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시 8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영화는 몇 개의 액자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이해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프롤로그, 짧은 가을, 긴 겨울, 마침내 봄, 에필로그 순서로 되어있다. 영화의 시작은 웹디자이너인 마틴(하비에스 드롤라스)의 나래이션으로 시작된다. 건축에 대한 비대칭의 장면이나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직관적인 설명은 마틴과 마리아나(피욜라 로페즈) 두 주인공에 대한 대조적인 각각의 사랑과 삶에 대한 비유를 그로테스크한 건축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그 단적인 예가 "합리적인 건물 옆에 비합리적인 건물, 미적 불규칙성과 윤리적 불규칙성, 이런 불규칙성은 우리의 모습이다"라며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에 대해 암시를 해주고 있다.그러면서 건축물로부터 받게 되는 폐해의 요인으로 무기력, 무관심, 우울증, 자살, 비만, 긴장,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나열한다.
"관찰자는 존재하되 부재한다. 혹은 다르게 존재한다."주인공 마틴이 사진을 통해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내린 결론이다.이와는 다르게 건축설계를 버리고 백화점 쇼윈도우 디자이너로 일하는 마리아나의 나래이션은 폐쇄공포증으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것과 8층에 위치한 방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이다.
<짧은 가을>
창녀가 키우는 개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마리아나의 나래이션.마리아나는 마네킹을 만들고 쇼윈도우의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만의 쇼윈도우의 대한 정의를 내린다."쇼윈도우는 길을 잃은 공간이다. 내부도 외부도 아닌 곳, 관념적인 마법의 공간날 드러내면서도 숨겨주는 편안한 곳누군가 바라보면 나와 통하는 거다"마치 쇼윈도우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마리아나와 마틴은 각자의 사랑과 애인에 대해 회상하면서 상처만 받은 사실에 자책하게 된다.
<긴 겨울>
마틴은 새 의자를 들여놓고 도그시스터와 사랑의 관계를 시도하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도그시스터는 어색한 분위기를 뒤로한 채 마틴을 떠나간다. 이 때의 심정을 마틴은 갈라진 시멘트 벽사이로 뚫고 자라난 끈질긴 나무와 풀의 모습에서 이렇게 읊조린다."그늘진 구석을 빛내며소유하지도 굴하지도 않는다"마리아나는 동료 남자의 접근에도 거부하고 수영장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을 하지만 근본적인 사랑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마리아나는 길거리에 버려진 의자를 집에 옮겨놓는다. 그리고 4년간 사귀어온 애인 파블로의 사진을 컴퓨터에서 차츰 삭제해나가고 옆집 피아노 치는 소리에 더욱 심란해한다.영화는 마틴과 마리아나가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장면을 노출시키는데 그것은 길거리 신호등 앞에서 둘이 모자를 쓴 모습이 하트모양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침내 봄>
"우릴 경계 짓고세월과 먼지만 먹는 공간우리의 나쁜 속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해준다변덕, 균열, 임기응변, 카페트 밑에 쓸어 넣은 먼지 같은 것들,날씨가 나쁠 때 존재감을 드러낸다"쓸모없는 곳이 건물의 측면이라고 말하는 마리아나.칠흑 속에 한줄기 빛을 찾기 위해 마리아나는 건축에 위배되는 불법을 하며 창문을 내기로 한다. 마틴 또한 창문을 낸다.영화는 점점 그들이 듣는 음악과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동일하게 만들어 놓는다.
"진실한 사랑이 찾아올 거예요. 그대 슬퍼하지 말아요. 진실한 사랑의 약속을 믿어요"노래가사처럼 그들의 바람대로 채팅을 통해 기구한 사랑은 연결되는듯하나 마틴의 전화번호를 마리아나가 받는 순간에 정전이 되어버린다. 급하게 초를 사러 간 가게에서 서로 만나지만 둘은 서로가 채팅 대상자들인지 알지 못한다.그러나 아침에 창문을 연 마리아나는 길거리에서 강아지 수수를 데리고 있는 마틴을 발견하고는 그가 지난밤 채팅 상대자임을 직감하고 폐쇄공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마틴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마틴과 마리아나가 춤추며 노래 부르는 행복한 모습이 유투브로 퍼져나가는 에필로그 부분이 나온다.이 영화는 영화의 장면이면서 몇 개의 시적장치를 감춰놓고 있다.서두부분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주인공들의 대칭적인 성격이나 사랑을 "관찰자는 존재하되 부재하는 것"으로 드러낸다.
그러다 <짧은 가을>에 와서는 쇼윈도우를 들여다보며 "내부도 외부도 아닌 곳"으로 둘의 관계가 둘이면서 하나인 것으로 압축해준다.<긴 겨울>에서는 의자가 등장하는데, 마틴은 새 의자를, 마리아나는 길거리에 버려진 의자를, 새 의자와 중고 의자는 그리움의 대상이나 사랑의 대상자에 버금가는 대상물인 것이다.
<마침내 봄>에는 창문이 나오는데 볕이 안 드는 방에 창문을 내는 것은 생명의 태동이자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것을 암시해준다. 기존에 갇힌 틀을 깨고 외부의 것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혁명적인 시도는 결국 사랑을 성취하는 대상물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