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제9회 한국불교시문학상 수상작품
-수상자 이두형 시인
흙이고 싶어라 외 9편
목마른 사막이
타 갈라져도
종자 씨를 품고
안아주는
흙이고 싶어라.
뜨거운 열기 쏟아 부어
네 몸이 타 갈라져도
끝까지 품에 안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타오르는 목마름을
밤이슬로 목축이고
강렬한 열기 내뿜어
한줄기 단비를 수용하는
이 몸이 죽어
악취가 날지라도
포근히 안아줄
끝나는 곳
땅이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있었고
바다가 끝나는 곳에는
땅이 있었네.
하늘이 끝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끝나는 곳은 어느 메냐?
떠도는 구름이 되어
번개 같은 시간의 초바늘이
노을로 물들면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은하수 흐르는 호숫가에서
흰 뭉게구름이 되어
둥실둥실 하늘을 떠 날고 싶다.
오뉴월 뙤약 빛 아래
땅 흐르는 착한 농부들에게는
서늘한 구름이 되어 땀을 식혀주고
땅이 메말라 곡식이 죽어 갈 때는
구름을 몰고 와 단비를 뿌려 주리라.
나는 훨훨
하늘을 떠다니다가
갈증 나는 곳이면
시원한 그늘이 되어
목마른 자들에게
한 모금 소나기로 갈증을 해갈하리.
무소유
무에서 왔기에
무로 돌아가련다.
가지고 온 짐 없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물려받은 짐 없기에
홀가분하게
소유욕 없었기에
무소유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다
육신마저 다 버리고
훨훨 날아가련다.
나(我)
나는 큰 소나무가 되어
지친인간들의 그늘이 돼주고
나는 곧은 대나무가 되어
강한 재료로 쓰임 받고 싶다.
나는 단비가 되어
마른 대지를 젹셔 주고
나는 무거운 산이 되어
침묵하고 싶다.
나는 가장 밝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을 밝히고 싶다.
꽃의 향기로 남고 싶다
먼 훗날에는
라일락 꽃향기로 남고 싶다
언제나 향긋한 은은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꽃이 되고 싶다.
향기가 없는 꽃은 꽃이 아니다.
맑은 영혼 속에서
피어오르는
그가 진짜 꽃의 향기다.
다시 부활할 때는
하얀 목련처럼 피었다가
가을을 장식하는
한 송이 국화처럼
그윽한 꽃향기로 남고 싶다.
낙화(落花)
화사한 벚꽃도
우아했던 목련도
청실홍실
예쁜 영산홍 모란도
짧은 화려함
뒤로 한 채
더 못준 사랑
아쉬움이었을까.
사랑의 핫트로
모자이크
수를 그리며
고개를 떨구고 만다.
고독의 놈
바람이 쓸고 간 자리
천형(天刑)의 고독 놈이
또 자리를 잡고 누워버린다.
열을 받은 심장이 타고 있다.
5월의 꽃단장을 하기 위해
촉촉한 봄비가 갈증을 적셔준다.
죽어갔던 낙엽들은 봄을 맞아
다시 살아 돌아오는 걸.
인간들은 죽어서
다시 부활하는 걸 볼 수가 없다.
저 높은 하늘 어딘가에
피안의 세계는 있는 걸까.
삶과 죽음의 항로를 찾아 헤매는
무서운 번뇌가 감지돼온다.
흠뻑 젖은 통한의 눈물 삼키며
허기진 고독 놈 껴안고 다시 그려볼
죽음의 순간으로 눈을 감는다.
빈 둥지를 그리며
이제
새끼들도 뿔뿔이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
큰 날개 곱게 접고
세찬 비바람 등지고
노송나무 숲속에 둥지를 틀고
밤하늘별을 헤며
은하수 따라
천상의 노래를 부른다.
출처: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원 원문보기 글쓴이: 백운 곽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