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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디지털 연구소의 정덕형 소장은 청주 우암정에서 활을 배우고 있는 射員이다.
<<<===== 정덕형 접장의 만개궁체
국궁신문 발행인과는 지난 2000년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서로간의 공통점은 한국 문화의 정수인 '직지와 국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디지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디지털 직지와 디지털 국궁신문'을 동일한 서버를 통해 운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정덕형 접장은 2001년 청주 우암정에서 집궁을 하게 되어 더욱 가깝게 알게 되어 실로 우연찮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정덕형 접장이 2002년 포스트 월드컵의 일환으로 유럽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그 박람회에 참여하여 박람회에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소식으로 전해왔다. 향후 직지와 함께 한국의 전통 활쏘기가 외국으로 크게 홍보될 날을 생각하며, 정덕형 접장의 프랑스 박람회 이야기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직지란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도서박람회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밝혀진 자랑스런 인류 문화유산으로 1377년(고려 우왕 3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백운화상초록 불조심체요절'을 가르키며 일명 직지(直指)라 부른다.
직지디지탈연구소 프랑스박람회를 다녀와서*
ㅡ. 직지, 프랑스 총리와 만나다
프랑스 스트라스브르그 70주년 박람회 개막식에서 직지는 프랑스 총리를 만났다. 이번 프랑스에서 열린 박람회는 프랑스 박람회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해로 지정되어 한글 포스터로 홍보되고 특별히 한국관이 꾸며지게 되었다.
오전에 경찰관과 특수견이 행사장을 조사하고 프랑스 총리의 연설과 더불어 70회 박람회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한국공예예술가협회(회장 이칠용)와 한불협회가 주관하며 프랑스 박람회장에 특별히 한국관이 꾸며지게 되고 직지시연회, 한국의 사물놀이, 한복패션쇼, 한국무용등 한국문화를 홍보하였고 충북, 충남, 경북, 전남, 강원도, 서울등 지방자치 단체가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 외에 프랑스 대우자동차 지사와 한국관련 상품을 전시 판매하게 되었다.
연설이 끝나고 프랑스 총리의 첫 관람장소가 충북관 「직지 시연장」이었다. 프랑스 박람회 조직위원장과 협회 이칠용 회장이 금속활자본이 프랑스 파리에 국립도서관에 있으며 코리아에서 만들어진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 소개하였고 프랑스 총리와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제70회 프랑스 스트라스브르그 박람회는 시작되었고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의 바이어와 관광객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ㅡ. 비너스를 닮은 프랑스 아가씨박람회장을 활보하다.
프랑스 박람회의 행사 진행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금발의 미녀와 영화배우를 닮은 젊은 아가씨와 멋있는 빠리짱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처음가는 유럽행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호기심 어린 모습을 보자 자신감이 붙었다. 프랑스인들은 금속활자판과 인쇄 시연하는 것에 관심이 무척 많았으며 하나 하나 신기해 하는 것 같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속활자 인쇄술에 관심을 보이고 만져 보고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박람회는 충북관 이외에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선의의 경쟁속에서 각자의 지역 관광 홍보와 관광특산품을 홍보하였다. 아시아의 구성원인 코리아의 문화에 미로의 비너스를 꼭 빼닮은 프랑스 미인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 문화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ㅡ. 코리아 직지 장기, 프랑스 박람회에서 최고의 히트상품.
이번 프랑스 박람회는 단순한 문화 소개가 아니라 문화행사와 문화 상품판매를 겸한 고급 비지니스였다. 프랑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문화국가이지만 타국인이 프랑스 내에서 돈을 벌어가는 것에 대해선 거의 용납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현지에 공장을 세우거나 합작을 통한 프랑스 진출이다. 프랑스 TV를 보면 한국의 삼성그룹이 프랑스와 유럽시장 개척을 위하여 승마대회를 주관하면서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을 보았다. 이렇듯 단순한 상품 판매만으로는 프랑스 내에서 시장을 개척할 수 없다.
이번 박람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인 금속활자 직지를 홍보하고 한복 패션쇼, 민속무용 등을 공연하며 박람회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더불어 직지 관련상품과 충북의 특산품
(난계국악기, 미르미 인삼잼, 권영화 자수액자등)을 가져갔다. 이중 코리아 직지 장기는 많은 프랑스인들의 호기심을 자아냈고 동양의 신비한 놀이로 많은 질문과 판매가 이루어졌다.
이번에 직지 장기를 개발한 것은 금속활자의 종주국인 한국의 위상과 세계최고의 정신을 접목시킨 제품으로 낯선 유럽의 프랑스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검증받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 문화의 매개체로서 코리아 직지 장기를 비롯한 한국의 놀이 문화를 잘 접목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ㅡ. 직지, 쿠텐베르그와 만나다.
