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홍도여행을 더녀와서
몇 년을 별러 성사된 홍도여행인가? 부산에 있는 초등학교 동기 중 윤선생이 제안하여 겨울 홍도여행을 하기로 한 지가 3년쯤 되는 것 같다. 그때마다 내 스케쥴 때문에 미루어 오다가 도저히 미안해 올해는 입시가 끝나는 2월 마지막 주에 무조건 강행하자고 했다.
2월 24일 금요일 아침, 홍도 꼭 한번 가고 싶은데 혼자 가느냐는 아내를 뒤로 하고 등산복과 등산화, 배낭을 차에 싣고 출근한 나는 퇴근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갈아입은 옷을 차에다 두고 사무실을 나섰다. 윤선생 차로 양산에 있는 전사장 회사까지 가서 스타렉스로 이동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보다 20여분 늦게 도착한 윤선생 차를 타면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홍도여행에 따라가면 안되느냐고 하더라는 부인을 양산까지 가서 차를 가져가라고 옆자리에 태우고 온 것이다. 부산에서 양산으로 이동할 사람들을 한군데 모이게 했으면 30분이면 갈 거리를 여자동기들을 집 앞에 나와 있으면 태우러 가겠다고 했단다. 교통체증이 어찌나 심하던지 두 시간도 넘게 걸리는데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아내가 다른 여자들과 2박3일 여행을 떠나는 남편의 차나 가지고 가라면 기분 좋을 리가 없지? 그런데도 차를 운전해달라고 했으니∙∙∙∙∙
정만이는 태국여행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다며 빠지고, 옵져버로 끼워달라던 채읍이 선배는 출발 하루 전에 집안에 초상이 나서 못간단다. 어쨌던 그렇게 하여 공교롭게도 남자 셋, 여자 셋이서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늦은 저녁 7시가 넘어 출발하였고 출발하자마자 사온 김밥 몇 줄로 사장기를 달랜 우리는 순천에서 벌교, 보성, 강진을 지나 밤 11시쯤 목포에 도착하였다. 연안여객 터미널 인근에서 늦은 저녁 겸해서 횟집에서 한잔 하며 근처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는데 역시 전라도는 음식인심이 좋았다.
다음날 6시 반에 기상하였는데 전날 방에 와서 맥주 몇 캔을 비운 전사장이 못 일어나 겨우 깨워 준비하고 터미널에 간 시간이 7시 30분 홍도행 쾌속여객선은 7시 50분에 출항인데 매표소 앞엔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있었다.
아침을 굶고 여객선에 올라 비금도, 흑산도를 거쳐 목포에서 120Km 떨어져 있다는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정해진 홍갈색을 띤 바위섬 홍도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배가 홍도에 접근하면서부터 크고 작은 무인도 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왜 그 먼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식사 준비가 된다는 넉넉한 한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무작정 따라간 곳은 차가 없는 가파른 섬의 좁은 길을 한참 올라가 수족관에 고기 한 마리 없이 물이 말라있는 한 횟집이다. 잘못 들어온 것 같다며 모두들 나가자는 눈치였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자연산 싱싱한 회가 있다며 밑반찬을 준비한다. 매운탕과 밥만 먹을 거라고 했더니 자연산 우럭매운탕이 맛있단다. 그렇게 나온 매운탕으로 아점을 때우면서 목포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는 주인아주머니의 후한 인심과 음식솜씨에 반하고서야 이집 들어올 때 느낌보다 다르다면서 다들 잘 온 것 같단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오늘은 흑산도에서 1박 하자는 얘기가 나오자 주인아저씨는 내일은 일기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못할 지도 모르니 월요일 출근해야 하는 분이 있으면 오늘 목포로 바로 나가는 게 좋을 거란다.
12시 50분 유람선 출항시간까지 섬의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선착장이 있는 1구 마을은 120여 호가 살며 조그만 학교도 하나 있고 우체국도 있는 홍도의 2개 마을 중 큰 마을이다. 유람선에 오르자말자 전망이 좋은 2층 좌석으로 자리를 잡고는 20여 Km의 섬 해안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너나없이 남문바위, 도승바위, 병풍바위, 거북바위, 거시기바위, 슬픈여, 만물상, 독립문, 머시기바위 등 기묘한 형상을 간직한 기암과 깍아지른 절벽에 탄성을 쏟아낸다.
