덕이 있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는가 하면, 삼세제불이 옹호할 것이고, 또는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기도 하고 가장 무섭기도 하고, 가장 자비스럽고 가장 지혜로운 길이기 때문에, 어떤 신장이나 나쁜 귀신이나 좋은 귀신이나 하늘의 천상에 있는 천신들이나, 모든 존재가 다 나무아미타불을 숭앙하고 받들어 지킵니다.
따라서 뜻도 모르고 나무아미타불 한번 왼다고 생각할 때도, 그 나무아미타불의 공덕으로 해서 모든 신장이 우리를 다 지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이름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가장 권위가 있기 때문에, 나쁜 것들은 얼씬도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부처님의 부사의한 명호를 간직할 수 있는 인연을 가졌습니다. 불교를 믿는다 해도, 염불은 방편 가르침이고 화두를 들고 선방에서 애쓰고 의단疑團을 품고 해야 참다운 가르침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염불 공부와 비교할 때는, 사실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선방에서 몇 십 년 동안 화두를 들고 이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무엇인가, 의단을 품는다 하더라도, 염불하는 마음이 화두하는 마음 밑바닥에 깔려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공부가 이어지는 것이지, 그냥 덮어 놓고 의심한다 해서 그것이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불하는 마음이 왜 깔려야 하는 것인가, 참선이란 것은 내 마음의 주인공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이른바 본체를 여의지 않는단 말입니다. 육조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의 가르침도, 선이라는 것은 본체를 안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를 들어도, 본체를 떠나 버리면 그건 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뭐꼬, 화두를 드나, 똥막대기(乾屎 ) 화두를 드나, 어떻게 들든 간에 똥막대기나 이뭐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산란스런 마음을 통일시켜, 본래 우리 생명이 부처이고 아미타불인데, 부처를 찾고자해서 우리가 임시로 의심을 품은 것이지, 의심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화두를 드는 것도 좋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화두를 빨리 타파해서 의심이 없는 그 자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의심 그것에 무엇이 붙은 것도 아니고, 신앙이라는 것은 사실 의심이 있으면 안됩니다. 의심이 있으면 신앙이라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백퍼센트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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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역시 청화 큰스님은 말씀 한마디 마다 저에겐 깨달음을 주십니다 늘 그립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