프랑스 박람회 행사는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전체 10만평의 부지에 20여개의 대형 전시관이 박람회 행사로 운영된다. 행사장이 너무 넓어 지도를 보고도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라와 기업체 사람들로 붐비며 스트라스브르그 시예산의 1/3정도가 박람회 수입금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아름다운 프랑스 미인을 꽁짜로 보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이곳에서 가까운 마인츠시 쿠텐베르그 박물관으로 온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분은 고인쇄박물관의 황정하 실장이다. 행사가 중반전을 지나고 7시간 시차와 낯선 프랑스라 요일감각을 잃어버렸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프랑스에서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안내자가 없어 계획을 세우는데 3∼4일이 걸렸다. 프랑스 국경을 넘어 독일행으로 열차를 바꿔 타면서 마인츠시에 도착하였다. 프랑스어에 귀딱지가 생길즈음 독일어를 들으니 정신이 없었고 그나마 쉬운 독일어도 나오지 않아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하였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영어소통이 쉽고 아직도 미군부대가 독일에 남아있는 실정이라 독일 마인츠시의 분위기는 프랑스와 달랐고 독일 나름대로 질서와 활기가 넘쳤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서 내리니 쿠텐베르그 박물관 주변은 장날(일주일에 2번 도심에 임시 시장이 선다고 함)이었고 활기가 넘쳤다. 황정하 실장님이 「중동의 인쇄술」이란 심포지음에 초대되어 이곳에 행사를 한다는 날짜가 가물가물 되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이미 행사가 끝이 ? 뎬? 참으로 난감하였다. 시간이 점심때가 지나 박물관 구경도 식후경이라 쿠텐베르그 박물관 광장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박물관 앞에는 노천 까페가 두곳이 있어 가을의 햇살을 맞으며 시민들이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은 최근에 신축되어 소장품이 최신 건물로 이동하였으며 3개동과 지하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쇄술과 알파벳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쿠텐베르그 인쇄술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입장료는 3유로(3600원정도)로 고인쇄박물관의 4배 정도였다. 우선은 한국의 인쇄술 코너를 찾았는데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첫 입구에 China로 되어있고 그다음 Japan 그리고 Korea로 되어 있었다. 처음 관람하는 사람은 서로 섞여있어 구분하기 어려웠으나 한국 코너에는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기증한 인쇄장면이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곳에는 일체 사진 촬영이 금지가 되어 있었으나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여 박물관 직원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다. 이어 3층에 그 유명한 쿠텐베르그 성경원본 3권이 검은 색을한 특수한 전시실에 정중하게 모셔져 있었다. 쿠텐베르그 성경 원본은 한국의 일반 성경과 달리 그 크기가 대형 백과사전 만큼 엄청나다. 독일인들이 이 성경을 민족과 세계의 자부심으로 잘 가꾸고 보존하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대강 전시장을 둘러보고 담당직원에게 황정하 실장 이야기를 하였으나 아마도 떠났을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맥이 풀렸다. 함께 직지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금속활자의 유럽지역 본부인 독일 마인츠시에서 만나 회포를 풀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불발(?)로 끝났다.
박물관 샵을 구경하고 노천 까페에 있자니 청주에서 본 쿠텐베르그 박물관장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용기를 내어 황정하 실장을 찾으니 행사는 끝났고 차이나타운으로 구경을 갔다고 하였다. 이야기 끝에 미스터 남이란 분과 함께 갔다고 하였다. 그 미스터 남은 청주 MBC 남윤성 PD였다. 그 때가 2시간 넘은 상태여서 언제 돌아올지 모른 상태에 기차표가 예약이 되어 있었고 핸드폰도 없고 길도 모르고 하여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직지를 사랑하는 동지들이 쿠텐베르그 박물관에서 멋진 만남을 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쿠텐베르그 박물관을 보면서 청주의 직지를 어떻게 가꾸어야 할 지 뼈 져리게 느꼈다.
ㅡ. 빛나는 별, 빠리 유학생
그 누군가 파리를 보지 말고 빠리를 보라고 하였다. 빠리는 우리에겐 먼 곳이지만 박정희 정권시절의 김형욱, 백건우, 윤정희씨, 빠리의 택시운전수 홍세화씨 등으로 정서적으로 익숙한 곳이다. 우리 나라는 본의 아니게 발끝부터 손끝까지 미국 문화에 젖어 들고 있다. 그러나 이곳 프랑스에 미국 문화는 오히려 프랑스화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고 한국에서 그 흔한 뚜껑 달린 폴더 핸드폰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사치거나 부자이다.
