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강가에 소금을 공급하던 소금창고 염창(鹽倉)이 있었다.
지하철 9호선 등촌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 길로 대략 300m 직진하면 삼성 한마음 아파트를 만난다.
한마음 아파트 맞은 편 버스 정류장에서 강서 04번 버스를 타고 우성아파트에서 내린다.
우성2차 아파트 103동 경비실 옆에 소금창고 염창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표석을 만난다
염창동은 한강가에 솟은 염창산의 산록에 홍수를 피하여 이전한 사람들로 마을을 형성하면서부터 발달되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자연부락명에서 그 옛날 염창동의 흔적을 조금씩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주막거리가 있는데 지금의 양천(陽川)길가 양쪽으로 형성되었던 지역이다 바로 강변에 나루터가 있고
그 인근에 염창이 있어서 배를 저어온 배꾼들이나 각지에서 모여든 소금장수들이 북적거리기 일쑤였다.
자연히 이들을 상대로 한 객주(客主)집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 하나의 부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을의 입구에 장승이 박혀있던 곳을 장승배기라 한다. 마을의 편안과 안녕을 위한 수호신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장승이 세워졌었다. 염창동의 유일한 산으로 남아있는 염창산은 산의 모양이 마치 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쥐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쥐산의 동남쪽에서 마을과 이어지는 고개를 서낭당이 고개라고 한다.
옛날 이곳에 서낭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쥐산에서는 분가루같은 백토(白土)가 있어 바람 부는 날이면 근방 일대가 분(紛)이 날리는 것처럼 하얗다고 해서
분동산이라 한다.염창동의 쥐산에는 옻우물이 있었다.
옻이 오른 사람이 이 물을 마시고 온몸에 바르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염창(鹽倉)에서는 조선시대 때 경기 충청 전라도 등지의 염전에서 실어오는 소금을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서울로 공급하였다.
염창에는 서해안과 남해안의 염전에서 만든 소금을 서해의 뱃길을 이용해서 한강하구까지 들여왔다.
일단 한강하구에 진입하는 배는 마포 근방까지도 가게 된다. 소금의 경우는 자칫하면 물에 녹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이 소금을 보관하기에 좋은 장소였으므로 이곳에 소금을 부리고 다른 물품들은 마포까지 배로 운반되었다.
염창으로 운반된 소금은 국가용과 군사용, 그리고 일반 판매용으로 구분되어 각각 저장 보관하였다.
천일염으로만 제조되던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물품으로서 전매품(專賣品)으로 지정 취급되었다.
이에 암거래도 무척 성행하였다고 한다. 암거래와 투기, 운반 도중 물에 녹아서 염전에서 출발한 소금의 양이
이곳 염창에 도착하면 심한 경우 1/50도 제대로 남지 않아 염창에 소속된 관원은 물론 양천현의 관리들까지도
곤욕을 치루기 일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