이곳 바닷물도 약간 뿌였게 보이는데 지금부터 점차 밝아져 여름엔 수심 10m 아래까지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바다속의 신비로운 경관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초여름의 절벽은 노란 원추리꽃으로 뒤덮혀 장관이다. 그래서 홍도여행은 여름철이 제격이란다.
섬 맞은편 60여 가구가 산다는 2구 마을에 주민들을 내려놓고 해상으로 나온 유람선에 작은 고깃배 두 척이 다가오자 홍도는 파도가 거칠어 고기든 김이든 양식이 안되기 때문에 배에서 바로 잡아 유람선 승객에 제공하는 해상 선상횟집의 회맛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는 맛이 일품이라는 가이드의 멘트가 이어진다. 유람선 승객들은 앞 다투어 방금 잡아 올렸다는 싱싱한 회맛을 보기위해 줄을 선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회를 치는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아저씨는 바로 우리가 아침을 먹었던 횟집의 주인아저씨 임을 알아차리고는 그래서 우럭 매운탕 맛도 그렇게 좋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 하면서도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칼끝에서 줄잡아 30~40접시의 회가 순식간에 만들어져 유람선 승객들에게 넘겨졌다. 회 한 접시와 소주 2병을 후딱 해치운 뒤 홍도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단연 유람선에서 먹는 선상횟집의 회맛일 거란다. 그러고 보니 회 한 접시에 25,000원, 소주 1병에 3,000원이니 장사맛이 제법 짭짤할 것 같았다.
그렇게 홍도 일주를 마치고 오후 3시 50분 쾌속선을 타고 바로 목포로 나왔는데 쾌속선엔 정원을 훨씬 넘겼는지 좌석이 없어 서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 6시 40분 경 목포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곳에 와서 유달산을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에 비를 맞으며 유달산에 올랐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운 임진왜란 때 심리전으로 적들에게 군량미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하여 적들이 지레 겁을 먹고 후퇴하게 했다는 노적봉은 밤에도 바위덩어리에 조명을 비춰 멀리서도 영락없이 쌀가마니를 쌓아 덮어놓은 것처럼 보이게 해 놓았다. 옛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였보였다.
3일째는 느즈막이 일어나니 비는 그쳐 화창한데 바람이 세차다. 홍도에서 횟집 아저씨의 일기보는 모습이 보통이 아니구나! 어제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목포시내를 벗어나 영암쯤 오다 별미 짱뚱어탕이라고 써놓은 식당에서 아점을 먹었다. 다들 TV 방송에서 갯벌에서 짱뚱어를 잡는 건 봤으나 먹어보기는 처음인데 별미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음식점을 선택한 복은 꽤 있는 것 같았다. 아점 후 평소 가보고 싶었던 여수 향일암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1.2Km 거리의 금오산 자락 깎아지른 절벽위에 위치한 향일암을 둘러보고 내친 김에 정상까지 올랐다.
향일암과 금오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풍광은 혼자 보기 아까워 후일 선우회 회원들과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에 사진도 몇 컷트 찍고 등산로도 유심히 보아뒀다. 산을 내려가 찾은 횟집 역시 맛과 인심이 좋은 집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여수를 떠난 시간이 차량 전조등을 비추어야 할 시간이므로 6시가 넘었던 것 같다.
온 김에 동백꽃으로 뒤덮혀 있다는 오동도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선우회 회원들과 올 때 가기로 하고 부산으로 차를 몰았다. 횟집에서 둘이서 소주 3병을 비웠는데 먹다 남은 회를 도시락에 싸서 오는 차안에서 또 소주 4병을 비웠으니 대단한 주객들이다.
부산에 가까워지면서 다들 신랑 잘 만나고 장가 잘 갔다는 얘기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노포동에 도착하니 윤선 남편은 차로 마중까지 나와있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홍도여행은 마쳤으니 걸쭉한 입담의 정만이가 빠져 좀은 재미가 반감됐음을 아쉬워하며 다음 여행은 3년 후 제주도로 가기로 정했다.
-2006. 2. 34~26. 홍도를 다녀와서-
첫댓글 스키에 홍도여행까지 와 부럽네,그런데 남의 방을 도용했노? 철환이한테 껀세(껀당 방을 빌림)를 내고 사용하나? 방하나 내어 줄까?
홍도도 함 가보자구!! 사진 빨리 올려보소 귀경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