프랑스는 유럽통합의 지도국으로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으며 자신의 리듬과 자신의 방식으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 .프랑스 박람회 행사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한국인 유학생이 많이 참여하였다. 11일이란 적지 않은 시간에 그들이 보여준 성실성과 자신감과 열정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문화 대국이라는 낯선 땅 프랑스 유럽에서 한국 교민이 제일 적고 적응하기 어렵다는 프랑스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취와 목적 달성을 위하여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며 통역을 하여 콧대 높은 유럽의 맹주 프랑스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미 중국인은 차이나타운을 설치하였고 일본인과 베트남인들도 버젓이 프랑스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아직 한국인 사회는 그 뿌리가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을 보고 희망이 보였다.
ㅡ. 2003년 프랑스 루앙 박람회에 다시 초대 받다.
이번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박람회 한국관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프랑스 빠리짱들은 한국의 아름다움에 매료 되었고 한국의 미에 깊이를 느꼈다고 하였다. 그들은 2003년 프랑스 루앙 박람회에 한국관 유치를 결정했으며 금속활자 전시 및 팔만대장경 전시를 부탁하였다. 한국에서의 유럽은 낯선 곳이지만 동양 문화에 대한 신비감과 호기심으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 지난 2002년 월드컵때에도 개고기 논쟁과 프랑스 축구 16강 탈락으로 우리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대다수 박람회 참여 프랑스인들은 최고의 복지혜택과 문화 생활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차근차근 한국 문화를 지켜보며 조금씩 조금씩 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성장주의와 미국 문화 일변도는 우리 삶의 균형을 깨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우리나라 규장각외서와 많은 한국인이 꿈에도 그리는 금속활자본 직지가 있다. 직지를 세계화하기엔 프랑스가 좋은 것 같다. 세계사의 흐름을 잘 읽고 한국 문화와 직지를 프랑스를 통하여 세계에 알리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할 것 같다.
ㅡ. 봉쥬∼,, 세느강은 무심천으로 흐른다.
박람회를 마치고 프랑스 고속도로를 타고 파리로 왔다. 장장 6시간이다. 행사인원은 공연단과 유학생과 각 지방자치단체 대표등 30여명이 넘는다. 고속도로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도로 주변엔 600㎞ 전부가 영화 촬영장처럼 아름답다.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교과서적으로 관리를 해 놓았고 시야를 어지럽히는 대형 간판은 거의 없다.
한 국가가 어떻게 국토를 관리하는 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부럽고 얼굴이 뜨거웠다.
아침 10시에 출발하여 5시 넘어 파리 근교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미 알려진대로 파리의 물가는 비싸다. 한국만큼 비싸거나 한국보다 비싸다. 하루종일 서울∼부산만큼 달려오니 아쉽게 해가 지면서 파리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바쁜 일정이라 먼저 버스로 파리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콩코드 광장부터 관광을 시작하였다. 그 곳에서 멀리 개선문과 에펠탑, 루부르박물관 등이 보였다.
일행은 세계패션의 1번지인 샹제리제 거리에서 자유시간을 갖었다. 샹제리제 거리는 파리의 대표적인 거리로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뻗은 12개 도로중의 하나로 세계의 여성과 한국의 멋쟁이들을 사족을 못쓰게 하는 쇼핑관광지이다. 이 곳 도로를 따라 1.9㎞정도 가면 나폴레옹이 지었다는 개선문이 있다. 사진 엽서와는 달리 엄청난 규모와 세련미에 입이 벌어진다. 나폴레옹이 1806년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승리하여 짓기 시작하여 30여년이 걸렸다는 프랑스의 자존심 중의 하나다.
더불어 샹제리제 거리는 인도가 30m가 넘고 도로폭이 124m, 길이가 1.9㎞의 넓은 대로이다. 200여년을 내다 본 그들의 상술과 도시계획에 할말이 없다. 그런 넉넉한 공간에서 세계 멋쟁이들의 주머니를 사정 없이 털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건물은 5층 이상이 없고 멋진 대리석으로 도시의 외관을 그림처럼 구성하고 있다. 말 그대로 850만 파리 시민의 삶은 공간을 관광자원화 하여 멋있게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해가 어룩해져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파리는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욱 빛이 났다. 온 도시를 붉은 조명으로 감싸버려 낯선 외국인을 흥분시켰다. 세느강변의 유람선은 한강 유람선과 달랐다. 조금 보태여 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배 50척이 동시에 세느강을 휘졎고 다니며 마음껏 파리의 밤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며 잠시동안 우리의 한강과 무심천을 생각했다.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르다. 우리도 금수강산을 갖고 있었는데...
프랑스인과 세계인에게 멋있는 한국의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낄 그 날을 기대해보며 밤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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